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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윤리법 시안에 대한 한국창조과학 성명서

생명 윤리법 시안에 대한 한국창조과학회 성명서

현재 보건 복지부와 과학 기술부에서 추진하는 생명 윤리법의 시안은 인간복제를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어 과거보다는 매우 진일보한 법안으로 높이 평가한다. 그러나 냉동잉여배아 연구를 허용하고 있으며 배아복제 및 이종간 교합을 허용할 수 있는 여지가 있어 이 부분이 삭제 또는 수정되어야 한다.

냉용잉여배아도 분명히 배아로서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실험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이미 선진 외국은 윤리적인 문제가 많은 인간배아실험보다는 인간 줄기 세포를 이용한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며, 임상적인 적용을 실제로 하고 있다.

또한 실험을 할 수 잇는 냉동잉여배아가 있다는 것 자체가 불임치료를 수행하는 의사들의 직업윤리에 문제점이 있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다. 어떤 선진 외국에서도 인간배아를 이용한 실험을 허용하고 있지 않은데, 우리나라에서 인간배아에 대한 실험을 허용하는 생명윤리법 제정은 국가적인 부끄러움이 될 수 있다.
 핵치환기술을 활용하여 인간배아를 만드는 것 자체가 윤리적으로 많은 문제를 안고 있으며, 이미 외국의 연구에서 드러났듯이 핵치환기술 과정을 통해 태어난 생명체들은 많은 유전적 문제를 가지고 있다.  이렇듯 새로운 생명과학기술이 꿈같은 미래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유전적 문제를 가진 새로운 문제를 가져올 수 있음을 명확히 보여주었다.  이런 상황에서 이종간 교잡은 더 큰 문제점을 가질 가능성이 많다.  인간과 동물의 DNA 염기서열에 대한 정보조차도 완전하지 못한 현 상태에서 그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이종간 교잡 연구는 인간 존엄성의 상실과 더불어 엄청난 재난을 가져올 가능성도 없다고 할 수 없다.  
 따라서 생명윤리법을 제정할 때는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함과 동시에, 과학자들이 생명현상에 대한 한정된 지식을 가지고 있음에 대한 명확한 인식이 우선 되어야 한다.  즉, 예측할 수 없는 위험을 감수하는 연구에 대한 분명한 제한과 지구를 책임질 수 있는 유일한 생명체로서의 인간의 존엄성이 훼손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한국창조과학회는 박사와 대학교수 300명과 1500여명의 회원들의 의견을 모아 아래와 같이 생명윤리법이 제정되어야 할 것을 천명한다.  
   ㅡ 정상적인 인간배아에 대한 어떠한 실험도 허용해서는 안 된다.  
   ㅡ 핵 치환 기술을 이용한 인간배아의 제조 및 이에 대한 실험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  
   ㅡ 어떤 유전적 위험을 가져올지 모르는 이종간 교잡 실험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  
   ㅡ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고, 윤리적으로 책임 있는 생명과학 연구를 수행하면서, 생명과학 연구의 발

   전을 가져 올 수 있는 생명윤리법 제정이 속히 이뤄져야 한다.  (한국창조과학회)

조류는 진화되지 않았다

조류는 진화되지 않았다  (김루웅 2002/1/24)

 

<창조> 제 117호 (1999년 11-12월호)에 게재되었던 글입니다.

“날개 있는 모든 새들을 그 종류대로 창조하시니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창 1:21)”

생물학적인 관점에서 볼 때 진화론의 꽃은 대진화(Macroevolution)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진화론의 가장 큰 허구가 또한 대진화이다. 대진화는 연구실에서 결코 실험해 볼 수 없는 grand scale의 시간을 필요로 하는 것으로, 확실한 증거에 의거하는 과학적 이론이라기 보다는 다윈이즘에 따른 순환 논리적 결론일 뿐이다. 이 글에서는 대진화의 대표적인 예로 꼽히는 조류 진화론(Avian Evolution)에 대해 그 허구를 최근의 학술지에 실린논문들을 통해 파헤쳐 보고자 한다.

진화론의 주장

현대 진화론은 조류의 직계 조상을 Velociraptor라는 공룡으로 생각하는데 이 공룡은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쥬라기공원(Jurassic Park)을 본 독자라면 이미 친근한 공룡이다. 영화에서 이 공룡은 음흉한 눈초리와 날카로운 세손가락을 가진 짧은 팔로 주인공을 위협하는 악당으로 우리의 기억에 남는다. 그런데 새들의 조상으로 주장되는 시조새(Archaeopterix)의 화석이 처음 발견되었을 때 바로 이 Velociraptor로 잘못 분류되었던 사실을 아는 분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림 1 과 같이 두 동물의 골격 구조는 유사하다. 과연 이 Raptor와 시조새는 대진화의 연결 고리인가?

그림 1. 시조새(위)와 Raptor(아래) 의 골격 구조 비교. (S.Swartz 참조)
조류의 특징

조류를 파충류인 공룡으로부터 구분할 수 있는 특징을 들라면 뼈의 기강(氣腔)구조(Pnematization of bones), 공기 주머니에 의한 호흡 (Air Sac Driven unilateral air flow), 척추에서 멀리 떨어진 직장(post colon) , 그리고 세손가락으로 이루어진 날개구조등을 들 수 있다. 깃털의 존재는 조류에 국한된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최근의 연구 결과는 보다 광범위한 깃털의 이용이 과거에 존재했었음을 보여 준다. 최근 중국의 리아오닝(Liaoning)지방에서 Qiang Ji 등이 발견한 두종류의 공룡(Protoarchaeopteryx와 Caudipteryx)의 화석은 공룡의 일부도 깃털을 갖고 있었음 을 보여준다. 물론 이 화석들은 진화론자들에 의해 대진화의 증거로 인용되지만 이는 과학적인 추론의 결과가 아닌 진화론적인 신념의 도약일 뿐이다.

공기 주머니에 의한 조류의 호흡 계는 매우흥미있는 주제이다. 다른 모든 동물들과는 비교가 안될 만큼 조류는 호흡의 효율이 높은데 이는 다른 동물들은 숨을 내쉬는 것과 들이쉬는 것이 섞이는 양방향(bidirectional) 호흡을 하는데 반해 조류만은 parabronchi를 이용한 일 방향의(unidirectional) 호흡을 하기 때문이다(Denton 참조). 이런 공기 주머니 호흡 때문에 새는 비행 시에 필요한 고효율의 호흡이 가능한 것이고 이것이 없다면 새들은 날개가 있다 해도 5분도 안되어 모두 뇌사하고 말 것이다. 사실 모든 종류의 새가 단일한 구조적 특성을 갖는 다는 사실 자체가 진화론을 부정하는 증거가 된다. 왜냐하면, 진화론적으로 생각한다면, raptor는 먼저 날기 위한 비교적 원시적인 구조를 갖는 형태로 진화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박쥐의 경우와 같이 분명 새와 같이 날수 있지만, 모든 조류가 갖고 있는 일 방향 공기 주머니는 갖지 않는 중간 단계의 새가 있어야 하고 그중 일부는 ,펭귄이 좋은 예인데, 날 필요가 없으므로 계속 박쥐같은 구조로 남아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하자면 새들 중의 일부는 박쥐와 같은 양방향 호흡기관을 갖 고 있어야만 한다는 것이 진화론적인 논리의 필연적 귀결이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날지 못하는 새인 펭귄마저도 이런 공기 주머니 호흡을 한다는 사실이다. 반면 아무리 새와 비슷하다고 생각되는 파충류라도 이런 구조가 없다는 사실을 이제 살펴보고자 한다. 종류대로 창조하신 하나님의 창조의 특징을 다시 한번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과학이 부정하는 조류 진화

깃털을 제외한 4가지 특징은 현존하는 모든 조류와 아마도 시조새에 이르기까지 확실히 공유되는 특징일 것이다. 먼저 시조새의 경우 이는 확실히 새라고 분류하기에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이미 많은 창조론 지면들을 통해 시조새가 파충류가 아닌 온전한 새라는 주장이 제기되어 있으므로 이를 여기에서 반복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다만 이 시조새의 골 구조에 대한 Britt 등의 논문 한편을 소개 하고자 한다. 원래 조류의 뼈는 가볍고 튼튼하여 마치 철교의 구조를 연상시킨다. 이는 두말할 필요 없이 잘 날기 위함이다. 그런데 앞에서 언급한 이 공기 주머니는 비행 중에는 전체 체적의 20% 까지 차지하는 아주 고도로 발달된 기관으로서 이중의 일부는 뼈 속을 관통하여 발달해 있다. 이것을 조류 골격의 기강 구조(pnematization)라고 한다. 초기 화석 연구에 따르면 시조새의 골 구조는 조류의 골 구조보다는 파충류에 가깝다고 주장되었으나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조류 특유의 기강(氣腔)구조가 발견되었다. 이 연구는 다시 한번 시조새가 결코 대진화의 중간 고리가 아니며 온전한 새라는 주장을 뒷받침한다.

화석은 경골 구조만을 포함하는 것이 일반적인 원칙이나 아주 예외적으로 soft tissue 가 보존되는 경우가 있다. 최근 Ruben등이 이태리에서 발견한 raptor의 일종인 theropod가 놀랍게도 이러한 내장 기관까지 보존된 채로 화석화되어 있었는데, 아 마도 혐기상태에서 미이라가 된 후에 화석화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화석이 특히 관심을 끈 이유는 이 raptor가 조류로 진화하는 중간 고리라는 가설 때문이었다. 만일 이 공룡이 조류에 가까운 내부 구조를 갖고 있다면 진화론을 지지하는 증거로 인용될 것이었다. 자외선을 이용한 분석 결과 이 암반 속에 갇힌 raptor의 내부 구조는 다음의 중요한 두 가지 사실을 드러냈다. 첫째는 raptor 는 조류의 특징인 air sac이 아닌 횡경막(diaphragm)에 의해 호흡하는 전형적인 파충류의 호흡기관을 갖고 있으며, 둘째로는 조류와는 달리 대장(post colon)과 척추가 아주 가까이 붙어 있어서 현존하는 생물중 악어와 가장 유사하다는 결론이 났다.

또 다른 최근의 연구는 오래 묵은 진화 논쟁 하나를 종식 시켰다. 새의 조상으로 주장되는 raptor는 3개의 손가락을 갖고 있는데 조류의 경우에도 날개를 이루는 손가락이 3개 이기 때문에 진화론자들은 이를 진화론에 유리하게 해석해 왔다. 하지만 5개의 손가락중 어느 두 개가 사라 지냐에 따라 raptor 와 조류는 동일한 특징을 혹은 상이한 특징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Raptor의 경우에는 첫째, 둘째, 셋째 손가락이 발달하고 넷째와 다섯째는 발육을 중지한 채로 소위 “I,II,III” 의 구조를 이룬다(IV와 V는 아주 작지만 볼 수 있다.). 지난 150년간 조류의 손가락 구조는 진화론의 파라다임에 따라 I,II,III의 구조로 결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최근 A. C. Burke등은 실제 발생 단계에 있는 여러 종류의 새들의 손가락 뼈의 발생을 진화론의 선입관이 없이 연구한 결과 조류는 첫째와 다섯 번째 손가락이 발생 도중 퇴화되어 “II, III, IV”의 구조를 이룬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150년간 실험 한번 하지 않고 군림해 오던 진화론의 오만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결론
“날개 있는 모든 새들을 그 종류대로 창조하시니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창 1:21)”. 하나님이 주신 이 분명한 말씀이 있는데도 세상은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 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 하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롬 1:21-23)”라는 말씀과 같이 진화론을 믿고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고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 졌을 뿐이다.
다윗은 시편 19편에서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 도다.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라고 노래하였다. 진화론적 세계관을 배제하고 객관적인 연구를 한다면 모든 사람들이 자연에 나타난 하나님의 창조 섭리를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날개 있는 모든 새들을 그 종류대로 창조하시니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으며, 날개 있는 모든 새들이 하나님의 창조 사역을 증거 하니라. 아멘.
참고문헌
Ji,Q. et al., Nature, 1998, 393:753-761
Burke, A.C. et al., Science, 1997, 278:666-668
Ruben, J.A. et al., Science, 1999, 283:514-516
Britt, B.B. et al., Nature, 1998, 395:374-376
Swartz, S. Science, 1998, 281:355-356
Pedian, K. and Chiappe, L.M. Sci. Am. 1998, Feb., 38-47
Denton, M. Evolution:A theory in crisis.
↓ <그림 2. 악어(위)와 조류(아래)의 몸통 횡단면 비교. (pc: Post colon) >

포스트 게놈시대  (정명철 2002/1/29)

 

얼마 전 저명 과학 잡지인 ‘사이언스’와 ‘네이처’는 인간의 모든 ‘게놈’을 완전 해독하여 보고하였다. 2005년에나 해독 될거라던 예상을 깨고 단시간에 해독된 이유는 한 생명공학 벤처회사의 상업주의에 영합한 속도전 덕분이었다. 이유야 어쩌든 소위 ‘생명의 책’이라고 불리던 게놈의 완전해석은 적지 않은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지금까지 인간(동물)과 아기장대, 쌀(식물), 초파리(곤충), 효모 및 대장균(미생물), 599종의 바이러스 등을 포함한 광범위한 생물체의 유전자가 해독되어 바야흐로 게놈시대가 열렸다. 이러한 게놈의 해석은 단지 과학적 업적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정보상품, 진단시약, 치료제 개발 등 고부가가치의 상품을 생산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많은 경제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관심의 대상이다.  

게놈과 그 해독

‘게놈(genome)’이라는 단어는 ‘유전자(gene)의 전체(ome)’라는 뜻의 합성어로 유전물질인 디옥시리보핵산(DNA)을 담고 있는 염색체쌍 전체를 일컫는다. 인간은 23쌍의 염색체를 갖고 있으며 이들 염색체는 30억 개 정도의 DNA 염기서열로 되어있다. DNA 염기는 4종류의 염기로 구성되어 있는데, 아데닌(A), 구아닌(G), 시토신(C) 및 티민(T)이 그것이다. 이 네 개의 염기는 적당한 순서로 되어 있으며 그 순서에 따라 외모, 성격, 유전병 등이 결정된다. 다시 말하면, 게놈은 이 네 개의 알파벳으로 쓰여진 암호문 책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이 암호문 속에는 의미가 있는 암호와 의미가 없는 암호가 있지만 기능이 없어 보이는 암호 속에도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기능이 숨겨져 있어 쓸모 없는 것은 하나도 없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인간의 유전자는 얼마나 정교한 설계도인가를 깨닫게 된다. 예를 들면, 4번 염색체상의 돌연변이로 CAG(글루타민이라는 아미노산을 지정하는 정보)라는 단어가 39번 이상 반복되면 중년에 퇴행성 질병인 헌팅턴병에 걸리게 된다.  
게놈의 염기서열을 분석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인간의 경우 두 가지가 사용되었다. 하나는 전체 DNA를 연구하기에 좋은 적당한 길이로 자른 다음, 염색체 지도를 완성하여 적당한 길이의 절편이 어디에 해당하는지를 먼저 확인한다. 그런 다음  해당부분을 하나씩 서열분석 하는 방법으로 미 정부 주도의 휴먼게놈연구소(NHGRI)를 비롯한 국제협력기구가 택한 방법이다. 다른 하나는 인간 전체 게놈을 분석하기 편한대로 무작위로 잘라 분석한 다음(이를 ’shotgun’ 방법이라고 함) 각각의 분석된 서열을 컴퓨터에 입력하여 조각그림 맞추듯이 맞추어 나가는 방법으로 메릴랜드 락빌에 위치한 벤처회사인 ‘셀레라 지노믹스’가 택한 방법이다. 후자의 방법이 더 노동집약적인 작업이지만 슈퍼컴퓨터의 도입과 로봇에 의해 조절되는 DNA 자동분석기의 등장으로 그 기한을 4년이나 앞당기는 개가를 올리게 되었다.

인간게놈분석 결과

 ’네이처’가 밝힌 인간 게놈 분석 결과, 인간의 유전자의 수는 3만 내지 4만개 정도로 최대 10만개에 달할 것이라던 과학계의 일반적인 견해보다 훨씬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유전자 수는 이미 유전자 지도가 완성된 식물인 애기장대의 유전자 수인 2만 5천개와 큰 차이가 없는 것이며, 선충인 C. 엘레강스 1만 9천개나 초파리의 1만 3천개의 2-3배, 효모의 5배에 불과한 것이다. 비슷한 유전자 수이지만 인간은 벌레보다 훨씬 복잡한 이유는 미스테리라고 화이트헤드 연구소의 에릭 랜더는 말했다. 또한 각 개인의 유전자는 99.99%가 똑같으며, 나머지 0.01%의 차이가 인간 개개인의 차이를 결정 짓는다고 밝혔다. 흥미로운 사실은 유전자의 변이가 여성보다 남성에게서 2배정도 빈번하게 발생한다는 것이다. 남성의 경우 한꺼번에 많은 정자를 생산하기 때문에 DNA를 합성하는 과정에서 실수가 일어날 수 있는 확률이 높은 반면, 여자의 경우 한 달에 하나의 난자를 만들기 때문에 실수가 일어날 확률이 낮을 것이라고 혹자는 설명하기도 한 다. 이로부터 남성의 활발한 유전자 변이가 많은 질병을 유발했다고 평가하면서 여자의 평균 수명이 남자보다 긴 것도 여기서 비롯된다고 추정하는 사람도 있다. 더 흥미로운 사실은 DNA의 1 내지 1.5% 만이 단백질을 생산하는 암호를 가졌을 뿐인데 이것은 과학계가 예상했던 3 ~ 5%보다 낮은 수치이며, 게놈 전체는 후에 기능이 밝혀질지는 모르지만 현재는 ‘정크 DNA’로 가득 차 있다고 한다. 지난번 미 국립보건원(NIH)에서 열린 인간게놈 완성을 기념하는 심포지엄에 참석했을 때 화이트헤드 연구소의 에릭 랜더는 이를 “인간게놈 안에는 유전자가 없다”라며 말로 요약했다. 셀레라의 회장인 크레그 벤터는 인간 게놈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복잡하며, 유전자를 게놈 속에서 찾아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고 고백했다. 과학자들은 3만 정도 밖에 안 되는 유전자라는 문장(sentences)으로 인간의 기능을 충분히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고 믿는다. 다만 인간의 기능을 발휘하는 데 필요한 모든 단백질을 생산할 수 있는 방법은 이들 조각이 여러 조각으로 나뉘어져 재배열되는 방법으로 한 유전자가 10개 이상의 다른 단백질을 생산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인간 게놈의 분석은 유전성질환을 일으키는 기형유전자를 찾아내고 그 치료법을 찾을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뿐만 아니라 각종 중독성 질환의 원인 규명에 획기적인 진전을 기대할 수도 있으며 심리학과 정신병 치료에도 혁신적인 변화를 몰고 오며 인간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유전자를 발견하게 되면 반사회적인 행동을 예방하거나 치료할 수 있는 약품을 개발할 수 있다고 전망한다.      
포스트 게놈시대

 이제는 포스트 게놈시대이다. 남아있는 과제 중 가장 시급한 것은 유전자의 기능과 역할을 밝히는 것이다. 인간게놈지도가 대기업의 수많은 직원의 이름과 부서를 기록한 전화번호부라면 각 직원이 맡은 업무, 부서간 협조관계, 업무가 잘못됐을 때 책임자 규정 등을 밝히는 것이 앞으로 활발히 연구될 것이라고 AP 통신은 설명한다. 현재는 각 직원의 이름과 얼굴을 맞추는 일이 시급하다. 많은 유전자중 가장 관심을 보이는 분야는 인간게놈 정보를 이용해 유전질병의 원인이 되는 유전자를 규명해 내는 것으로 개인간 DNA 차이를 구별하면 유전자 구조의 변화를 가져오는 유전패턴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러한 작업을 기능 게놈(functional genome) 사업이라고 하는데 한국인의 경우 가장 관심거리인 간암, 위암 등의 원인이 되는 유전자의 발굴을 위해 정부 주도의 연구가 진행 중에 있다. 만약 질병유전자가 밝혀지고 그 유전자의 결함을 밝히기만 하면 ‘유전자 치료’라는 방법을 통해 고장난 유전자를 고칠 수 있게된다. 유전자 치료란 결함이 있는 부위의 유전자를 새로 고쳐 정상 유전자로 만든 다음 이를 세포 내로 전달하는 매개체를 통해 주입하여 고장난 유전자와 치환하는 치료법으로 아직도 남아 있는 문제점이 많다.  
 포스트 게놈시대에 우리의 생활은 어떻게 바뀌게 될까. 우선은 DNA 칩을 이용한 진정한 예방의학이 가능해질 수 있다. DNA 칩은 수 천 개의 유전자를 손가락 마디 만한 칩에 모아 놓은 것으로 환자의 혈액이나 피부로부터 RNA를 분리해 반응시켜보면 어떤 질병에 걸릴 가능성이 높은지를 알 수 있다. 또한 개개인의 특성에 맞는 맞춤 치료법이 등장할 수도 있다. 지금까지는 어떤 약이든 개인에 따라 10 내지 40% 정도에게서는 효과가 없지만 개인별 유전자의 차이에 맞는 약이나 치료법을 골라 처방하면 치료효과를 극대화 할 수 있다. 이처럼 종족간 또는 개인간 유전자의 차이를 비교 분석하여 특정 종족 또는 개인의 유전질병 치료를 목표로 연구가 한창 진행 중인데, 이를 비교유전체 (comparative genomics) 사업이라고 한다.  
 그러나 항상 희망 뒤엔 그림자도 있다. 유전자 차별이 그 한 예로 고객의 유전정보를 보험회사가 입수하면 앞으로 질병이 걸릴 확률이 높은 고객은 보험회사가 기피하게 되거나 차별할 수 있다. 사실 지난해 미국경영협회의 조사에 따르면 미국 중대형 기업의 30% 직원들의 유전정보가 입수되고 있고 7%는 그 정보를 고용과 승진의 자료로 이용하고 있다고 한다. 즉, ‘유전자 불량자’는 취업이나 승진, 보험에 드는 것조차 힘들게 된다. 머리 좋은 배우자, 건강하고 좋은 유전자를 가진 아기의 맞춤도 등장할 수 있다. 최근 핵치환 기술에 의한 체세포 복제 기술은 이미 인간 복제의 가능성을 제시하였고 더군다나 좋은 유전자를 가진 우수한 아기를 갖고자 하는 부모의 마음이 영합되면 맞춤아기의 등장이 공상만은 아닌 듯 싶다.  
 또 한가지 문제점은 특허 경쟁이다. 특별히 질병 관련 유전자가 발견되어 특허를 받게 된다면 그 유전자를 이용해 질병을 진단하거나 치료하게 되면 특허비용을 내야 한다. 특히 DNA의 이중나선구조를 처음 밝힌 왓슨은 유전자에 특허가 매겨 진다는 것은 ‘완전히 미친 짓이다’라고 했는데 유전자 정보와 연구 결과는 공중에게 공개되고 이용되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상업주의에 이용되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바라기는 인간을 포함한 모든 게놈정보가 밝혀짐으로 인해 인간의 건강과 복지를 위해 쓰일 뿐 아니라 하나님의 지혜의 설계를 밝히는 좋은 과학적 도구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한다.      

엿새 동안에…(최인식. 창조과학선교회)

 

마음으로 죄지을 수 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란 후 죄의 삯은 사망이요, 생명은 피에 있나니, 피흘림이 없이는 죄 사함이 없나니, 내대신 죄없으신 분이 피 흘려 자기의 생명을 나의 죄 값으로 희생 함으로 내가 율법의 저주를 피하게 되는 복음을 듣고 너무나 기뻤습니다. 우선 이해가 되고 믿어지는 말씀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나의 구원주로 믿었습니다. 얼마 동안은 옹졸한 자신에 대한 뉘우침과 지금까지 속고 살아온 억울함과 진리를 알게 된 넘치는 감격으로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경건한 마음으로 창세기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첫 장부터 문제에 봉착했습니다. 하나님이 24시간이 하루인 6일만에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모든 것을 창조 하셨다고 합니다. 학교에서 배운 상식과는 거리가 멉니다. 그런 후 얼마되지 않아서 창조과학에 관한 문헌을 접수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의심이 안개 사라지듯이 사라지고 그날부터 오늘까지 한번도 창세기 1장의 하루가 24시간의 하루인 것에 대해 의심 해본적이 없게 되었습니다. 그 때 이것에 관해서 하나님께 남은 생애를 다해 헌신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창세기1장의 하루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내용을 믿지 못하는 분과 늘 나누어 보고싶습니다.  

(1) 창조주간의 하루가 진정 24시간의 하루였다면 하나님께서 그 이상 더 분명히 기록할 수가 없습니

   다. 저녁과 아침을 얘기한 것은 첫날부터 지구의 자전을 명시한 것입니다.
(2) 창세기 1장외에 저녁과 아침이란 말이 욤(day)과 함께 쓰인 적이 23번, 욤없이 쓰인 적이 38번

 도합 61번이나 모두 보통 하루를 의미합니다. 왜 창세기 1장의 내용만 문제가 됩니까?
(3) 저녁과 아침이란 말이 히브리어로 각각 100번 이상 쓰여졌으나 한번도 보통하루의 저녁과 아침을

 말하지 않은 때가 없습니다.  
(4) 날 앞에 첫째 둘째 셋째라는 숫자적인 형용사를 쓸 때는 반드시 24시간의 하루입니다. 창세기 1

장 외에 410번이나 욤이 숫자와 함께 쓰여졌습니다. 모두 보통 하루를 말합니다. 혹시 그렇지 않은구절이 있어도 문맥을 따르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5) 창세기 1장 외에 밤이란 말이 욤과 53번 쓰여졌으나 모두 보통 하루를 의미합니다.
(6) 욤(day)은 거의 1200번, 야밈(days)은 거의 700번이나 보통의 날로 쓰여졌습니다.
(7) 흠정역에 65번이나 보통의 날 보다는 시간이란 표현으로 쓰여 졌지만 예외 없이 문맥을 따라 읽

    으면 충분히 이해를 할 수 가있게 되어있습니다. 보통 하루 이상의 긴 시간을 나타내는 표현들이 얼마든지 있었습니다.

(8) 창세기 1장에 처음으로 하루에 대한 정의가 아침과 저녁, 낮과 밤이란 표현과 더불어 역사적으로 정의가 됩니다. 이처럼 창세기 1장외에서는 욤이 아무런 문제의 대상이 되지않습니다.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3일 있고, 이스라엘민족이 여리고 성을 7일 돌았던 일에 대해서는 아무 질문이 없습니다.  

(9) 창세기 1장의 하루가 보통하루가 아니면 오히려 많은 문제가 있습니다. 창세기 1장 14절에 보면 넷째 날에 일월성신이 창조되는 여러 이유 중에 사시와 일자와 연한이 정의되는 말씀이 나옵니다. 여기의 세 단어는 분명히 길이가 다른 시간을 의미하고 그리하여 일자라는 표현이 보통하루라는 것은 더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10) 창조주간 셋째 날 풀과 채소와 열매 맺는 나무를 만드시고 식물의 영양분을 광합성하는데 필요불가결의 태양이 넷째 날 만들어지는데 이때 하루가 보통의 하루가 아니고 수백만년이면 이것들이 살아남을 수가 없게 됨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물론 첫째 날 만드신 빛이 자전하는 지구에 필요한 빛과 열에너지를 공급한다 할지라도 꽃이나 씨 가진 열매 맺는 과목은 곤충이 없이는 안 되는데 곤충은 여섯째 날 만들어졌다는 것을 생각하면 하루가 반드시 보통 하루일 수밖에 없습니다.

(11) 흔히들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이 한가지를 잊지 말라.” 하는 베드로후서 3장 8절의 말씀이 창세기 1장의 하루가 긴 세월이라는 것을 뒤 바침 한다고 주장하는데 이것은 그 다음 9절을 보면 분명히 그렇지 않은 것이 나타납니다.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여기에는 분명히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한 사람들의 회개에 대한 인내와 초조하심을 나타내는 표현이지 하나님이 하루와 천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말은 아닙니다. 사실 하루에 대한 분명한 정의가 첫날 정립되어 있지않으면 이런 표현을 나중에 쓸 수가 없습니다. 흠정역에는 더 분명히 되어 있습니다. “-one day is with the Lord as a thousand years, and a thousand years as one day.” 여기에서 IS 만 있으면 동격이 되는데 AS가 첨가되어 있어서 비교하는 표현으로 쓰인 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12)            출애급기 20장 11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6일 동안 창조하시고 제7일에는 쉬었다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에서 인류문화의 7일주간의 유래가 시작한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여기에서 하나님이 안식한다는 표현을 지금도 계속 안식한다는 주장을 하는데 영어표현을 보면 그렇지 않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RESTING이 아니고 RESTED인 것입니다. 흠정역을 보면 안식일에 관해 말씀하실 때 출애급기 31장 17절에서 “이는 나와 이스라엘  자손 사이에 영원한 표징이며 나 여호와가 엿새 동안에 천지를 창조하고 제 칠일에 쉬어 평안하였음 이니라 하라.”고 말씀하실 때 RESTED AND REFRESHED라고 말씀하신 것은 창세기 2장3절의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 날에 안식하셨음 이더라.”와 같은 말씀이고 일곱째 날 하루만 말씀하신 것이 분명 합니다. 히브리서 4장 1절에서 11절까지의 안식은 죄와 사망이 없는 창조 칠일째의  안식과 동일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미래의 안식입니다. 창조후 얼마되지않아 아담과 이브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는 계속 쉬지 않으셨습니다. 이것은 요한복음 5장 17절에 분명히 말씀 되어 있습니다.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라고 하셨습니다. 아담과 이브의 후손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일하심 없이 중생하고 성결의 삶을 영위 할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창조주간의 하루가 24시간이 아니라고 하는 주장을 자세히 고찰해보면 공통점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철저한 진화론에 바탕을 둔 현대지질학의 지층연대를 수용해야겠다는 고집에서 나온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창세기 1장의 1절과 2절 중간에 긴 시간을 허용하기를 원하는 간격이론(gap theory)의 모든 문제점을 그대로 안고있습니다. 또 이들은 주로 우주기원의 이론으로 대폭발(big bang)을 받아드립니다. 아담의 죄 이전에 이땅에 죽음이 오랜 세월 계속했다는 주장을 합니다. 그러면 둘째 아담인 예수님의 죽음이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됩니다. 또 대다수가 국부적인 홍수를 주장합니다. 그러므로 무수한 화석을 설명하기 위해서 수십억 년의 긴 세월을 요구하는 동일과정설을 지지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들은 유인원이 사람의 조상이라는 현대 인류학도 받아 드립니다. 하나님이 진화론의 주인공으로 믿는 유신진화론(theistic evolutionism)자나 아니면 한 거름 나아가서 진화론으로 전혀 설명이 되지않는 부분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초자연적으로 간섭하셨다는 어떻게 보면 믿음이 대단한 척하는 진행적창조론(progressive creationism)을 주장하는 자들입니다. 후자에 속하는 대표적인 사람이 휴 로쓰라는 사람입니다. 창조과학을 한다는 사람들 가운데도 그들의 이론에 추파를 던지는 고집은 마음 아픈 사실입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그들이 옳을 수도 있으니  단정적인 경직을 버리라는 이들의 태도는 관용과 지식을 자랑하는 세속학자로서나 자유주의신학자들의 태도와 다를 바 없어서 위험 천만입니다. 창조주간 6일의 하루가 24시간의 하루입니다. 지구와 우주의 창조가 6천년 전에 있었다는 사실이 하나도 의심이 없는 것은 우리의 하나님은 전능하신 엘샤다이시고 그분의 장중에 있는 6천년이 창조주와 관계없는 한 점 밖에 되지 않는 46억년이나 160억년 보다  훨씬 더 길다는 사실이 마음속에 믿음으로 받아드려 질 수 있기를 하나님께 오늘도 간구합니다.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있는 모든 것을 만들고 제 칠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출애급기 20장 11절)

참고문헌: Holy Bible, New Scofield study system
        The Modern Creation Trilogy by Henry Morris
        The Answers Book by Don Batten
        How long was the seventh day? James Stambaugh(Impact article,No.197)

내가 6일 창조를 믿는 이유 (김무현2003/6/6) 텍사스 A&M 대학 교수

하늘을 창조하여 펴시고 땅과 그 소산을 베푸시며 땅 위의 백성에게 호흡을 주시며 (이사야 42:5)

나는 박사학위를 받은 후까지도 성경 말씀이 창조주 하나님의 계시라는 것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다

른 종교의 경전들도 깊이 있고 윤리적인 내용들이 많이 담겨 있으며 그 중에는 성경의 가르침과 유사

한 내용도 있다.

성경이 그런 경전들과 근본적으로 다른 것은 무엇일까? 물론 성경은 “모든 성경이 하나님의 감동

으로 기록되었다”(디모데후서 3:16)고 증거한다. 하지만 성경이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되었다는 것을

성경구절로 증명한다는 것은 순환논리이므로 설득력이 없었다.

미국 대학에 교수로 부임하면서부터 나는 항상 짐이 되었던 위와 같은 질문에 스스로 도전해 보

기 위해 매일 아침 출근하자마자 한시간씩 성경을 연구하고 묵상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묵상이 몇

년 동안 계속되는 가운데 참으로 많은 성령님의 인도하심과 깨달음이 있었다. 이 기간동안 그때까지

막연히 품고 있었던 성경에 관한 많은 의심과 회의가 걷히고 성경이야말로 결코 사람이 만들어낸 종

교적 경전이 아니라는 확신이 들게 되었다. 그리고 그전까지는 평범하고 필요없는 것같이 생각되던

내용 가운데도 심오한 진리가 숨겨져 있음도 깨닫게 되었다. 성경이 하나님의 계시로 기록되었다는

가장 큰 증거는 역시 예언의 성취와 처음부터 끝까지 너무나 완벽한 일관성에 있다.

이렇게 성경에 대해 확신을 갖게 된 후에도 한가지가 찜찜했는데 그것은 창세기 1-11장의 내용

이었다. 학교에서 과학적 사실이라고 배운 내용들과 너무도 상반되기 때문이었다. 그 중에서도 6일 창

조와 노아 홍수가 특히 그러했다.

나 자신에게 확신이 없었기 때문에 창세기 성경공부를 인도할 때에도 과학을 전공한 교우들이 말도 안 된다고 우길 때에는, 믿기 힘들면 그냥 상징적인 의미만으로 해석하라며 어물쩍 넘어가곤 하였다.

그러던 중에 창조과학에 관한 여러 서적들을 접할 기회가 생겼다. 특히 헨리 모리스 박사님의 책들과 ICR(Institute for Creation Research)과 AIG(Answers In Genesis)의 여러 자료들이 정말로 많은 도움을 주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인본주의적 진화론으로 너무도 철저히 세뇌되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진화론이란 것이 증명할 수 있는 참과학이 아니라 추론에 불과한 유사과학임을, 실제로 진화론을 뒷받침해 주는 자료들도 별로 없음을 알게 되었다.

심지어 화석마저도 진화론의 가장 큰 장애라는 사실이 충격적이었다. 조나단 웰스 박사가 에서 밝혔듯이 진화론에 관한 한, 과학 교과서들이 얼마나 허구적이고 철학적(자연주의에 관한 맹신)인 내용들로 가득 찼는지도 알게 되었다.

더욱이 최근 들어 DNA연구와 정보이론, 지적설계 이론들을 접하며 창조와 지적설계에 대한 확신이 더욱 굳어지게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성경에 관해 찜찜했던 마지막 짐이 벗어진 것이다.

이후에야 모든 성경이 성령님의 감동으로 기록되었다는 사실을 확신을 가지고 전할 수 있었다. 예수님께서도 창세기가 모세에 의해 기록되었다고 하시며 “모세를 믿지 못한다면 나 또한 확신으로 믿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신  바 있다(요한복음 5:46-47). 모세오경을 하나님의 계시가 아닌 신화라고 믿는 사람들은 그만큼 예수님을 진실로 믿는 것도 힘들다는 말이다.

이후로 나는 확신을 갖고 한국창조과학회(KACR)와 미주창조선교회(ACTS)의 남부 지부장으로 사역하고 있다. 이와 같이 귀하고 보람된 일을 맡겨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기쁨으로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창세기 중 진화론자들로부터 가장 많이 공격받는 부분은 창세기 1장에 나오는 6일간의 천지창조 내용일 것이다. 전능자를 철저히 배제하고 모든 기원과정을 수십 억 년에 걸친 자연과정(Natural Process)이라 주장하는 무신론적 자연주의자들이 절대 양보할 수 없는 최후의 아성이 바로 지질학적/우주적 오랜 연대이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오랜 연대는 우주/지구/생명의 진화를 부분적으로나마 정당화하기 위해서 무엇보다도 꼭 필요한 전제이다.

그들은 지난 200여 년에 걸쳐 과학이라는 학문분야에서 전능하고 초월적인 창조주의 존재나 지적설계 개념을 철저히 배제해 왔다. 모든 기원이론은 자연주의 관점에서만 설명해야 한다는 규정을 만들고, 그 체계 안에서만 학문의 탑들을 쌓아 나갔다.

그 결과 현대과학은 모든 자연의 현상 및 기록들을 객관적인 입장에서 바라보고 논리적으로 해석하는 대신, 전능자의 지적설계 및 초월적 창조를 철저히 배제한 학문체계로 자리잡게 되었다.

그들은 오랜 우주/지구를 보여주는 자료들이 많이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것들은 격변의 상황은 없었고, 모든 것이 지금과 같은 속도로 진행되어 왔다는 균일론의 가정 하에서 성립된 추론일 뿐이다.

실제로는 젊은 우주/지구를 보여주는 자료들이 많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진화론이라는 배경신념과 모순이 된다는 이유 때문에 철저히 배제되고, 무시되고 있다. 그런 와중에 성경적 창조를 믿는 과학자들은 철저히 소외를 당하며 지적인 조롱과 핍박 속에 놓이게 되었다.

주를 비방하는 자들의 비방이 내게 미쳤나이다. (로마서 15:3)

이러한 과학의 진화론을 중심으로 한 도그마(dogma) 때문에 많은 신학교와 교회에서 창세기의 해석을 애써 현 과학의 패러다임(paradigm)에 끼워 맞추려는 시도와 노력들이 많이 있어 왔다. 유신론적 진화론(theistic evolution), 간격이론(gap theory), 날-시대 이론(day-age theory), 그리고 점진적 창조이론(progressive creation) 등이 그러한 것들이다.

주께서 가라사대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하며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나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 (이사야 29:13)

그 중 유신론적 진화론은 그 자체가 초월적 창조주가 없다는 것과 유사하기 때문에 복음적 신앙과 병행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성경 어디에도 그러한 암시나 힌트조차 없기 때문이다.
간격이론 및 날-시대 이론은 창세기 1장을 현 과학의 오랜 우주/지구 패러다임에 맞추어보려는 노력인데, 성경적 해석에도 문제가 있을 뿐 아니라 현 과학의 패러다임인 진화론과도 병행하기 쉽지 않은 많은 문제점들이 있다.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말을 너희는 가감하지 말고 (신명기 4:2)

나도 한때 날/시대이론이 더 그럴 듯하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전능하신 창조주께서 그 모든 창조를 수십억 년에 걸쳐 철저히 자연적 과정(Natural Process)에 의존해야만 할 특별한 이유도 없을 뿐더러 그에 대한 확실한 과학적 증거도 없다는 사실을 알았고, 그 후에는 다시 한번 그 문제에 대해 깊이 성찰해 보게 되었다.

특히 재림 후에 이루어질 전 우주적 재창조는 수십억 년이 아닌 단시간에 이루어질 것임을 성경은 증거하고 있다. 주님 재림 후의 재창조가 단시간에 이루어질 것이라면 태초의 창조도 수십억 년이 걸려야 할 이유가 없다.

이러한 전능적/초월적 창조는 이미 과거에 이루어진 일이고 과학의 범주를 초월하기 때문에 과학으로는 그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없다. 단지 하나님께서는 전능한 창조의 흔적들을 이 자연세계에 남겨 놓으시며 크리스천 과학자들이 그것을 탐구할 기회를 주셨다. 또한 과학자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그 창조과정을 이해할 수 있도록 쉽고도 간략하게 그 대략을 성경을 통해서 계시하여 주셨다.

진화론적 세계관과 과학주의로 철저히 세뇌된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6일 창조가 오히려 불편하게 느껴질지 모른다. 주위사람들이 지성인이 아닌 맹신자라고 놀릴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생길 수도 있다.

그러나 앞에서도 밝힌 바와 같이 오히려 젊은 우주/지구를 보여주는 자료와 현상들도 많이 존재한다. 나 자신이 그랬듯이 그것들을 자세히 공부해 보면 성경적 창조가 더 이상 불편하게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또한 실제로 인류의 모든 역사적 기록이나 유물들은 진화론에서 주장하고 있는 것처럼 지질학적 세월에 걸쳐 존재한 것이 아니라 노아 홍수를 전후하여 갑자기 나타난다. 세계 모든 종족과 언어의 기원도 성경에 기록된 노아 홍수와 바벨탑 사건으로 더 잘 설명된다.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요한복음 17:17)

여호와의 말씀으로 하늘이 지음이 되었으며 그 만상이 그 입기운으로 이루었도다 (시편 33:6)

창조란 인간의 두뇌로 이해하기에는 너무도 엄청난 일이기 때문에 그것을 아는 데에 있어 한계를 인정해야 하며, 그렇기 때문에 어느 한가지 관점만 절대로 옳다고 주장하며 법칙(Doctrine)화 하는 것은 문제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절대적으로 계시하여 주신 성경을 가장 자연스럽게 해석하며, 그 기원을 이해하는 것은 성경전체를 바르게 이해하는 데 참으로 중요하다. 고린도전서 13:12 말씀 “이제는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처럼 창조의 자세한 내용은새 하늘과 새 땅에서 주님께서 친히 가르쳐줄 것이다. 그때 우리는 그곳에서 계시록의 24장로들과 같이 전능하신 창조주를 다음과 같이 찬양할 것이다.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요한 계시록 4:11)

한편, 창조와 타락의 중요한 신학적 기초가 창세기 1-3장에 있기 때문에 그 내용 자체가 하나님이 계시하여 주신 절대적 진리임을 믿는 것은 신앙인으로서 반드시 갖추어야 할 자세이다. 모세오경을 신화로 보려는 자유주의적 입장은 근거도 희박하며, 오히려 우리 믿음의 기초를 무너뜨리려는 사단의 가장 좋은 무기로 사용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하기 바란다.

누구든지 이 계명(구약 특히 모세오경)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마태복음 5:19)

인간의 머리에서 추론해낸 진화론이란 가설에 창조주 하나님의 계시를 애써 끼워 맞출 필요가 없다.

다음에는 6일 창조 외의 타협적 성경해석을 도입하는 것이 더 큰 문제를 야기하게 된다는 예를 날/시대 이론을 통해서 살펴보려 한다. 날/시대 이론은 진화론이 거세게 과학세계를 휩쓸기 시작했던 19세기에 휴 밀러(Hugh Miller) 등에 의해 제안되기 시작했다.(1869) 지금은 휴 로스(Hugh Ross)등의 Reasons To Believe라는 단체를 통하여 전해지고 있다.

이 이론은 날에 해당하는 히브리 원어 “욤”(yom)이 성경에서 ‘문자적인 24시간의 날’로도 쓰이지만 때에 따라서는 ‘어느 불특정한 기간’으로도 쓰일 수 있음에 주목하였다(창세기 2:4(창조하신 때), 시편 20:1(환난날), 욥기 20:28(진노하시는 날), 전도서 7:14(형통한 날)). 그리고 창세기에 나오는 창조 순서와 진화론에서 말하는 진화 순서가 어느 정도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에 착안하였다.

한마디로 하나님께서 오랜 세월에 걸쳐 진화론이 말하는 것과 비슷한 순서대로 점진적 창조(Progressive Creation)를 하였다는 것이다. 즉 창세기에 나오는 창조의 한 날은 역사지질학의 한 시대 만큼에 해당한다고 말한다.

이 이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지층이 이미 오랜 세월에 걸쳐 균일적으로 다 만들어졌으므로, 노아의 홍수를 지역적 홍수(local flood)로 본다(이는 예수님께서 노아 홍수가 결코 지역적 홍수가 아니라고 하신 것에 위배된다).

하지만 이와 같은 해석에는 여러 가지 성경적 문제점들이 있다. 히브리 원어 상으로도 욤(yom)이 숫자를 나타내는 제한적 형용사(either numeral or ordinal) 뒤에 쓰인 경우에는 전체 성경을 통하여 한번의 예외도 없이 문자 그대로의 날을 의미한다(이를 더 확실히 하기 위해 성경에는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라는 부연설명까지 있음).

또한 출애굽기 20:8∼11에 보면 창조의 6일(six days)에 해당하는 욤(yom)의 복수형 야민(yamin)이 쓰였는데 이처럼 복수형이 쓰인 경우에는 한번도 예외 없이 문자적인 날을 의미한다.

이는 엿새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 칠일에 쉬었음이라. (출애굽기 20:11)
특히 사람을 창조하여 이 모든 피조세계를 다스리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었다면, 왜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특별한 이유 없이 오랜 지질학적 연대에 걸쳐, 고생대 생물을 만들고 다 죽이고, 공룡을 만들고 다 죽이고 하는 과정을 밟으셨냐 말이다. 이것은 바로 주일학교에서 설교를 하던 나를 당혹하게 만들었던 아들의 질문이기도 하다.

날-시대 이론의 가장 심각한 문제점은 병과 고통과 살생과 싸움과 죽음이 아담의 첫 범죄 이전부터 있었다고 보는 것이다. 또한 전능하시고 의로우신 하나님께서 그 오랜 세월을 낭비해 가며, 이유 없이 수많은 생물들을 약육강식이나 적자생존 등 가장 비효율적이고 잔인한 방법으로 이끄시며 아담까지 오게 하셨겠느냐 하는 것이다.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보기에 심히 좋았다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과 성품에 조화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 듯하다. 또한 인간이 불순종의 죄를 짓기 이전에 이미 피조세계에 질병과 고통, 죽음과 파괴 등이 진행되었으므로 그러한 것들을 인간의 죄 때문이 아닌 창조주 하나님의 책임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성경은 분명하게 다음과 같이 증거하고 있다.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너의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창세기 3:17-19)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로마서 5:12)

피조물의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이니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케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 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 (로마서 8:19-23)

사망이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고린도전서 15:21-22)

인간의 머리에서 만들어낸 진화론이나 역사지질학이란 유사과학에 성경 해석을 애써 끼워 맞추려다 보니 오히려 창조-타락-구속-심판 및 완성으로 요약되는 성경의 큰 물줄기에 큰 흠집을 내게 된다.

그 엄청난 창조가 과학적으로 증명될 수 없듯 진화도 단지 추론이며 과학적으로 증명될 수 없다. 우리 피조물이 초월자가 하신 일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개미들이 사람이 컴퓨터를 만들고 달나라에 가는 것을 이해할 수 없는 것과 같다.

과학의 패러다임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 버리기 바란다. 진화는 종교이지 과학적 사실이 아니다. 6일 창조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성경 전체를 바라보기 바란다.

창세기 1장 원어 읽기 

 

창세기 1장 [개역한글]

1 태초에 하나님(1)이 천(5)지(20)를 창조(2)하시니라
2 땅(20)이 혼돈하고 공허(7)하며 흑암이 깊음(8) 위에 있고 하나님(1)의 신(9)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21)
3 하나님(1)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3) 하시매 빛이 있었고
4 그 빛이 하나님(1)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
5 빛을 낮(19)이라 칭하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시니라 저녁(22)이 되며 아침(23)이 되니 이는 첫째 날(19)이니라
6 하나님(1)이 가라사대 물 가운데 궁창(10)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게 하리라(3) 하시고
7 하나님(1)이 궁창을 만드사(4) 궁창(10)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매 그대로 되니라
8 하나님이 궁창을 하늘(5)이라 칭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둘째 날(19)이니라
9 하나님이 가라사대 천하의 물이 한곳으로 모이고 뭍(24)이 드러나라 하시매 그대로 되니라
10 하나님이 뭍을 땅이라 칭하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 칭하시니라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11 하나님이 가라사대 땅은 풀(26)과 씨(11) 맺는 채소(29)와 각기 종류(27)대로 씨(11) 가진 열매 맺는 과목(12, 13)을 내라(25) 하시매 그대로 되어
12 땅이 풀(26)과 각기 종류(27)대로 씨 맺는 채소(29)와 각기 종류대로 씨(11) 가진 열매 맺는 나무(12)를 내니(28)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13 저녁(22)이 되며 아침(23)이 되니 이는 세째 날(19)이니라
그 종류대로 만드시니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14 하나님이 가라사대 하늘(5)의 궁창(10)에 광명(30)이 있어(3) 주(19)야를 나뉘게 하라또 그 광명으로 하여 징조(31)와 사시와 일자(19)와 연한이 이루라
15 또 그 광명이 하늘의 궁창에 있어 땅에 비취라 하시고 (그대로 되니라)
16 하나님이 두 큰 광명을 만드사(4) 큰 광명(30)으로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작은 광명으로 밤을 주관하게 하시며 또 별들을 만드시고(4) 
17 하나님이 그것들을 하늘의 궁창에 두어(14) 땅에 비취게 하시며
18 주야를 주관하게 하시며 빛과 어두움을 나뉘게 하시니라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19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네째 날이니라
20 하나님이 가라사대 물들은 생물(15)로 번성케 하라 땅위 하늘의 궁창에는 새가 날으라 하시고 21 하나님이 큰 물고기(16)와 물에서 번성하여 움직이는 모든 생물(17)을 그 종류대로, 날개 있는 모든 새를 그 종류대로 창조(2)하시니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22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어 가라사대 생육하고 번성하여 여러 바다 물에 충만하라 새들도 땅에 번성하라 하시니라
23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다섯째 날이니라
24 하나님이 가라사대 땅은 생물(17)을 그 종류(27)대로 내되(28) 육축(32)과 기는 것(33)과 땅의 짐승(34)을 종류대로 내라 하시고 (그대로 되니라)
25 하나님이 땅의 짐승(34)을 그 종류대로, 육축(32)을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33)을
26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18)을 만들고(2)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35),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34)을 다스리라하시니라
29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11)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 식물이 되리라
30 또 땅(20)의 모든 짐승(34)과 공중의 모든 새와 생명이 있어 땅에 기는 모든 것(33)에게는 내가 모든 푸른(29) 풀을 식물로 주노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31 하나님이 그 지으신(4)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19)이니라

Definitions
1. ELOHIYM (plural of Eloahh): the deity; the supreme Being; the true God
-a compound word composed of El (the strong one), and Alah (to bind oneself by an oath); hence, Elohim = the mighty and faithful one
-a uni-plural noun; thus, Elohiym latently implies the Trinity
-the only name used for God in Genesis One; this name is used about 2,500 times in the Old Testament
2. BARA: bring forth something that is radically new; produce that which is new, extraordinary, and/or epochal; produce through supernatural activity
3. HAYAH: become; cause to appear or arise; cause to be made or done; come into existence;

come to pass; make into something
4. ASAH: produce; manufacture; fabricate
5. SHAMAYIM (p1.), shameh (sing.): visible dome of the sky above and in which the clouds move; the realm in which the celestial bodies move; the spiritual realm in which God and the angels dwell and operate
-with respect to the above definitions, the Hebrews referred to the three heavens (cf. 2 Cor. 12:2); whenever shamayim is used with the erets(earth), as in 1:1, the combination refers to the entire physical universe
6. TOHUW: desolated; worthless; wasteness; useless; incapable of being utilized
7. BOHUW: empty; void; devoid of existence
8. TEHOM: a great mass of water; the oceans and the seas
9. RUWACH: spirit; breath; wind.
- in conjunction with Elohiym refers to the Holy Spirit
10. RAQIYA: (apparently) visible dome of the sky; (technically, the atmosphere immediately above the surface of the earth)
11. ZERA: embryos of plants, trees, grasses, etc., i.e., the embryos of any plant species
12. ETS: any large plant containing woody fiber
13. PERIY: fod and/or embryos produced by any living thing
14. NATHAN: set; put; place; appoint; bring forth; apply; ascribe; set forth; send out; show; trust; bestow; cause to appear; charge; commit; deliver
15. SHERETS: swarm of small or minute animals
16. TANNIYM: great or large sea animal; monster
17. NEPHESH: vital animals, i.e., animals that clearly manifest the soulish attributes of mind, will, and emotion
18. ADAM: human being; the human race; i.e., animals that clearly manifest spirit attributes. NOTE: there is no evidence for a spirit dimension for the pre-Adamic hominids
19. YOWM: sunrise to sunset; sunset to sunset; a space of time (defined by an associated term); an age; time or period (without any reference to solar days)
20. ERETS: the planet Earth; a land, a country, or a continent; lands, countries, kingdoms or regions
21. RACHAPH: to brood over, cherishing and vivifying; to be tenderly affected; to be moved
22. EREB: the beginning of darkness; dusk, twilight, or nightfall; closing, ending or completion
23. BOCER: the breaking forth of light; dawn, daybreak or morning; dawning, beginning, or origin
24. RAAH: be seen; appear; show forth, cause one to see; to be perceived or beheld; to be considered
25. DASHA: to bring forth herbage; to sprout; to bring forth
26. DESHE: new vegetation; young plants
27. MIYN: species; life4orm
28. YATSA: germinate, bring forth; produce; spring forth; promulgate; to cause to come forth; issue out; proceed
29. ESEB: green plant(s)
30. MAOWR: a luminous body; brightness; light
31. OWTH: signal; sign, measuring mark; token, omen; evidence
32. BEHEMOWTH: large land quadrupeds
33. REMES: rapidly moving vertebrates; rodents and reptiles
34. CHAY: wild mammals; a multitude or mob; that which is lively or fresh
35. KABASH: subject; subdue; subjugate

창조설화들 알란 밀라드(ALAN MILLARD)

고대의 다른 민족들에 속하는 창조설화들은 창세기가 단순히 히브리 신앙에 적합하게 각색한 또 다른 창조기사를 포함하고 있다는 견해가 나돌게 하였다.

세계에 퍼져 있는 민간설화들
창세기 1장과 2장은 하늘과 땅의 전반적인 창조기사로 이루어져 있고 그 뒤에 인간의 창조에 관한 보다 상세한 서술이 나온다. 우주와 인간의 창조에 관한 이야기들은 그것이 별개의 것으로 되어 있든지 아니면 하나로 묶여져 있든지간에 수없이 많이 있고 또 많은 것들이 서로 여러 가지 공통점들을 갖고 있다. 그 공통점들이란 대개 신존재의 先在.신의 명령에 의한 창조 토기와 같이 흙으로 지음 받은 인간 어떤 점에서 신존재를 반영하고 있는 인간 등이 그것이다. 거의 모든 다신교적 신앙들은 창조설화들에서 추정해낼 수 있는 신들의 계보를 갖고 있다. 최초의 부부 신이나 혹은 독신 신까지도 자손 신 곧 신 가족을 창조하거나 번식한다. 그리고 그 모든 신 가족이 자연의 요소들과 세력들을 대표하거나 지배한다.
어떤 민족들은 물리적인 우주 혹은 물이나 흙같은 하나의 기본적인 요소는 항상 존재하며 신들이 그것에서부터 생성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또 어떤 민족들은 그것이 한 신 혹은 여러 신들의 솜씨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것들은 관찰과 초보적인 논리에 기초된 단순한 개념들이다. 예를 들어 인간이 “흙” 으로 지음을 받았다는 것은 죽음과 부패의 순환에서 쉽게 연역해 낼 수 있다.

그러나 공통적인 개념들이라고 해서 반드시 공통의 기원을 갖고 있다고 볼 필요는 없다. 전세계에서 수집한 서로 다른 설화들에서 그것들이 가진 공통요인들을 찾아내어 다 한 기원을 갖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그릇된 일이다. 서로 다른 설화들이 전부 혹은 대부분 단 하나의 기원을 가졌을 것으로 보기는 힘들다.

고대 근동의 설화들
하지만 창세기를 구약 세계의 다른 이야기들과 비교하여 보는 것이 적절한 일이라 하겠다. 그리할 때 우리는 고대 창조설화 중 불과 몇몇만 한두 가지 기본적인-하늘과 땅의 분리, 그리고 흙으로부터의 인간 창조와 같은-개념을 같이 나누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바벨론의 문헌은 몇 가지 현저히 비슷한 점들을 갖고 있다. 그중 하나를 처음 영어로 번역한 세기에는 바벨론 창조설화가 줄곧 히브리 신앙의 궁극적 근원으로 인용되었다. 최근에 들어와서는 더 많은 본문들이 발견되고 또 오래 동안 알려져 왔던 그 최초의 본문이 재평가를 받기에 이르렀고 그 결과 이미 받아들여졌던 많은 유사점들은 사실 착각이 었다는 사실이 드러나게 되었다.

대개 히브리 창조기사에 연결시켜 온 그 유명한 바벨론 창세기는 여러 창조설화 중 하나에 불과하고 또 그것이 가장 오래된 것도 아니었을 뿐 아니라 가장 일반적인 것도 아니었다. 그 나라의 영웅 바벨론 의 신 말둑(Marduk)의 명예를 위해서 B.C. 2천년대 후반에 기록된 그 설화는 물 속의 한 근원인 母神티 아맛(Tiamat)으로 더불어 시작하는데 그 모신으로부터 신들이 태어난다. (그 이름은 바벨론 사람과 히 브리어 “깊음”에 결부되어 있다). 티아맛은 시끄러운 소리를 내서 골이 나게 한 자기 자녀 신들과의 싸움에서 말둑에게 죽는데 그 시체는 세계를 형성하게 된다. 인간은 땅의 질서를 유지하는 신들의 수고를 덜어서 그 신들로 편히 쉬도록 하기 위하여 창조된다.

이 이야기가 그 이전의 설화들에서 유래되었다는 분명한 암시들이 있는데 이러한 특징들 중 몇몇을 포함하고 있는 그 이전의 설화들이 발견되었다. 자주 나오는 유일한 주제는 한 신의 요소로 인간을 창조 함으로써 신들의 수고를 덜어 주게 되었다는 것이다. 바벨론 창세기에 나오는 신들의 싸움은 수 많은 자유주의 학자들이 창세기 1:2에서와 물들에 대한 하나님의 권능을 언급하고 있는 그 밖의 구절들에서 그 점에 대한 기초적인 언급들을 찾아내려고 혈안이 그어 있음에 도 불구하고 구약성경에 대응부분을 전혀 갖고 있지 않다.

초기 인간에 관한 한 서사시
바벨론의 아트라카시스 서사시(Atrakhasis Epic)는 보다 더 창세기에 가깝다. 이것은 인간의 시초와 사회의 발단에 관한 시인데 그 창조에 대한 서술은 없으나 세계의 질서에 대한 암시가 나온다. 그것은 땅에 물을 대기 위해서 일하는 小神들로 더불어 시작한다. 그 신들은 중도에서 그들의 운명을 거역하는데 그들의 일을 대신할 인간을 창조함으로써 비로소 일에서 벗어난다. 인간은 그의 시끄러운 소리가 혼란을 초래하여 홍수에 멸망당할 때까지 하나의 속죄양이 된다(“홍수 이야기들”을 보라)
개요를 놓고 볼 때 이 시(B.C. 1600년경에 만든 사본들에서 알려졌다)는 창세기 2-8장과 부분적으로 (창세기에서는 “생기) 아트라카시스 시에서는 “한신을 유지하는 것이다(아트라카시스)시에서는 “한 신의 살과 피”)로 창조된다. 인간의 직무는 땅의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다(아트라카시스 시에서는 수고로운 노동,창세기에서는 낙원의 지배).인간은 결국 단 한 가족만 남고 홍수로 다 멸망당한다. 한편 아트라카시스 시에는 처음부터 수고하는 인간들이 나올 뿐 한 사람”아담”도 여자의 별도 창조도 에덴 동산도 인간의 타락도 나오지 않는다. 사실 도덕적인 가르침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그 의미는 단순히 인간의 운명이 이렇게 해서 결정되었으니 인간은 그 운명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수메르(Sumer)의 한 설화는 홍수 이전 시대의 중요한 성읍 다섯의 이름들을 갖고 있는데 그 이름들은 족장들의 시대보다도 훨씬 더 앞서는 시대에 살았던 홍수 이전 왕들의 명단 곧 별도로 보존되어 왔던 창세기 5장의 명단과 연결된다. 바벨론 저작자들은 홍수를 그들 땅 역사의 주된 방해요인으로 보았다. 그러므로 홍수가 온 땅을 다 뒤덮었었다는 기록에 있어서 창세기와 아트 라카스시 시로 대표되는 전승은 동일한 사건들을 회고하고 있다. 바벨론 설화에 나오는 어떤 주제들-특히 대신 일하는 자로서의 인간의 시엔키와 닌마크(Enki and Ninmakh)에서도 그 자취를 더듬어볼 수 있다.

민간의 기억과 계시
이 실제적인 유사점들은 다만 히브리 창세기와 그것과 가장 가까운 다른 설화들의 대응 부분들 사이의 도덕적이며 영적인 사고방식상의 광범한 차이점을 강조해줄 뿐이다. 성경 비평학자들이 서둘러 결론을 내렸던 것처럼 창세기가 다른 설화들에서 유래되었다고 주장할 필요는 전혀 없다. 입장과 내용의 차이가 실제로 현저하므로 그 차이점들은 창세기의 토대를 무너뜨린다기 보다는 오히려 그 책에 대한 하나님의 영감을 강조해주고 있다.

<출처 : 한국컴퓨터선교회>

창세기 1장은 ‘먹을 것’으로 초대한다   이세령

“땅은 풀과 채소와 과목을 내었고 동물과 사람의 식물로 주어졌다”

창세기 1장의 본문과 그 형식구조는 먹을 것의 문제로 초대한다. 그리고 창세기 1장은 향후에 전개되는 하나님 계획의 청사진과 같다. 이러한 먹을 것의 현실을 인류의 죄의 문제와 의의 문제와 어떻게 연관시켜 복음을 이해하는 방편이 되는가.

창조 6일은 이중구조로 나뉘어

창세기 1장에 등장하는 창조 6일은 구조적인 이해를 요구한다. 이미 제6일과 안식의 제7일이 창조를 구조적으로 설명한다. 이것은 창세기 2장 4절 이하의 창조 기사와는 다른 관점이다. 창조의 6일간을 크게 이중적인 구조로 분류한다. 1~3일과 4~6일의 관계다. 1~3일이 거주 공간의 형성과 배치라고 본다면 4~6일을 형성된 거주 공간에 거주인들의 배치다.

첫째 날은 빛을 통한 낮과 어둠의 분리다. 둘째 날은 궁창을 통한 궁창 위와 아래의 물의 분리다. 셋째 날은 궁창 아래의 물을 뭍으로 분리하고 뭍에 식물을 자라게 하는 이중 창조다. 네째 날은 낮과 어둠을 주관하는 두 광명이다. 다섯째 날은 궁창의 새와 물에 있는 물고기다. 여섯째 날은 뭍을 구성하는 짐승과 사람을 지음과 동시에 식물을 먹을거리로 주신다. 역시 이중 창조행위다.

이상의 내용을 볼 때 첫째와 넷째 날은 낮과 어둠의 생성과 그 주관자로 어울린다. 둘째와 다섯째 날은 궁창과 물의 주인으로서 새와 물고기로 어울린다. 그리고 셋째와 여섯째 날은 물과 분리된 뭍에 짐승과 사람이 주인 되고, 또한 뭍에서 나는 풀과 채소와 과목이 그들의 식물로 주어진다.
이러한 창조 일정의 구조는 삶의 거주 기반을 조성하는 일과 이에 상응하는 거주자들의 생성이다. 이러한 창세기 1장의 구조를 살펴본 결론과 맥이 통하는 성경 자체의 언급을 소개한다. 이사야 45장 8절 말씀이다. “여호와는 하늘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시며 땅도 조성하시고 견고케 하시되 헛되이 창조치 아니하시고 사람으로 거하게 지으신 자시니라”

본문은 우상과 비교된 이스라엘이 섬기는 창조자 하나님을 소개한다. 여기서 한 가지만 분명하게 언급해야 한다. ‘사람으로 거하게 지으신 자시니라’에서 ‘사람으로’라는 표현은 원래의 본문에는 없다. 단지 문맥상 거주하는 주체를 사람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기에 첨가하여 번역한 것이다. 이 본문은 결국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누군가 거주할 수 있도록 조성해 가셨음을 말한다. 여기서 거주를 목적하는 조성과 거주자라는 두 핵심 단어를 포괄한다.
이사야를 통해서 이해된 창조는 거주자를 위한 거주 여건의 조성이다. 이것은 창세기 1장이 표현하는 창조와 다르지 않다. 이런 양자의 연관성을 더욱 분명히 하는 것이 창세가 1장 2절과 이사야 45장 18절의 ‘헛되이 창조치 아니하시고’라는 표현이다.

창세기 1장 2절, 거주자들을 위한 공간 조성
이사야 45장 18절의 ‘헛되다’는 단어는 거주자가 거주할 수 없는 상태임을 본문 스스로 증거한다. 헛되이 창조치 아니하시고 (사람으로) 거하게 지으신 자시리라. 헛되이는 창조를 부정적인 표현으로 말한다면 거하게 지었다는 것은 긍정적인 표현이다. 거할 수 있는 창조를 의미한다. 이러한 단어가 동일하게 창세가 1장 2절에 등장한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다.
창세기 1장 2절은 창조 이해에 있어 논란이 많은 구절이다. 특히 무에서 유로의 창조인가 아니면 무질서의 존재에서 질서의 창조인가를 가늠한다. 내가 속한 교회 전통은 1장 1절의 창조 선언이 1장 2절의 상태를 만들었음을 믿는다. 그러나 현재의 목적을 위해서 우리는 단지 6일간의 창조가 1장 2절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말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따라서 육일간의 창조를 순서대로 말하는 것으로 창세기 1장은 만족하지 않고 1장 2절의 상태를 왜 언급하는가를 질문해야 한다. 이것은 육일간의 창조의 방향이 무엇임을 알려준다.
먼저 육일 간의 창조가 시작되기 전의 상태는 혼돈하고 공허하다. 혼돈이라는 단어는 섞여있는 상태로 잘 정비되어 있지 않은 상태를 의미한다. 공허하다는 단어는 비어있다는 의미다. 당연히 잘 정비되어 있지 않은 조성되지 않은 상태에 하나님을 제외한 누구도 살지 않는 환경을 두 단어는 종합적으로 제시한다.
이것은 택지가 조성되지 않은 땅에 아무도 거주하지 않는 상태와 마찬가지다. 창세기 1장 2절은 육일간의 창조는 누군가 살 수 있도록 공간을 거주처로 조성할 필요가 있음을 알리고 있다. 마찬가지로 뒤에 나오는 흑암이 깊음 위에 있다는 표현도 그렇다. 깊은 흑암은 전혀 손길이 미치지 않은 태고의 시대를 말한다. 오직 하나님의 신만이, 그의 숨소리만이 있을 뿐이다.

이제 창세가 1장 2절은 분명히 육일간의 창조의 진행과 어울리는 원래의 상태를 말함이 분명하다. 1~3일간이 조성하는 작업이라면 4~6일은 그 조성된 공간에서 거주자를 만드신 것이다. 그래서 혼돈하지 않은 공간과 공허하지 않도록 거주자를 두신 것이다.

창조 구조의 파격으로 제3일과 6일의 이중창조
창조의 6일 간이 거주 공간 조성과 거주자를 만드는 과정의 구도라고 했다. 그런데 이러한 6일 간의 구조를 살펴 볼 때 눈에 띄는 대조점이 제3일과 6일의 관계다.

제3일과 6일은 모두 이중 창조로 구성됐다. 다른 모든 날은 단일한 창조다. 빛이 있었고, 궁창이 있었고, 큰 광명들이 있었고, 그리고 새와 물고기가 있었다. 그런데 삼일과 육일에는 이러한 창조의 과정이 두 번에 걸쳐서 반복된다. 이는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표현이 두 번씩 반복된다.

제3일에는 물과 뭍을 나누시고 그대로 되었기에 보시기에 좋았더라(9~10)는 것이 일차이다. 그리고 11~13절은 나누어진 뭍에서 풀과 채소와 과목이 나는 것이 그대로 되어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이차적인 창조를 언급한다. 그래서 이중의 창조가 제3일에 이루어진다.

앞서 살핀 대로 제3일은 거주 기반의 조성이기에 이렇게 조성된 거주지에 거주자를 제6일에 만드셨다. 여기서 역시 이중적인 창조가 등장한다. 동물을 창조하시고 그대로 되니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24~5절은 진술한다. 또한 26~30절에서는 사람을 창조하신다. 그리고 30~31절은 그래도 되었고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는 평가를 내린다. 그런데 이러한 이중의 창조의 두 번째 내용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29~30절에는 특별한 말씀이 덧붙여진다. 제3일에 두 번째로 창조된 풀과 채소와 과목의 용도를 지정하시는 말씀이다. 채소와 과목은 사람의 식물이 되고(29), 그리고 풀은 동물의 식물이 된다(30). 이것까지가 그대로 되었다고 선언하고 하나님의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로 제육일이 마감한다.

제3일의 땅에서 나는 것들은 결국 제6일에 만들 동물과 사람을 위한 식물이었음을 알 수 있다. 땅은 식물을 내기 위한 것임을 제3일이 말하고, 제6일은 그 식물이 동물과 사람에게 주었다는 사실을 말한다. 이를 위해서 창조의 육일 간의 구조가 3, 6일에 이중 창조라는 변형적인 구조를 채택하게 되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시대의 ‘난제’인 창조 기사
공교회는 사도신경을 믿고 고백한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을 믿는다. 이것의 근거는 성경 전반에 있지만 창세기 1장도 중요한 근거 본문이다. 그런데 창조의 사실을 기록하는 창세기 1장의 관점은 단지 사실만을 전달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물론 예레미야 선지자가 렘10장 11에 말한 대로 천지를 짓지 아니한 신들은 땅 위에서 하늘 아래서 망할 것이다.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시다. 그런데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어떤 목적으로 천지를 창조했는가까지 말하고 싶어 하는 것이 창조의 기록이다. 기록은 기록의 시점의 언어를 반영한다. 기록은 사실을 근거로 해서 기록자의 시대를 담아낸다.

현대의 성경해석학은 창세기 1장의 창조 기사 뒤에 있는 고대 근동의 신화들이 가진 언어적인 영향들을 많이 발견해 냈다. 마르둑이 원시 바다의 신인 티아맛을 물리치고 천지를 창조했다는 이야기가 창세기 1장 2절의 언어에 반영되었다고 본다. 언어가 반영되었다고 하지만 그러나 근동 창조신화의 아류로써 창조 기사는 아니다.

그 증거로써 넷째 날에 만든 해와 달에 대한 해석이다. 왜 해와 달을 언급하지 않는가? 실제적으로 낮을 주관하는 것은 해고 밤을 주관하는 것은 달이다. 그런데 해와 달이라고 언급하지 않고 왜 두 큰 광명이라고 하는가? 큰 광명 작은 광명으로 표현하는 이유는 당시의 고대 근동에는 해와 달을 신으로 섬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해와 달을 비신화화 하는 작업을 창세기 1장의 기자가 수행하고 있다. 해와 달은 시간과 계절을 구별하는 피조물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우상을 숭배하는 고대 근동세계 신화에 대한 정면 도전이다. 이러한 해석은 오늘날 물신을 비롯한 모든 헛된 신에 대한 메시지로서 역할 한다.
창세기 1장의 언어 선택 뒤에는 이러한 역사 현실을 반영한다. 창조 자체가 타락 이전의 사건이지만 창조를 기록하는 목적은 타락한 이후 시대를 위한 것이고, 타락한 세상의 문제를 역으로 투영하는 것이다. 해와 달을 우상을 섬기는 세상을 역으로 투사하여 기록한 것과 같다.

마찬가지로 창세기 1장의 기록은 그 기록의 구조에서 제3일과 6일의 이중 창조를 쉽게 인식하도록 장치를 두었다. 그리고 그 이중 창조는 동물과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신 하나님을 기억하게 한다. 거주 공간의 조성과 거주자의 창조만을 말하지 않고 이에 넘어서는 의도를 3일과 6일의 구조가 보인다. 1-3일간의 거주 공간의 조성은 궁극적으로 땅에서 먹을거리를 내었다는 진술을 확보한다. 그리고 그 먹을거리를 제6일에서 사람과 동물에게 식물로 주었다는 사실이다.

이는 먹는 문제가 인류의 역사에서 그만큼 중요함을 반영한다. 과학과 기술이 발전한 오늘날도 60억 인구의 칠 분의 일이 굶주린다면 홍수와 가뭄 앞에 하늘만 바라보는 속수무책이었던 시대는 얼마나 심했을까? 그때에 굶주림에 시달리던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도록 창조한 세상이 왜 이렇게 되었을까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무엇이 죄일까? 무엇이 하나님의 구원을 통해서 회복되어야 할 것인가? 이런 것이 오히려 창조의 기사 속에 역 투영되는 과정을 밟고 있다. 어떤 신이 과연 이 빈곤과 굶주림의 문제를 해결할 것인가?

기독교교리문답

기독교교리문답-제1과 하나님과 창조  

제1과 하나님과 창조

1. 이 세상을 누가 만드셨는가?
  답: 하나님께서 만드셨다.
2. 무엇으로 만드셨는가?
  답: 말씀 한 마디로 만드셨다.(창1:3)
3. 며칠 동안에 만드셨는가?
  답: 엿새 동안에 만드셨다.(창1:31)
4. 일곱 째 날은 무엇을 하셨는가?
  답: 모든 일을 마치시고 쉬셨다.(창2:2)
5. 일곱 째 날은 무슨 날인가?
  답: 안식일이니 곧 예배하는 날이다.(창2:3)
6. 하나님은 누구신가?
  답: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시다.(마6:2)
7. 하나님은 형상이 있는가?
  답: 참 신이므로 없다.(신4:15, 골 1:15)
8. 우리가 하나님을 볼 수 있는가?
  답: 신이시므로 볼 수 없다.(딤전1:17)
9.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시는가?
  답: 밤 낮 늘 보신다.(대하16:9, 시 121:4)
10. 하나님께서 어디 계시는가?
  답: 계시지 아니한 곳이 없으시다.(렘23:24, 엡 4:6)
11. 하나님은 모든 일을 아시는가?
  답: 하늘과 땅의 모든 일을 다 아신다.(시147:5, 사 40:28)
12. 사람의 속에 감추인 것도 아시는가?
  답: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것도 숨길 수 없다.(잠15:3)
13. 하나님은 무슨 능력이 있으신가?
  답: 하나님의 능력은 한량이 없으시므로 못하실 것이 없으시다.(렘32:17)
14. 하나님은 몇 분이 계시는가?
  답: 오직 한 분 뿐이시다.(신6:4, 막 12:29)
15. 위는 몇이신가?
  답: 세 위이시다.(마28:19,3:16,17)
16. 세 위는 누구신가?
  답: 성부와 성자 성령이시다.
17. 세 위가 같으신가?
  답: 권능과 지혜와 성품과 옮음이 다 같으시다.(고후13:13)
18. 하나님이 계신 줄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답: 이 세상을 보아도 알고, 성경을 통하여 더욱 알 수 있다.(시19:1,2,8)
19. 성경은 무엇인가?
  답: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한 책이다.(마22:31)
20. 성경은 누가 기록했는가?

  답: 하나님의 성령을 받은 종들이 기록하였다.(딤후3:16)
21. 성경은 어떻게 나눌 수 있는가?
  답: 구약과 신약으로 나눌 수 있다.(고후3:14, 갈 4:24)
22. 신약에는 무엇을 기록하였는가?
  답: 예수께서 나신 이후의 일을 기록하였다.(요20:31)

창세기에 뭐가 적혀 있기에…

 (2004/11/24. Hee y. hwang)

현대는 포스터모더니즘(post +modern +ism) 시대다. 기준(잣대)이 없는 시대다. 내가 좋으면 뭐든 할 수 있다고 보는, 상황에 따라 사는 시대다. 내가 좋아하느냐 아니냐가 중요하며 그것이 곧 판단 기준이 되고 가치 기준이 된다.
나이 드신 분이나 3040 세대만 해도 기준이 있어야 오히려 편한 세대이고 보면 분명 새로운 시대 흐름 속에 살고 있다.
미국에도 일찍이 존 듀이의 진화론적 교육제도가 학교에 도입이 되어 생활 깊숙이 영향을 끼쳤고 또 교육에서 오는 사고나 행동양식이 당연히 신앙생활에도 영향을 끼쳤다. 사탄이 진화론의 이름으로 교육 현장을 장악하고 있는 시대다.
학생들이 학교에서 교육을 받을 때 배우는 지식은 별다른 여과 없이 거의 진리 수준으로 받아드린다. 배우는 것이 어느 세계관에 입각한 것인지 판별이 불가능하며 거부하기는 더더욱 어렵다. 그리고 개개인의 특성을 존중한다는 방침아래 획일적이고 통일적인 것은 가급적이면 지양한다.
그 결과 오늘날 하나님은 종교라는 이유로 학교에서 쫓겨났고 개인의 다른 종교도 존중한다는 기치아래 국기에 대한 맹세문의 "Under the God”이 재판에 회부되기도 했다.

인류에게 필요한 기준, 삶의 잣대는 정말 없는 것일까?
인류에게 필요한 기준이 엄연히 있다.우리가 부러 잊으려 하고 있어서(벧후 3:5) 그렇지 빛이고 진리인 잣대가 있다.바로 성경 말씀이다.

그런데 성경의 창세기에는 우리가 어디서 왔고 왜 이런 모습으로 있는지, 왜 이렇게 사는지… 등의 인류 기원에 대한 모든 기록이 적혀있다. 기원이 적혀 있어 창세기를 알면 모든 문제에 대한 해답을 얻을 수 있고 왜 인류에게는 잣대가 필요한지를 알 수 있다. 기원은 특히 창세기 1장-11장에 주로 적혀 있다.
진화론의 일방적인 쇄뇌에 의해 인류가 잃어버린 모든 것이 성경에는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이를 믿음으로 받아 드리고 안받아 들이고는 개인의 선택이지만 그런 것과 상관없이 성경은 창세기를 통해 여러 기원이 있었음을 알려주고 있다.

인류는 지금 까지 수많은 책을 양산 했지만 올바른 기원을 알려주는 책은 성경밖에 없다.
다시 한 번 창세기에 기록된 여러 기원을 확인하는 과정을 통해 우리의 뇌에 진화론이 남겨 놓은 거짓된 지식과 허구의 기원들이 벗겨지기를 바란다. 그리고 왜 우리가 기준이 필요한지를 세상 속의 예를 들어 알아보자.

1. 대화의 시작

  1. 사랑의 시작
  2. 만물의 시작점 :시간, 공간, 물질(에너지)(창1:1)

2. 물(H2O)의 기원(완성된 물질로서 시작됨) : (창1:2)
3. 지구 생성의 기원 :( 창1:1)
4. 낮과 밤(저녁과 아침)의 기원 :( 창1:5)
5. 빛의 기원(창1:3)
6. 대기권(궁창)의 기원 : (창1:6)

6. 생명의 기원
7. 마른 땅과 바다의 기원 (창1:9-10)
8. 식물(풀, 채소, 과일나무)과 그 색(푸른색)의 기원 : (창1:11-12)
9. 달, 태양, 별들의 기원 : (창1:14-18)
10. 년(365일), 월, 주(7일), 하루(24시간)의 기원 -징조.사시. 일자. 연한: (창1:14-18)
11. 바다 속 생물(큰 물고기)과 공중에 나는 생물 및 동물의 기원 : (1:20-25)

12. 종의 기원
12. 생물에 대한 복의 기원(환경 적응성 ): (창 1:22)
13. 인류의 기원: (창1:26-27)
14. 인류와 동물의 관계에 대한 시작(다스림의 기원) : (창1:28)
16. 성(性)의 기원 : (창1:26-27)
17. 음식의 기원 : (창1:29)
18. 안식일의 기원 : (창2:2-3)
19. 비, 안개의 기원 : (창5-6)
20. 밭의 기원 : (창2:5)
21. 마취 수술의 기원 : (창2:21)
22. 생령(生靈)의 기원 : (창2:7)
23. 가정. 결혼, 분가의 기원 : (창2:24)
24. 강의 기원 : (창2:10)
25. 계명의 기원 : (창2:16-17)
26. 동물 이름의 기원 : (2:19)
27. . 여성 이름의 기원 : (창2:23)

27, 보석의 기원

28: 여성의 정체성:

28: 사역의 시작: “지키라”
28. 죄의 기원 : (창3:1-6)

28: 용서의 시작: “아담아 네가 어디있느냐”(질책하지 않으셨다.)

28. 말의 기원

28: 피흘림의 시작:

28: 죄인에 대한 기다림의 시작:
29. 복음의 시작 : (창3:15)
30. 고통의 기작 : (창3:16)
31. 노동(일)의 기원 : (창3:17,19)
32. 현재와 같은 해로운 환경의 기원 : (창3:18)
33. 옷의 기원 : (창3:21)
34. 성,도시의 기원 : (창4:8, 12, 16-24)
35. 목양과 농사의 기원 : (창4:2)
36. 첫 번째 살인 : (창4:8)
37. 언어. 말. 문자(표)의 기원 : (창4:15)
38. 인류의 족보 기록 : (4:16-26)
39. 큰 배의 기원 : (창6:14-16)
40. 추위와 더위의 기원 : (창8:22)
41. 육식의 기원 : (창9:2-3)
42. 민족의 기원, 언어의 기원 : (창10, 창11:1-9)
43. 기타 : 음악(창4:21), 제철제련(창4:22), 보석,광석의 기원(창2:11-12)… 등등

창세기는 이렇게 많은 기원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기원의 문제가 우리 삶에서 왜 중요한지 일상의 작은 예로 살펴보자.
요즘 올림픽 경기(2004. 그리스)로 세계의 시선이 그리스로 가 있다.
고대 그리스 올림픽은 원래 제우스 신에게 제물을 바치기 위해 시작되었다고 한다. 경기장의 선수들은 제물로 받쳐지는 사람의 죽어가는 고통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선수들은 눈이 파지고, 고개가 꺽여져 죽는 것이 일반이었다고.
특이한 것은 인류의 몸매를 자랑스럽게 여겨 출전한 남자 선수는 전부가 누드였다. (이를 훔쳐보는 여성은 절벽에서 떨어뜨려 죽였다.)
그래서 그리스의 관광 상품에는 벌거벗은 고대 그리스 남자 선수의 모습이 도자기, 그림 등에 나타나 있다.
이번의 올림픽 제전에 이를 기념하여 고대 남자 선수들의 누드 모습을 재현시켰다.

세계의 시선을 주목받는 올림픽. 그 말은 곧 세계로 잘못된 세계관의 확산이 됨을 뜻한다.
어린이나 젊은이가 그 누드모습을 보면 그것이 여과되지 않고 문화로 받아들이게 된다. 그리고 그것을 지금의 시대 사조인 “내가 좋으면 한다”는 ‘포스트 모드니즘’과 연결이 될 때는 교회의 잣대(성경, 십계명)를 전해주기가 더욱더 어렵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무리는 올림픽을 하는 순간에도 인류에게 자연주의를 어연 중에 심는다. 자연적인 것은 아름답다고 인류를 유혹한다. 벗는 것은 자연스러우며 인간의 위선적이고 가식적인 것을 벗어날 수 있는 해결책의 탈출구로 만들어 광고하여 단체 누드 관광 상품으로 까지 내놓고 있다.
생물계에서 몸을 가리는 것은 인간 밖에 없다. 옷의 기원을 알지 못해 본능적인 것은 아름답다고 하며 자연인이 되라고 한다 그리고 우리도 자연의 일부분이며 우리가 자연에서 왔다는 진화론적인 결론에 다다르게 한다. 학교에서 배운 진화론이 진리인 것처럼-

성경은 분명히 옷을 입으라고 한다. 더 정확히 하면 벗은 몸을 가리라고 한다. 하나님이 벌거벗어 부끄러워하고 있는 아담과 하와에게 친히 짐승의 피를 흘려 가죽 옷을 지어 입히셨다.(창 3:21) 이것이 옷의 기원이다.
자녀가 누드 족이 되어 누드촌에서 살겠다고 하면 안 된다는 이유를 어디서 찾을 것인가.
우리가 창조될 때의 모습인 “하나님 형상”에서 얼마나 멀리 떨어져 사는 지는 기원을 알려주고 있는 성경(특히 창세기)에 비추어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간단한 뉴스 하나에서도 인류의 기원에 대해서 되짚어 보는 것은 우리가 소심해서가 아니다.
혹시라도 미혹에 걸려 넘어질까 두려워서 이다. 60억 인류중의 단 한 사람이라도-
그 단 한사람이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고 스스로 실패했을 때 하나님이 직접 이 땅에 인간의 모습으로 찾아오셔서 영원한 형벌인 ‘흑암 속의 불 못’인 지옥에 가지 않게 우리를 대신해 죽어주시기까지 한 하나님의 위대한 창조물이다.

“여호와께서 시내산 위에서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마치신 때에 증거판 둘을 모세에게 주시니 이는 돌판이요 하나님이 친히 쓰신 것이더라”(출31:18)

위험한 도박

<번역문서>

1. 위험한 도박 (2001/7/9)

1. 위험한 도박  

왜 창조/진화 문제가 그토록 중요한가?

 

진화의 과정을 믿어라. 모든 것이 잘될 것이다. – 티모시 레리, The Politics of Ecstasy

나쁜 생각?  

       누군가가 현명하게도 다윈은 운좋게도 딴속셈이 있는 모든 사람들을 만족시켰다고 말한적이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책에서 모든사람들을 즐겁게 하려고 하는 대신 다윈의 이론을 객관적으로 비판하여 과학과 사회에 끼친 결과를 보이고자한다. 우리들의 중심 주제는 “진화”의 이론은 과학적으로 오류이며, 따라서 이로부터 유래하는 모든 결론들도 오류라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또한 현재에도, 진화이론의 일반적인 수용은 종교, 도덕, 인생의 목적에 깨닫지 못할 만큼 커다란 영향을 미쳤으며, 어느정도는 전제적인 정부의 출현에 영향을 미쳤고, 사회를 지탱하는 권위에 대한 존중을 무너트렸다고 볼수 있다.  
 물론 한이론의 참과 오류는 그것의 결과들만으로 판단될 수는 없지만, 그이론이 그결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는 것이다. 만일 나쁜 사상이 나쁜 결과들을 낳고, 진화론이 나쁜 사상이라면, 그것이 일부의 사람들을 분노케 할지라도, 그것은 밝히 알려 져야한다. 우리의 매일매일에 영향을 미치는 이런 사상들은 특별히 우리가 자주 그효과들에 대해 잘 느끼지 못하며 살 때, 더욱 조심스럽게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진화이론에 대해서는 이러한 평가 작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는데, 그 부분적인 이유는 이 이론이 너무나도 광범위하게 받아 들여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부눈적인 이유는 비평이 더욱더 필요하다는 것을 증명할 뿐이다.  

       과학적 평가는 물론 극히 중요한 문제이며, 이책의 중심주제를 이룰 것이다. 진화가 과학적 사실인가 아닌가를 결정하는 것은 물론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과학적으로 아무리 증명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사태의 한쪽 국면 만을 다루는 것이다. 따라서, 진화이론이 역사와 사람들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쳣는지 간단히 알아 보는 것도 중요한데, 이는 그것이 사태의 전체를 보여 주기 때문이다. 의도 했던 아니던, 진화이론이 가져온 사회적 해악들을 파해치는 것은 미래의 악한 이론에 대비하는 것이 될 것이다.  

어떤이론들은 너무나도 악해서 그것이 가져올수 있는 결과만으로도 폐기되어야 한다고 주장될수 있다. 앞으로 보게 되겠지만 진화이론이 바로 그런 악한이론의 하나이다.  

인생의 의미와 마주침

       다윈 이론의 결과들이 전체적이든 부분적으로나 삶과 죽음의 문제에 대해 관련이 있다는 것은 명백한 일이다. 진화론은 우리의 삶과 죽음에대한 이해와 조망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데, 이는 진화론의 철학적인 전망에따른 논리적인 귀결이라고 할수 있다.  
우리모두는 경험적으로 삶은 좋은 것이나 또한 연약한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세상을 울렸던 다이애나 황태자비의 비극은 ㅇ현재이곳에 있던 인생이 다음순간 사라져 버릴수 있음을 잘 보여 주고 있다. 다른 예를 든다면, 520명을 태우고 가던 JAL #123 보잉 727기의 비극을 생각해 보자. 이모든 생명이 사라 지는데 단지 9분이 걸렸을 뿐이다. 그 점보기의 520명은 모두 사망했는데, 이들은 모두 당연히 살아 다음날을 맞을 것으로 생각 되었지만 이중 어느 누구도 다음날 새벽여명의 경이 로움을 느끼지 못하였다.  

       우리중 많은이들은 이 인생의 심오함을 어떤 비극을 만나기 전에는 잘 깨닫지 못한다. 그리고 바로 이곳에서 이 창조냐 진화냐의 논쟁이 개인적으로 큰 의미를 갖게된다. 종국에는 이 기원에 대한 논의는 과학이나 신학의 이론을 크게 넘어 서게 된다. 참으로, 우리의 기원에 대한이해는 우리의 사회가 효과적이며 윤리적으로 기능하는데 심대한 영향을 미칠수 있다.

       이 첫 번째 장에서, 우리는 진화론이 우리들 개인과 근세 역사에 미친 영향들을 보려고 한다. 이 첫장의 정보들은 이후의 장들을 읽을 독자들에게 놀랍고도 유용한 역할을 하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우리 개인에게 진화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로 시작할까한다.    

진화의 친족?

대부분의 사람들이 진화론이 자신들의 개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았을 지라도, 그들은 개인으로서의 뚜렸한 개성과 인격을 갖고 있다. 진화론이나 유물론적인 세계관에 의하면, 불행히도, 인간은 그 자신이 임의로 부여한 의미외에 특별하고 독특한 진실되고 적절한 의미를 갖지 못한다. 작고한 진화론의 대가인 조지 심슨(George Gaylord Simpson) 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
       고 있다:  

       다윈의 세계에서는 인간에게 다만 동물의 특별한 한 종 이라는 것 이외에    아무런 다른 특별한 지위는 없다. 그는 온전한 의미에서 자연의 일부이지 자연밖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는 , 비유가 아니라 문자 그대로, 모든 살아있는 것들의, 그것이 아메바든, 촌충이든, 해초이든, 참나무이든, 아니면 원숭이든 간에  그들의 혈족인 것이다. 42 촌에 해당하는 촌충과 형제와도 같은 원숭이에대한 관계의 정도와 공감하는 정도가 다를 지라도 모두 혈족인 것이다….1  

심슨의 인간이 촌충에 확실히 관련되어 있다는 언급은 적절하다고 볼수 있다. 다윈 자신도 자신이 촌충과 비슷한 어떤 벌레의 후손이라고 믿었다. 아얄라 와 발렌틴은 그들의 책 “Evolving”에서, “확실히 나비와 인간은 먼였날 촌충충을 닮은 바다벌레의 일종을 공동 조상으로 하여 탄생 하엿을 것이다”라고 단정하고 있다.

       만일 인간이 순전히 우연에 의해 자연의 최대의 혜택을 받아 가장 고등하게 된 것이라면, 어떤 동물들이 어떤 권리들을 갖을 것이며, 또 어떤 권리 혹은 어떤 동물이 가장 중요하여 보존해야 할지 어떻게 알것인가? 진화 이론에 따르면 (더큰 뇌를 갖고 있으므로) 동물들 보다 정량적으로 뛰어나지만, 정성적으로 뛰어난 것(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창조된 것)은 아니라고 한다. 따라서 진화론적으로 말한다면, 우리의 문자적인 형제인 다른 동물들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은 윤리적으로 바르지 못한 일이된다.  

       PETA(People for the Ethical Treatment of Animals) 의 회장인 잉그리드 뉴커트는 “쥐는 돼지이며, 돼지는 개이며, 개는 소년이다” 라고 주장했다. 이 주장의 논리에 따르면 모든 고등 생물은 동등하게 취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안락사 교회의 대표자는 동물들의 권리는 인간들의 권리보다 우월하다고 믿고 있다. 심각하게도, 그녀는 전국의 시청자들에게 “만약 당신이 어떤 종을 멸종시키고 싶다면, 인류를 먼저 멸종시켜라. 왜냐하면 인류는  총자연계에서 적은 역할을 지닌 소수의 종이기 때문이다.” 라고 말했다. 다른 동물 보호 단체는 “고기를 먹는 것은 살인이다.” 혹은 “인류는 폭군과 같은 종이다. 그리고 소나 닭을 죽이는 것은 나찌에 의한 유대인 대학살과 같다.” 라고 주장한다.  

       만일 진화론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이런 결론들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즉 우리는 모두 그저 동물일 뿐이며, 동물 권리 단체의 주장이 타당한 듯 보인다. 우리는 다른 동물의 권리를 침해할 권리가 전혀 없다. 자연계의 모든 동물들은 동등한 가치를 지니며 권리도 동등하여 “쥐는 결국 소년이다”라는 점에 이르게된다. 인간 화석 전문가인 마빈 루비누는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논쟁을 요약했다.

       동물의 권리와 인간의 권리를 동일시 하는 주장이 진화론에 기인한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은 쉽지 않지만, 모든 공개적으로 동물의 권리를  주장한 자들이 진화론자들이라는 것은 단순한 우연은 결코 아니다. 진화론에 따르면 인간이 큰 뇌를 가진 것은 단순히 “운좋은 뽑기”에 불과하며,  우리의 조상에게가 아나라 원숭이의 조상에게 돌연변이들이 일어났더라면 우리가 원숭이이고 그들이 우리가 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인간에게는 우연에 의해 성취된 우월성을 가지고  인간과 같은 정도의  능력을 진화시키지 못한 (자신들의 잘못이 아님) 다른 동물의 권리를침해할 윤리적 근거가 없다.  
동물권익 단체들은 진화론 철학의 논리적 결과를 우리들에게 보여 준다. * 그러나 우리가 앞으로 보겠지만 다른 결론들도 있다. 최근의 과학문헌들은 진화론의 원리에 따른 인간의 동물적 지위에 근거하여, 간음, 동성애, 무분별한 유전공학, 야만적인 “태아”연구에 이르는 다양한 것들을 정당화 하고 있다.  

우연과 존엄    

       만일 인간이 단지 동물이거나, 자연계의 우발적 사건이거나, 우연한 돌연변이의 모음에 불과 하다면, 어디에서 궁극적인 의미와 존엄과 절대가치를 구하겠는가?  

       자연주의 진화론에 따르면 기본적 3요소(물질, 시간, 우연)가 전 우주와 그안의 모든 살아있는 것들을 창조하였다고 한다. 노벨상 수상자인 자끄 모노는  그의 저서 “우연과 필연”에서 많은 사람들의 감정을 대변 한다: “인간은 이 무한한 우주안에서 홀로이다. 그는 우연히 생겨 났다8″ 그리고 “우연 만이 모든 개량과 생명계의 모든 창조의 원천이다. 순전한 우연, 절대자유 그러나 맹목적인 우연만이  이 거대한 진화라는 건축물의 기초인 것이다.” 9

       저명한 진화론자인 버로우는 다윈의 “종의 기원” 서문에 다음과 같이 썼다:

       다윈에 따르면, 자연은 맹목적 우연과 맹목적 투쟁의 산물이고,  자신의 생존을 위해 야수들과 투쟁하는 외롭운 지성적 돌연변이이다. 일부의 사람에게는 이것은 돌이킬수 없는 상실로서 마치 탯줄이 잘리고, 그자신이   아무런 열정도 없는 차가운 우주의 일부분임을 깨닫는 것과도 같다. 그리스 철학자들이나 계몽주의자들, 혹은 이성적 기독교 전통에서 생각한  자연과는 달리, 다윈의 자연은 인간 행위에 아무런 단서도, 인간의 도덕적인 딜레마에 아무런 해답도 제공하지 않는다.10  
       인간을 “외로운 지성적 돌연변이”로, 모든 생명체를 우연의 산물로 보는 이 우울한 인간관은 우주를 맹목적인 힘의 산물이 아닌 자신의 형상에 따라 인간을 지으신 무한하며 인격적인 하나님의 의도적인 피조물이며, 인간에게 동물을 초월하는 존엄성과 가치를 부여하는 유대 및 기독교 전통에 크게 대조된다. 11    

       불행히도 현대 진화론에 의해 주어진 인간상은 우주적 고립의 하나이다: 하나님의 우리를 위해 존재하지 않을 뿐 아니라, 그는 한번도 존재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앞으로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종교란 이런 점에 의해 갈등하는 사람들을 위한 아편이다. 인간은 광할한 그러나 끔찍히도 몰인격적인 우주안에 홀로 살고 있다.   우리에게 경외심을 자아내는 그러나 낯선 이우주는 믿음과 인생의 목적, 사랑과 박애와 같은 우리가 가장 깊은 의미를 부여하는 것들에게 최종적인 타당한 근거를 제공해주지는  못한다.  

       코넬대학의 윌리암 프로빈스가 주장한대로 ” 그러나, 현대 과학이 내포하는 것은 대부분의 종교적 전통과는 명백히 모순되는 것이다… 어떠한 근원적인 도덕이나 윤리도 존재하지 않으며, 인간사회를 견지해 주는 어떤 절대 원리도 없는 것이다. 우주는 우리를 돌보지 않으며, 우리 인생에 어떠한 궁극적인 의미도 없는 것이다.12 따라서, 모노가 결론 짓듯이 선이든 악이든, 우리의 가치관은 우리의 선택에 달린 것이다. 13 그리고 세계 도처에서 이미 실제로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복지는 고려치 않고 가치관을 선택하여 많은 경우 심각한 결과를 초래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도 크고 불확실한 우주에서 수백만의 사람들이 그들의 존재의 의미에 대해 숙고하는 것이 놀라운 일은 아니다. 모든 것이 완료되고 언급된 후라면, 인생의 진정한 목적은 발견될까?  레슬리 폴이 말했듯이, “정확히 언제일지는 몰라도, 천문학적인 시계로는 이미 임박한, 이 외로운 행성의 마지막은  차갑고, 모든 생물은 멸절되고, 모든 생각이 그치고,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 처럼 될 것 이다.  솔 직히 말하자면, 이것이 진화가 도달하려고 하는 여행의 종착역으로서, 맹렬한 삶과 죽음의 자비로운 종국 인 것이다… 모든 생명은 어두움속에서 그어대는 성냥불의 명멸에 다름이 아니다. 궁극적인 결과는 생명으로부터 의미를 완전히 박탈 하는 것이다.”14

       X-선 결정학(Crystallography) 교수인 J.D. 버날은 다음과 같은 진화론적 생명의 정의를 내렸다: ” 생명은 부분적이고, 연속적이며, 점진적이고, 다양하며, 끈임없이 상호작용하는 원ㅈ내의 전자들이 갖는 상태들의 가능성들의 자기실현 이다.”15  우리가 진짜  촌충의 형제일 뿐이며, 전자상태들의 가능성일 뿐이라면, 그것이 함축하는 바는 결코 하찮은 것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며, 어떤 삶을 살고, 또 다른 사람들을 어떻게 생각 하는지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논리적으로 생각하면, 유물론적 사상은 우리에게 특별히 매력적인 것은 아니다. 우주적인 시야에서 볼 때, 궁극적인 의미에서, 죽음이후에 남자와 여자는 하루살이와 같은 70여년 보다 길지 않은 영원에서의 한 순간에 잠시 결합한 원자들의 연합에 지나지 않는다.  

대조되는 세계관들  

       서구세계의 현대사상에는 크게 두가지 세계관이 주도 하고 있다. 그 첫째는 이제까지 살펴본 “자연주의 세계관” 으로, “세속적 인본주의” 혹은 “과학적 유물론” 이라고도  불린다. 이미 언급한 대로 인간은 이 비인격적인 우주의 우연한 작동의 최종적 산물인 것이다. 이 고귀한 인간이라는 동물은 용기를 가지고 그자신의 존재의 무의미함을 직시하고 위엄을 지키면서 살고 또 죽어야 한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든 우주적이든, 삶이 끝 났으면, 정말로 끝 인 것이다. 궁극적인 의미를 갖는 것 이란 없다.  

       두 번째 세계관은 유대-기독교 전통에 의해 대표 된다. 여자와 남자는 신의 창조의 결과 이며, 자신을 희생함까지 인간을 사랑하시는 무한하시며 또 인격적인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지음 받았으므로 위엄과 영원한 의미가 부여 된 존재라고 가르치고 있다.  어떤 세계관을 택하든지, 그결과가 중요하자 얺다고 말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우리의 기원에 관한 대답은, 앞으로 보게 되겠지만, 정말 큰 차이를 초래한다. 일례로 다음쪽에 있는 두세계관의 대조표를 숙고해 보라.  

       아마도 이 두세계관의 적용뿐아니라 차이의 폭이 생각있는 사람들을 공개 토론의 장에서 기원론의 의미에 대해 점점더 인정하게 하는 것 같다.  우리의 기원에 대한 관은 우리가 죄나 성교육, 혹은 종교적 자유등과 같은 대중적으로 중요한 사안에 대한 의견을 정할때에 이에 영향을 미칠 뿐아니라 심지어 결정 짖기도 한다. 통계에 따르면 미국인의 대다수는 진화론 뿐 아니라 창조론도 학교에서 가르쳐야 한다고 꾸준히 보여 주고 있다:  

       86% 에서 88% 에 이르는 절대다수의 미국민은 공립학교에서 진화론 뿐 아니라 창조론도 가르쳐야 한다는 주장에 지지하고 있다(AP – NBC News 통계 ): 절대다수의 개신교인과 천주교인(합치면 50%) , 66%의 변호사, 그증 63%는 창조와 진화의 병행 교육이 합헌이라고(American  Bar Association Commission 통계), 오하이오대학의 80%의 학생과  오벌린대학의 56%가,  67%의 공립학교의 위원회 위원들이 (American  School Board Journal 통계), 그리고 42.3 %의 공립학교 생물교사교사들이( Austin Analytical Consulting 통계) 창조이론을지지 하고있다. 1

위험한 도박  

       이런 기원에 대한 창조론적 이해에 대한 개방성은 인생이 의미를 갖고 있다는 것에 대한 직관적인 반영 인지도 모르겠다. 기독교인은 유물론자와 기타 진화론자들이 그들의 미래에 대해 위험한 도박을 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들은 그들의 세계관이 옳다는 전제하에 궁극적인 실체에 대한 믿음을 단언하고 있다: 궁극적 실체는 물질이지 신이 아닌 것이다. 우리를 창조한 신이 없다면 우리를 심판할 신도 없는 것이다.  

       우리는 점차 분명해질 이유들로 인해, 이러한 도박은 현명치 않다고 믿는다. 퉁명스럽게 말해 진화론이 사실일 가능성은 일천억분의 일 보다도 작다. 이렇게 일천억 분의 일 이라는 확률을 보임으로해서, 우리는 세계관을 이런 것에 기초하는이일이 현명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보일수 있다.

       감기약 캡슐로 일 천만개로 가득찬 일 입방 마일의 산을 상상해 보자. 그런데 단한개의 캡슐을 제외한 모든 캡슐이 스트리키니네라는 독이 들어 있다고 하자. 가능성은 이 일천억개의 캡슐중에서 우연히 독이없는 단하나의 캡슐을 집어 드는 것과 같다. 제 정신인 사람이라면 아무리 머리가 아파도 이산에 들어 가 약을 주워 먹지는 않을 것이다. 확률이 반반이라 할지라도 아무도 이런 도박은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진화론 자들은 훨씬더 적은 확률 (일 천억분의 일 11장 과 17장을 보라)에 돈을 걸고 있다. 지금까지 보아왔지만, 이런 도박은 단지 우리의 육체적인 인생만을 걸고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궁극적인 기원의 문제 (자연주의적 진화론이냐 신에 의한 창조냐)와 궁극적인 운명(멸절이냐 아니면 천국과 지옥이냐)에 대한 논의를 하고 있는 것이다.  
       만일 창조론자들과 기원에 관한 성경의 설명이 옳다면, 이논의는 유물론자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더 중대한 의미를 갖게 될 것이다. 진화론자들은 마지막 숨을 쉴때에 이르면, 중간고리 화석에 대한 논쟁보다 더 중요한 문제들이 그들을 압박하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라스베가스에서 돈을 잃는 문제와 한 인간의 영혼을 진화론 이라는 도박에 걸어 잃는 일은 너무나도 비교할수 없는 일인 것이다.  

하나님의 상실과 사회적 조작(Losing God and Social Manipulation)  

       다른곳에서도 언급 했지만, 서구 근세사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누구도 진화론이 인격적 창조주 하나님과 성경에 대한 믿음과, 기독교 전체에 대한 믿음에 끼친 악영향을 부인할수 없을 것이다. 저명한 진화론 비평가이자 캘리포니아 버클리 주립대 법대교수인 필립 존슨은 진화론을 “무신론자와 불가지론자들이 지성의 세계와 정부에서 우월한 지위를 점하는데 진화론이 결정적인 철학적 개념을 제공하였고, 이영역에서 유신론을 거의 완전히 배제하게 하였다.”고 말했다. 17  이런 역사상의 세속주의로의 회귀가 가져오는 영향은 엄청난 것이다. 철학자 윌 듀란트는 “역사의 동인으로 신 대신에 진화를 제시함으로서, 다윈은 기독교세계에서 윤리의 신학적인 기초를 제거해 버린 것이된다.. 신에 대한 경외가 없는 윤리란 매우 부안정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처해있는 현실이다. 나는 인간이 어떤 초월자의 감찰하심과 이에 따른 심판에 대한 두려움 없이도 개인의 존엄성과 사회질서를 유지할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18 철학자 듀란트의 평가가 옳다는 것은 우리주위에서 흔히 발견된다.  

       오늘날 세계도처에서, 상대주의, 무도덕주의, 쾌락주의, 무신론의 형태로 흘러나오는 진화론의 허무주의는 남녀노소에게 파고들어, 우리는 우연한 돌연변이 이며, 진화된 동물이고 인생에 의미나 목적은 없다고 가르치고 있다. 실제로 대부분의 현대의 사회악은 유물론적 진화론에서 나오는 무도덕주의와 허무주의에 기인 한다. “하나님은 없고, 거기 있는 것이 존재하는 모든 것이다.” 라는 진화론의 주장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신 더큰 사회병리를 가져왔다. 19          

유행성 절망  

       우리는 이미 진화란 시간과 비인격적인 물질과 우연의 혼합으로 생명이 나왔다는 기본 전제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을 언급했다. 그것이 우리의 타고난 권리이며 우리의 묘비명인 것이다. 본질적으로, 인간은 광대한 우주를 현기증나는 속도로 회전하는 비극적인 재난이 되었다. 애절한 현대인의 절망은 다음표에서 볼수 있듯이 오늘날 어디서나 발견되며, 그 기원은 쉽게 무신론과 자연주의적 진화론에 기인된다. 20

진화론은 인간의 자각속에서 신에 대한 개념을 제거할 정도가 되었고, 신에게서 소외된 현대인의 공포와 상실감은 진화론의 책임인 것이다.  다시말하자면, 유물론적 전제하에 형성된 철학적 세계관은 수백만 개인의 하루하루의 생활을 반영하는 것이다. 이것은 캠브리지의 지질학자인 세쥐윅과 다아윈의 동료들에의해 인정되었다. 세쥐윅은 다아윈의 종의 기원을 “우리를 창조자로부터 단지 독립적으로 만들기위해 교묘하게 조리되고 나눠지는 계급 유물론의 요리” 라고 비웃었다. 세쥐윅이 올바르게 느꼈듯이 다아윈은 모든 범죄자들에게 그들의 죄악을 합리화하는 길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세취윅은 또한 인류가 진화론을 받아들인다면 너무도 심각한 타격을 받아 야만스럽게 되어 인간은 역사가 기록된 이후로 볼수 없던 정도로 저질의 퇴보를 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22  
수많은 진화론 비판자들이 보기에는 세취윅의 두려움은 이미 현실화 되었다. 다윈의 이론은 광범위하게 받아 들여졌고, 그이후로 인류는 야만적 잔인성으로 인해 유사이래 경험하지 못했던 최악의 상태로 떨어 졌다.  

       최근 75년 동안 인간역사상 가장 지독한 만행들이 저질러 졌는데, 이것은 주로 나찌와 공산당에 의해 저질러 졌다. 알렉산더 쏠제니친은 1917에서 1959년 동안 사회주의는 소련에서만 일억 일천만의 생명을 희생했다고 주장했다.23 중국에서는 3천 만명이 주어 갔다.24 캄보디아와 기타 동남아시아에서도 수 백만의 인명이 죽었다. 약 20억의 남녀가 자유가 말살된 채 막시즘의 이데올로기의 노예가 되었다. 이러한 이데올로기가 오늘날 완전히 사라진것도 아니다. 독일에서는 신나찌주의가, 이탤리에서는 신파시즘이 부흥하고 있으며, 믿기지 않겠지만 이 신파시즘은 뭇솔리니의 친 손녀가 이끌고 있다. 유럽과 러시아에서의 공산주의의 몰락에도 불구 하고, 아직도 10억이넘는 중국인들과 몇몇 민족들을 지배하고 있으며, 유럽과 러사아가 민주주의로 계속해서 전진할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이것들이 진화론과는 어떤관계가 있을까? 앞으로 우리는 진화론이 단지 영향력이 있었을 뿐아니라, 현대인의 절멍과 파괴적인 정치체계들의 기초가 되어 왔다는 것을 보이고자 한다. 궁국적으로 아무 의미가 없는 이 우주에서 개인과 사회의 윤리는 어떻게 될것인가? 왜 더 강하고 더 똑똑한 자들이 그들이 보기에  선하고 가치있어 보이는 일에 힘없고 덜배운 사람들을 조작하여 이용해서는 안된다는 말인가?  

              일부가 주장하듯 인간이 연소장치에 의해 동력을 얻는 복잡한 생화학적 기계로서 입력된 정보를 보존하기 위해 고성능 저장장치를 갖춘 컴퓨터를 유지하는 것일 뿐이라면, 권력과 또 그럴 의사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인간을 조작하지 못할것이 무었인가?25  

       20세기는 이런 예들로 가득차 있다. 우리는 다음의 예들을 인류에게 일어난 끔찍한 일들이 진화론에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다고 주장하기 위해 드는 것은 아니다. 명백하게도, 인간의 악 뿐아니라 사단의 역사등 여러 가지 변수가 작용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우리가 주장하는 것은 진화론이 현대 사회의 악한 일들에게 논리적인 동인과 격려를 제공하였고 이점이 바로 우려할만한 일인 것이다.  

       물론 어느 이론이나 원칙도 오용될수 있다. 어떤 이유든 간에 이론이나 원리는 좀 부주의한 사람들에 의해 잘못 이해 되거나 오용될수 는 있다. 우리가 앞으로 보이려는 것은 진화론의 문제점이 그 이론의 오해나 오용이 아니라 정당한 논리적 결론과 그 이론의 정확한 적용 때문이라는 사실이다.  

진화윤리?

       만일 우리가 20세기의 가장 처참한 두 가지 예로서 나찌즘과 공산주의를 검토해 본다면, 진화론이 함의 하는 것의 사회적 적용이 부분적인 책임이 있다는 것은 논리적인 일일 것이다. 엘리트 정치가 들의 진화론을 실용주의적으로 적용한 결과가 적응하는 자는 살고 부적응자는 죽는 히틀러의 인종차별주의 우생학을, 국가의 복지를 위해라면 개인은 희생될 수 있다는 공산주의를 낳지 않았겠는가?  기독교 가치관은 결코 이런한 결과들을 가져올수 없지만 진화론은 이런 결과들을 초래해 왔다. 우리는 어떻게 알수 있는가?  

     현세의 가장 유명한 진화론자중의 하나 이며 인류학자인 아써 케이쓰 경은 기독교를 강경하게 비난하며 동시대의 누구보다도 많은 시간을 진화윤리의 연구에 바쳤다. 그의 저서 “진화와 윤리”에서 그는 기독교 윤리와 진화론적 윤리는 결코 양립할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에를 들어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진화 법칙에 정면으로 반대되며, 기독교 윤리는 인간의 본성에 결코 조화될수 없으며, 잘 드러나지는 않지만 자연의 진화계획과 윤리에 상극인 것이다. 26  그는 또 고백하기를 “내가 도달한 결론은 그리스도의 법과 진화의법은 서로 양립할수 없으며, 아니 차라리 그 두 법은 서로 교전중에 있다고 해야 할것이다”27  

       케이쓰는 또한 “우리가 진화윤리를 원칙대로 따른다면 논리적인 결론으로서 범우주적인 윤리체계를 얻으려는 희망을 포기해야 하는데 이는 과거와 현재를 통해 자연의 진화가 작용하는 방식은 항상 잔인하고 거칠며 인정사정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이해하고 있다.28  기독교가 사랑과 자비와 이타주의를 주창할 때 이는 진화윤리에는 모순되어 보일지 모른다. 예를 들어 케이쓰는 “산상수훈은 진화사다리에 대한 저주”라며, 기독교는 그 반 진화론적인 성격 때문에 망할것이라고 단언했다. 29  

세계대전

       그러므로 다위니즘이 19세기후반과 20세기에 사회 및 정치에 미친 영향을 검토해볼 때, 케이쓰가 말한대로 아주 불안한 도덕적인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컬롬비아대학의 역사학 교수인 쟉끄 바젼은 “1870년에서 1914년까지의 문헌의 상당부분을 읽어 보지 않은 사람은 누구나 그것이 피를 부르는 긴 호소였다는 것을 알수 없을 것이다.”30 그리고 이 피를 부르는 호소는 그시대의 과학적 진화론의 전문용어에 의해 수행되었고 합리화되었다.  

       20세기 초의 독일의 장성이었던 번하디는 그의 저서 “독일과 다음전쟁 (1911)”에서 군국주의를 찬양하면서 진화론적 관점에서 볼 때 지구상의 약한 인간들을 궤멸시키는 것은 생물학적으로 옳은일이라고 주장했다. “힘이 정의이고” 또 “전쟁은 최우선의 생물학적 숙명이다”31 헨리 모리스 박사는 “다윈, 니이체, 헥켈 등은 극렬한 독일 군국주의의 기초를 놓았고, 이것이 궁극적으로 1914년에서 18년 까지의 제1차 세계대전을 일으킨다고 기술하였다.물론 다수의 독일 장군들과 정치 지도자들을 포함하는 다른 사람들도 가세하는데 이들은 모두 독일판 사회진화론의 주문에 걸려있었다고 볼수 있다. 프레드리히 본 번하디 장군은 “전쟁은 생물학적으로 올바른 결정을 가져오는데 이는 그 결정이 사건의 본성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쟁은 단지 자연의 법칙일 뿐아니라, 도덕적인 의무인 것이고, 따라서, 문명의 불가결한 요소이다.”32  

       케이쓰경 자신도 1947년이전에 세게평화에 미치는 진화론의 전율할 해악에 대해 쓰고 있다:

       1914년에 유럽에서 일어난 대전은 다윈의 진화론에서 그 기원을 찾을수 있는데, 이는 특별히 독일의 경우 더욱 그러하다고 종종 말해진다. 이런 신념의 표현은 아직도 더보게 될 것이다. 1935년에 30개국을 대표하는 심리학자들의 위원회에서 “전쟁은 진화론의 필연적인 결과”이다 라는  선언서를 발표했다.다윈이 발표한 진화의 진화의 법칙은 국가간의 전쟁에 대한 설명을 제시하는 데, 이는 내가 납득할수 있는 유일한 것이다.
       그리고 그는 다음의 예를 제공했다.

       진화론적 방법론과 종족의 윤리가 얼마나 극렬하게 근대의 제국들에 적용되었는지를 보려면, 우리는 다시한번 1942년의 독일을 살펴봐야한다.  히틀러는 진화론만이 국가정책의 진정한 기초를 제공한다고 굳게 믿었다. 히틀러가 자신의 종족을 보전하려고 택한 방법은 조직적인 학살로서 전유럽을 피로 물들게 하였다. 그러한 만행은 어떤 윤리적 기준으로 판단하여도 정당화 될 수 없지만, 독일인들은 이를 합리화 하였다: 학살은   종족의 혹은 진화의 윤리에 의해 정당화 된다. 독일은 과거의 종족으로 복귀하여 전세계를 향해 적나라하게 진화의 방법론을 실제로 보여주었다.      

       따라서, 계속해서 예기했지만, 총통 히틀러는 진화론자인 것이다; 그는 독일의 관습을 진화론에 맞추도록 의식적으로 노력했던 것이다.34  히틀러는 진화론안에서 그 자신의 개인적인 관점의 합리화를 찾았는데, 이는 19세기 말엽의 사회진화론자들이 그랬던것과 같다. ” 진화론이 나찌즘의 기본이라는 것은 처음에서 끝까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럼에도 오늘날 이것을 깨닫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사실은 놀라울 뿐이다.”35  

유명한 과학자였던 고 윌더 스미스는 자신의 저서 “자연과학은 진화론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에서 실존주의 심리학자인 에리히 프롬의 글을 인용한다:

       사회진화론이라는 “종교”는 지난세기의 사상중에서 가장 위험한 요소에 속한다. 그것은 진화론을 도덕적표준으로 확립함으로서 무자비한 국가 및  인종적 이기주의를 전파하는 것을 돕는다. 만일 히틀러가 무언가를 믿었다면 그것은 진화론이며, 그것이 그의 행동을 특히 잔혹한 행위들을  정당화하고 죄를 씻어 준것이다.    

       놀랄일도 아니지만 히틀러는 다윈의 이론에서 전통적인 가치체계를 반박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을 찾았다.37  그리고 히틀러는 진화론을 전통적인 종교에 대한 가장강력한 무기로서 강조하고 선택하였고, 기독교가 진화론교습을 반대한다는 이유로 반복하여 힐난하였다.38    

       명백히 기독교를 증오하던 히틀러는 “나는 기독교가 이제까지 존재한 모든 것중에서 가장 치명적이고 유혹적인 거짓말이라고 여긴다”라고 말했다. 진화론적인 가치관에 따라 그는 저서 Mein Kampf에서, ” 살려고 하는 자는 반드시 투쟁해야한다”; “영원한 투쟁이 생명의 법칙인 이세상에서 투쟁하지 않으려는 자는 존재할 가치가 없는자이다”; “나는 왜 인간이 자연과 같이 잔인해 져서는 않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자연은 잡종을 종아하지 않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순수한]혈통이 아닌 모든 인종은 쓰레기에 불과하다”라고 말했다.40     유태인과 흑인과 집시들을 학살하면서, 히틀러는 자신은 단지 자연도태를 도우며 인간 우생학에 기여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41   실제로 1996년 10월 28일에 잡지 “타임”의 한기사에는 “진화론에 따르면, 자연계의 모든악은 자연의 근본적인 뿌리에 기인하는데, 그것은 창조주가 주입해논 것으로 바로 자여도태라고 하는 것이다. 결국, 자연 도태라는 것은 도덕률로부터 속박받지않는 지속적인 경쟁인 것이다.”라는 주장이 실렸다.  

       로버트 클라크 박사는 “진화론은 공공연하게 히틀러의 나의 투쟁이나 그의 대중연설의 모든 최악의 부분의 근거로서 작용하고있다.”42 라고 말했다. 히틀러의 논리에 따르면, 모든 자연사는 적자생존의 단순한 투쟁이므로 보다고등하고 순수한 인종의 승리를 돕는 어떠한 행위도 정당화된다고 하였다. 히틀러에게 있어서 그의 다른 민족에 대한 잔혹한 학살극은 종족을 정화하려는 그의 노력의 선한 일부가 되는 것이다.”  

       나찌의 노동?(labor front)였던  로버트 레이 박사는 1940년의 전쟁에 대해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전쟁은 평화의 반대가 아니다. 전쟁은 다만 국가와 개인의 중단되지 않은 투쟁의 또다른 표현일 뿐이다. 그것은 이간의 가장 높고 가장 위대한 표현인 것이다.”43  

       히틀러가 진화론이 의미하는 바를 깨달았기 때문에 진화론의 교훈은 독일 국민을 강타하고 그들을 뒤흔들어놓게 된 것이다. 44 생물학안에 의도적으로 진화론이 들어 옴으로 인해 학교교육이 심각한 영향을 받았다. 독일 청년운동이 약자를 돕지 않는다는 독일 국가관에 동의했다고 해서 누가 놀랄 것인가? 열등한 인간들은 국가의 안위와 순수한 인류의 보존 자체를 위해서 희생되야 했다. 그런데도, 진화론이 히틀러에 미쳤던 영향에 대해 전혀 언급조차 않는 히틀러와 나치 제3제국에 대한 수많은 책들을 만날 수 있는데, 이는 책들의 저자들이 반진화론자로 몰리거나, 진화론의 영향을 진정하기를 원치 않기 때문이다.45

       이탤리에서는 파씨스트 독재자 뭇솔리니는 지속적인 평화의 개념을  진화론적 발전의 장애물로 여겨 조롱하였다.  뭇솔리니의 태도는 진화론에 의해 완전히 지배되었다. 공개적인 발언에서    그는 진화론의 표어들을 반복적으로 사용하였고, 진화를 방해하지 못하도록 항구적인 평화를 조롱하였다. 그에게는 영국에 참전하기를 꺼려하는 것은 대영제국이 진화론적으로 볼 때 퇴락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46  래리 아저는 그의 저서 “20세기의 위기: 전체주의의 기초”에서 300 가지 이상의 인용문을 이용해 다음과 같은 핵심적인 주장들을 제시했다: “인간사상에 끼친 진화론의 영향은 결코 과장될수 없다”; 다윈의 진화론은 도덕성 그자체의 기초를 훼파하였다”; “히틀러는 이 극단적 인종차별주의 원리를 액면가 그대로 받아 들였다… 그는 오늘날 우리가 아인쉬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받아들이 듯이 진화론을 수용했다”; 육천 삼백만명의 사람들이 멸절이 자연 법칙인 진화론을 따르기 위해 죽어가야 했을 것이다.”47  

       그러나 진화론의 이러한 소름끼치는 결과들은 단지 20세기의 양대 세계대전에만 국한 되는 것은 아니다. 19세기 말엽에서 벌써 진화론의 비인간적인 영향을 찾아 볼수 있다. 한 예로 초기 다위니즘에의한 테즈메니아 원주민의 멸종사건을 들수 있다. 제리 버그만 박사는 그의 논문 “19세기 진화론과 테즈메니아 원주민의 인종 학살”의 초록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19세기에는 테즈메니아인이 현존인류와 인류의 조상과의 살아있는 연결고리라고 널리 믿어 졌다. 자연주의적 진화론의 전제에 따르면,  테즈메니아 원주민은 인간이하의 존재이고 따라서, 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동물처럼  다루는 것을 부도덕 하거나 잘못된 일로 여기지 않았다. 이러한  경향은 결국 테즈메니아 원주민의 멸종을 가져 왓다. 오늘날에는 그들을 오스트리아 원주민과 가까운 인종으로서, 독특한 문화를 갖은 완전한 인간으로 생각한다. 이 사건은 진화론적 자연주의가 근세에 만들어낸  수많은 비극의 한예에 불과 하다. 48  

맑스와 다윈  

       마지막으로, 진화론은 공산주의 이론을 전파하는데 효과적으로 사용되었다. 칼 맑스는 “자신의 업적이 다윈의 것에 필적하는 것으로” 느꼈고, 비록 다윈이 거절 했지만, 그는 자신의 자본론의 일부를 다윈에게 헌정 하였던 일을 아주 감사하게 여겼다.49  맑스는 엥겔스에게 종의기원에 대해 말하기를 “우리를 위한 자연사의 기초를 담고 있다”고 했다.50 1861년에 그는 또, “다윈의 책은 매우 중요하며, 역사의 계급투쟁의 자연선택의 기초를 제공한다”51고 썼다. 따라서, 버로우 가 말했듯이”맑스와 엥겔스도 계급투쟁의 생물학적 반영으로 다위니즘을 채택한 것이다.”52  

       실제로 맑스와 엥겔스는 아주 분명히 그들의 공산주의 철학을 진화론의 기초위에 쌓았다. … 그들은 교조적인 진화론자들 이었고, 그 이후로 모든  공산주의자들이 또한 진화론자들이 었다. 무신론이 공산주의 기본적인 교의이고, 특히 소련은 더욱 그러하므로 진화론이 공산주의의 제 1 신조임은 명백한 일이다. 레닌과 트로츠키, 그리고 스탈린은 모두 무신론적 진화론자들이고, 또한 현재의 모든 공산당 지도자들도 또한 그러   하다. 사실, 그들이 공산당 지도자가 되려면 그럴수 밖에 없다. …현대 공산주의의 지속적인 무신론적 진화론에 대한 헌신은 전세계 공산당들의 출판물들을 볼 때 명백한 일이다.53      

       1883년에 맑스의 임종할 때까지도 그의 이론은 그다지 큰 영향은 미치지 못하였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 공산주의 이론은 진화론이 널리 수용되어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할 과학적 근거를 제공하고 인간의 본성과 역사의 전개에 대한 전혀 다른 시각을 제공할때까지는 역사적으로 존립할 곳을 찾지 못하였었다. 따라서, 어떤면에서는 진화론이 공산주의이론의 성장과 적용을 장려하기 위한 관념의 변화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고 볼수 있다. 54  

       윌더 스미스 박사는 ” 공산주의는 그것을 강요하는 대상을 잔인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보면서  정치적,  반종교적 선전들이 맑스의 시대로부터 가장원시적인 진화론과 섞여 있다” 고 말했다.55  히틀러와 마찬가지로 맑스의 철학도 진화론의 잔인성을 반영하고 있다. 그는 “부르조아계급의 무장해제 … 혁명적 공포 … 그리고 혁명적 군대의 창설 … 자유는 순전히 부르조아의 이상이뿐” 과 같은 말들을 언급하였다. 더나가서, 혁명정부는 연민이나 후회를 할 시간도 기회도 없을 것이라며, 그 정부의 과업은 적들을 공포에 질려 동의 하게 만드는 것이다. 반대자들은 처형과 투옥과 강제노동과 언론통제를 통해서 반드시 무장해제 되어야 한다.56  

       분명히 가장 비인간적인 만행중 일부는 진화 철학에 기초를 둔 국가 사회주의자니 맑시스트에의 계속되어 왔다: 오늘날 세상의 대부분의 히틀러나 스탈린을 혐오 한다. 두사람 모두 성경에서 말하는 이웃사랑을 거부하고 수백만을 학살 하였다. 스탈린은 스스로 다윈을 택했고,  히틀러는 적자생존의 개념을 전세계에 주입하려고   했다. 하바드대의 굴드박사는 곤충학자 버논 켈로그의 “최고의 진화상태에   있는 인간은 반드시 이 생존투쟁에서 이겨야한다”는 주장을 인용하기도했다.57    

       1985년 2월 21일과 22일에 CBS 저녁뉴스에 발표된 테러범의 성명서를 보자: “생명에 특별히 신성한 어떤 것은 없으며…”; “증오가 너의 법이며, 보복이 너의 제1의 특권이다.”

       이런 것을 발표한 테러범은 어디에서 이런 생각을 갖게 되엇을까? 에수님으로 부터일까? 그들이 자신들을 논리적으로 공산주의와 함께 진화론을 믿는 유물론자라고 한다면 놀랄 일 일까? 진화론에 따르면, 생명은 우연한 확률에 따라 생성되어 잠시 존재 했다가 영원히 소멸되는 것이므로, , 아무런 신성한 것도 그안에 있을수 없다. 그것에 아무런 궁극적인 의미도 특별한 가치도 없다. 그리고 분명히, 칼 맑스와 다른 공산주의 지도자들의 책들을 읽어 보면 증오와 복수가 법이며 특권인 것을 이해할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지난 백년간 맑스 주의가 한일이며, 이로인해 일억 오천명의 인간이 죽어 갔다.    

       히틀러, 맑스, 그들의 동료들, 그리고 그들의 반인간적인 철학의 진화론적 무신론과의 명백한 관계등의 영향을 고려해 볼 때, 역사 철학자 존 코스터의 논평은 적절하다고 말할수 있다:  히틀러이외의 다른 이름들이 유대인 대학살을 설명하기위하여 거론 되었다. 이상하게도, 찰스 다윈의 이름은 한번도 거론되지 않았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 다윈과 헉슬리의 우주에서의 인간에 대한 이해는 유대인대학살로 가는 길을 예비했다고 볼 수 있다. 히틀러와 스탈린은  인류역사상 종교적인 이유로 인한 모든전쟁에서 죽은 사람보다 훨씬 더      많은 무죄한 사람을 살해했다. 그들은 이들을 그들의 영혼을 구하기 위한    잘못 지도된 의도에 따라서나 혹은 그들의 죄를 징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식량에 대한 경쟁자로서 그리고 진화과정의 방해물이라는 이유로  그들을 학살하였다. 많은 인도주의자들 기독교인, 유대인, 혹은  불가지론자들은 니이체의 사상과 히틀러의 대량학살팀과 시체소각장과의 관계를 이해 한다. 니이체의 사상을 한단계 더 소급해서 다윈에게로 소급해 간 사람은 별로 없다. 과학자 다윈은 니이체의 초인사상과 나찌가    일부의 인간은 인간이하의 동물이라는 추론을 하도록 작용했다. 많은증거들이 있는데, 그중 한예는 나찌의 인종차별주의를 설명할 때 공개적으로 신-다위니즘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자연도태라는 개념이 인간에게 적용되는 것이 유대인학살의 일급 자료인 “완시 협의회”기록에서 드러났다….

               우리는 히틀러의 독일과 스탈린의 소련에서 일어났던일들을  그들이 우리와는 달리 아주나쁜 인간들이어서 생긴 어떤 일관성이 전혀없는 잔혹행위들의 모음쯤으로 생각할수도 있다. 아니면, 헉슬리와 다윈의   “생명은 곧 질병이다라”는 이론을 병상의 우울증에게 과학이란 가면을쓰고 속여서, 학살의 시대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깨달을 수 도있다. 그리고 우리는 여기서 경고의 메시지를 발견할수 있다. 사람들은  다른 인간을 기계로 여기는 일을 중단해야 하며, 그들을 영혼을 갖고 있는   남자와 여자로 바라보아야 한다. …      

               역사는 과학적 무신론이 정신질환의 한형태임을 증명하기위해 또다른 수억의 희생자를 원치 않는다. 58 실용주의적인 윤리관을 갖는 자연의 진화론적인 방법론들을 반영하는 무도덕주의 이론이 인간의 역사에 그런 악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에 놀랄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다음장에서 다룰 진화론이 현대세계에 미친 광범위한 영향들을 살펴 보면, 왜 현대의 많은 사람들이 갈수록 더 걱정하고 있는지 알수 있을 것이다.              

               사상은 결실을 맺는 법이다.

우리가 아는 세계

 (2001/7/9)

 현대세계에 미친 진화론의 영향  

    다윈의 저작을통해 전파된  사상들에 의해 영향을 받지 않은 어떠한  과학이나 인간관, 혹은 제도권력도 존재하지 않는다.    - 철학자 제이 콜린스, “밀러와 레빈의 생물학(Miller and Levine’s Biology, Prentice  Hall, 1995, p.313)” 중에서

인류역사상 진화론 만큼 큰영향을 끼친 이론도 없을 것이다. 이를 예증하기 위해, 여러분야에서 저명한 과학자와 전기작가, 그리고 사상가들이 진화론의 영향에 대해 언급한말들을 살펴보자. 그런 연후에야 우리는 진화론의 엄청난 영향과, 현대를 사는 우리의 삶에 미친 영향을, 그리고 우리의 후손들의 삶에 미칠 영향에 대해 이해하기 시작할 것이다.  

       이 주제에 대해 좀더 비판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함에 따라, 다음의 말을 숙고해 보라. 생믈학 및 생태학자인 쥴리안 헉슬리경은 “진화론은 지구가 생긴이래 탄생한 가장 강력하고 포괄적인 이론”이라고 진술했다. 1 약 25년전 유명한 진화 동물학자이며 하바드대 교수였던 어네스트 메이어 는 “진화론은 인간역사상 일어났던 모든 지적 혁명중 가장 근본적인 것”으로 여겨 지게 될것이라고 말했다.2 사실또한 그랬다. 현재 거의 모든 학계에서 진화론이 수용된 사실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찰스다윈에 대한 현대판전기의 결정판인 다윈: 고통받은 진화론자의 생애을 저술한 제임스 무어는 그 저서를 통해 “다른 어떤 사상가 보다도 – 심지오 막스나 프로이드 보다도- 다윈이 이 지구라는 행성위에 사는 우리가 우리자신을 생각하는 방식을 변혁했다”고 지적했다.4        
다윈의 종의 기원            

       현대세계에 끼친 점을 생각해 볼 때, 다윈의 이 저서는 다른 어떤 책과도 비교 될 수 없다. 웬델 버드는 예일 대를 졸업한 유명한 미국의 변호사로서, 미국의 대법원에서 있었던  창조론과 진화론의 소송에서 창조론의 주장을 대변하였다. 1,100쪽에 이르는 보고서 “다시쓰는 종의 기원: 진화이론과 돌연한 종의 출현에 관한 이론(The Origin of Species Revisited: The Theory of Evolution and of Abrupt Appearance)”에서 종의기원이라는 단한권의 책이 진화론적인 전제하에 발전해가는 자연과학 뿐 아니라 다른 인문과학, 신학, 그리고 정부조직에 까지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기술했다.5  물리학자 립슨은 한걸음더 나가서 “종의 기원은 이제까지 출판된 책들중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책이라고 하였다”.6  

       유명한 생물학자인 데오도시우스 도브쟌스키는 그의 저서 “진화하는 인간”이라는 책에서 “1859에 출간된 다윈의 종의 기원이 인간의 역사에  지적인면에서 전환점을 가져 왔고 인간과 우주에서의 인간의 위치에 대하여 새로운 이해로 안내하였다”고 썼다.7 다윈사후 백년이 지난 지금에도 진화론은 인간이 인간을 이해하는 모습의 핵심이 되고 있다고 그는 말했다. 이런 진화론의 영향은 생물학이나 과학의 범주를 훨씬 벗어나 있다: 이해하든 오해하든 간에 이미 대중문화의 일부분인 것이다.8    

과학계외에 미치는 진화론의 영향  

몇가지 예를 생각해 보자. 하바드대의 생물학 교수인 어네스트 메이어는 사이언티픽 어메리칸 (Scientific American) 1978년 9월호 47쪽에서 “우리의 세계관은 진화론에 의해 주도되며…”라고 썼으며,  1972년 6월 2일에 사이언스 (Science) 지 981쪽에 “진화론은 인간의 인간중심주의뿐 아니라 만일 일관되게 적용되기만 했다면 다른 모든 형이상학과 윤리학의 개념에 큰 영향을 주엇을 것”이라고 주장했다.9 저명한 생태학자인 리네 두보와(Rene Dubois)는 어메리칸 사이언티스트(American Scientist), 1965sus 3월호 6쪽에서 “진화의 개념은 사회의 제도기관과 예술에까지 적용되었다. 실제 신학, 사회학, 역사학, 예술을 가르치는 학교뿐아니라 대부분의 정당들까지도 진화론을 가르치며 또 그것을 그들의 강령의 기초로 삼고 있다”고 말했다.10      

       미국 도서관 협회의 전직회장인 로버트 다운스는 진화론의 영향에 대해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칼 막스라는 가능한 예외를 제외하고는 이 19세기의 유명인사들과 또한 그외 19세기의 수많은 사람들중에 다윈 만큼 주류 사상과 인간사회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조망에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은 없을 것이다. 회고해 보건데, 거의 모든 학문 영역에 미친 다윈의 영향은 심대하였고 또한 앞으로도 또한 그럴 겄이다. 진화론의 강령은 생물학자, 지질학자, 화학자, 물리학자,   인류학자, 심리학, 교육학, 철학, 사회학자, 그리고 심지어는 역사학자, 정치학자와 언어학자들에까지 깊이 파고 들었다.  찰스 엘우드는 “다윈의 업적이 모든 종류의 사상, 특별히 생물학, 심리학, 사회과학에 끼친 영향을 생각해 볼 때 우리는 다윈이 19 세기가 낳은 영국뿐 아니라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 결실을 남긴 사상가라는 가장높은 보좌라는 명예를 주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다윈이즘이 사회에 끼친 영향에 대한 이해는 이제 막 시작 했을 뿐이다.”라고 천명했다.      

               안토니 웨스트는 “종의 기원의 영향은 실로 거대한 것이 다. 단지 새로운 정적인 것에서 동적인 것으로의 접근원리를 천명함으로서, 그는 학문의 모든 분과들, 천문학에서 역사학까지, 화석학에서 심리학까지, 심지어 발생학에서 종교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것에 혁명적 변화를 일으 켰다”11 라고 동의 하였다. 따라서 분자 생물학자이며 진화론 비판자인 마이클 덴튼은 이 강력한 이론이자연과학의 범주를 넘어까지 미친 강력한 영향에 대해 이야기 할 때, 특별히 20세기의 사회적 격변들이 진화론에 의해 재가를 받은 철학이 없었다면 불가능 했을 것이라고 지적하는 것이다:

       20세기는 진화론을 배제하고는 이해할수 없는 세기가 될 것이 다. 지난 80년간을 휩쓴 사회및 정치적인 흐름들은 그것들을 재가해준 기본적인 사상들이 없었다면 불가능 했을 겄이다. 생물학과는 아무관계도 없는 영역들에게 미친 진화론의 영향은 과 학적으로 엄밀한 증거가 없는 추론적인 이론이 전체사회의 유행하는 사상이 되고 우리가 시대를 보는 강력한 관(觀)이 되었는지 역사상 가장 놀라운 예가 될 것이다.  

       실제로 오늘날 20세기를 규정하는 불가지론과 회의주의는 다른 무었보 다도 진화론의 영향이라고 볼수 잇다. 이 이론이 바로 문자 그대로 세계를  바꾼 것이다.” 12   옥스퍼드 대학, 켄터베리대학, 그리고 에일대학 교수를 역임한  버나드 스톤하우스 박사는 현재 “Polar Record”라는 학술지의 편집위원으로 케임브리지의 스콧 폴라 연구소 (Scott Polar Research Institute)에 있다. 그는 이 진화이론에 대해 철학의 모든 분과에 퍼져가는 요원의 불길과도 같다. 이것은 종교와 도덕의 영역에 까지 침투하여 성직자들이 우려하는 대로 상식이 되어 가고 있다. 그러나 만일 진화론이 허구라면 우리가 일상적으러 생각했던 것들의 기초가 무너지며 우리 모두는 보다 나은 것을 찾아 나서야 할 것이다. 13    

       그러나 만약 진화론이 우리의 모든 문화에 침투해 있고 현대인에계 세계관을 제공하고 그에 따른 모든 행동들에 영향을 미쳐왔다면, 이론에 대한 고찰은 정말 중대한 것이 아니겠는가? 누가 이 창조-진화 논쟁이 중요하지 않다고 할것인가? 실제로 인간이 그의 기원에대해 이해하는 것은 그의 세계관 형성에, 그의 여러 결정들에, 심지어 그의 삶의 방식에 까지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철학자 프럔시스 쉐퍼는 말하기를 스스로 깨닫는 것 보다 훨씬 더 그들의 전제(presupposition)들에일치 되게 산다고 했다.14    

새로운 종교?

       이런점에서 진화론은 단순한 과학 이론이 아니다. 이것은 거대한 유물론의 통합이론으로 종교의 거의 모든 요소를 갖고 있는 것이다 (17장에서 더깊이 논의 됨). 쥬리안 헉슬리경이 썼듯이 “현재 우리의 지식은 실제로 모든 존재하는 것은 진화 – 스스로 변해가는 단일한 과정으로 서의 진화-  뿐이라는 세계관으로 우리를 강제한다. 15 이것이 도브잔스키가 다음과 같이 관찰하게된 이유이다:” 진화론은 우주안의 모든 발전의 모든 단계: 우주론적, 생물학적, 인간적, 그리고 문화적인 발생 및 전개의 모든 단계를 구성한다. 진화론을 생물학에만 극한 시키는 것은 터무니 없는 짓이다. 생명은 무기물에서 진화되어 나왔고, 인간은 생물이 진화 되어 생긴 것이다.”16

       만일 모든 실체가 진화에 의한 것이며 진화자체가 실체의 모든 것이고 그것이 우리를 만들었다면, 우리는 진화를 신뢰하고 그 앞에 절해야 할 것이다. 아마도 진화론은 인간사회를 이끄는 안내 원리가 되야 할 것이다.17  쥴리안 헉슬리경이 UNESCO의 초대 총재가 되었는데, 그 기구의 처음 몇 년 동안에 UNESCO의 기본 철학이 UN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관계속에서 헉슬리는  1979년 3-4 월호  The Humanist 35-36 쪽에서, ” UNESCO가 진화론을 채택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UNESCO 의 철학은 전 지구적인 규모와 진화론적인 배경신념을 갖는 과학적 인본주의 이어야 한다.  따라서 자연선택의 기초인 생존경쟁은 사상과 의식의 투쟁인 의식선택으로 대체되고 있다.18 전직 UN 부사무총장이며 뉴에이지운동의 기수인 로버트 뮬러는  ”우리가 오늘날 할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일은 진화론을 믿는 일이다”라고 하였다.19    

       일부의 사람들은 거의 진화론을 경배하는 수준이라는 것의 에로서 로만 카톨릭 신부이며 신 일치 되게 산다고 했다.14    

새로운 종교?

       이런점에서 진화론은 단순한 과학 이론이 아니다. 이것은 거대한 유물론의 통합이론으로 종교의 거의 모든 요소를 갖고 있는 것이다 (17장에서 더깊이 논의 됨). 쥬리안 헉슬리경이 썼듯이 “현재 우리의 지식은 실제로 모든 존재하는 것은 진화 – 스스로 변해가는 단일한 과정으로 서의 진화-  뿐이라는 세계관으로 우리를 강제한다. 15 이것이 도브잔스키가 다음과 같이 관찰하게된 이유이다:” 진화론은 우주안의 모든 발전의 모든 단계: 우주론적, 생물학적, 인간적, 그리고 문화적인 발생 및 전개의 모든 단계를 구성한다. 진화론을 생물학에만 극한 시키는 것은 터무니 없는 짓이다. 생명은 무기물에서 진화되어 나왔고, 인간은 생물이 진화 되어 생긴 것이다.”16

       만일 모든 실체가 진화에 의한 것이며 진화자체가 실체의 모든 것이고 그것이 우리를 만들었다면, 우리는 진화를 신뢰하고 그 앞에 절해야 할 것이다. 아마도 진화론은 인간사회를 이끄는 안내 원리가 되야 할 것이다.17  쥴리안 헉슬리경이 UNESCO의 초대 총재가 되었는데, 그 기구의 처음 몇 년 동안에 UNESCO의 기본 철학이 UN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관계속에서 헉슬리는  1979년 3-4 월호  The Humanist 35-36 쪽에서, ” UNESCO가 진화론을 채택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UNESCO 의 철학은 전 지구적인 규모와 진화론적인 배경신념을 갖는 과학적 인본주의 이어야 한다.  따라서 자연선택의 기초인 생존경쟁은 사상과 의식의 투쟁인 의식선택으로 대체되고 있다.18 전직 UN 부사무총장이며 뉴에이지운동의 기수인 로버트 뮬러는  ”우리가 오늘날 할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일은 진화론을 믿는 일이다”라고 하였다.19    
피에르 테일하드 드 차르뎅의 말을 들어 보자: “진화론은 공리(公理)로서 모든 이론과 모든 가정과 모든 체계가 이앞에 무릎을 꿇어야 하며 진리이고 또 사유될수 잇기 위해 서는 진화론을 만족 시켜야만 하는 것이다. 진화론은 모든 사실들을 비추는 빛이며, 모든 생각들이 반드시 따라야 하는 궤도이다.”20      

       결론적으로 오늘날 진화론은 전세계의 거의 모든 나라들의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 그리고 대학에서의 전문적인 학술 교육, 대중매체, 심리학, 사회학, 역사학, 문학, 교육, 윤리, 법, 헌법, 종교, 그리고 사회의 거의 전영역에 강력하고 주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진화론이 엄밀한의미에서는 과학이 아니라고 믿는 사람들의 이유이다. 어떠한 과학적 이론도 – 중력이론이나 원자이론들 마져도 – 이렇게 과학의 영역이 아닌 곳(사회, 종교, 정치)에 진화론 만큼의 믿을수 없는 영향력을 끼친 것은 없다. 이미 언급했지만 진화론의 영향과 또 그 남용은 그것을 많은 사람들이 이미 지적햇듯이 그것을 보다 종교적인 것으로 보이게 하였다. 이것이 어떤 이들의  진화론에 대한 예상치 않은 다음과 같은 주장을 낳게 했다: “진화론은  더욱 더 강렬하게 세계 종교, 세계 문화, 세계정부의 이론으로서의 역할을 할것이다.” 21        

       전세게의 대다수의 사람의 마음을 사로 잡고 있는 거의 신에 가까운 이이론을 이해하려면 다음의 친진화론적인 영향력 있는 철학과 종교들을 살펴보자: 자연주의, 실존주의, 유물론, 막시즘, 무신론, 인본주의, 신비주의, 힌두교, 불교, 도교, 자유주의적 유대교 및 기독교(과정신학 Process Theology 포함), 대다수의 이슬람과 로만 카톨릭, 대부분의 사교, 신흥종교, 그리고 뉴에이지 운동등.  

       이들 철학과 이데올로기들이 지상의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므로, 은밀하게 숨어 있을
       일부의 사람들은 거의 진화론을 경배하는 수준이라는 것의 에로서 로만 카톨릭 신부이며 신비주의자인 지라도, 진화론을 세계종교라고 말할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만일 진화론이 틀렸다면? 진화론의 영향을 받았던 모든 것들이 그 받은 악영향과 해악들을 드러내지 않을 것인가? 진화론이 미쳣던 영향력의 규모로 보아 그 파장은 결코 작을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보았듯이 20세기의 역사를 통해 진화론적 유물론의 해악을 따져보기만 한다면 이것이 얼마나 참인지 알 것이다. 무신론, 나찌즘, 막시즘과 같은 이데올로기들은 모두 합쳐볼 때 수천만의 인명을 학살했다. 오늘날 만연하는 상대주의, 이기주의, 허무주의, 절망, 그리고 비합법적 범죄들은 수천만명의 희생을 더했다. 이모든 일들이 진화론의 유물론적인 신조와 적자생존의 원칙에의해 승인되고 지원받았다. 따라서 진화론은 사실상 모든 영역의- 모든 학문의 분과, 모든 교육의 단계, 모든 적용분야 – 현대 사상을 주도하고 있다고 볼수 있다.  이사실 자체 만으로도 진화론은 현대사회의 현실에 대해 막중한 책임이 있는 것이다. 22  다시한번 20세기의 가장 유명한 소설가인 알더스 헉슬리는 “진화론은 세계를 오늘날 우리가 아는 세계로 만들었다”라고 한 것은 정확한 관찰이었다.23    

과학, 진화, 그리고 해석의 과정  
진화론자들이 일관되게 주장하는 것은 진화론은 진정한 과학적 이론으로서 추측이나 독단적 주장, 혹은 신앙을 완전히 배제한 것이라는 것이다. 펜실베니아 주립대학 생물학자 연합회에서는  ”진화론은 과학적과 과학적이론의 기준에 부합하며, 종교적인 믿음이나 단순한 추측, 혹은 독단적 주장이 아니다. 창조론자들이 그러듯이 진화론을 단지 이론이라고 하는 것은 과학과 과학적 방법에 대한 무지를 드러내는 것일 뿐이다”라고 주장했다.1        

오해된 과학  

오늘날 과학에 대한 많은 오해들이 존재 한다. 과학철학자 제이 피 무어랜드박사는 이런 과학에 대한 오해에 대해 말하면서 심지어 다음과 같은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오늘날의 과학자들은 더 옛날의 과학자들보다 과학을 정의하기에 더어려운 입장에 있는데 이는 그일이 본질적으로 철학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2 놀라운 진실은 W.R. 버드등이 지적했듯이 많은 과학자들이 과학의 속성에 대해 무지하다는 사실이다.3 버드와 무어랜드는 대학물리학, 생물학, 그리고 웹스터 뉴 컬리지 사전등과 같이 같이 보편적인 교재들과 1981년 12월에 미국 알칸사주의 리틀락에서 있었던 창조론 소송에서 창조론을 반대하기 위해 사용되었던 윌리엄 오버튼 판사의 과학에 대한 정의에서 과학에 대한 몇가지 표준적인 정의들을 인용하였다. 그러나 이것들중 어느 것도 과학에 대해 충분히 정확한 정의는 돼지 못하였다.4      

       지금 이시점에서 과학에 대한 정의의 문제를 깊이 다루지는 않겠다.5 그러나 그러나 우리는 과학과 철학의 상호영향은 복잡한 문제이며, 모든 사람이 수긍하는 과학에 대한 완벽한 정의는 없다는 사실은 분명히 하고자 한다. * 과학 자체를 정의 하는 것 보다는 과학적 방법론에 대해 정의하는 것이 보다 일반적이며 유익한 일이 될 것이다.  이를 위해 1982년판 옥스퍼드  사전 (Oxford American Dictionary)의 과학에 대한 정의를 살펴 보자: “학문의 한 분과로서 이미 논증이 된 진리들의 유기적인 집합 혹은 관찰된 사실로서 조직적으로 분류되고 결합되어 일반적인 법칙으로서 확립되고 그 영역안에서 새로운 진리들을 발견할수 있는 신뢰할만한 방법론을 포함하는 것.”(강조는 저저 첨가)        

       간단히 말한다면 과학적 방법론은 다음의 과정들을 포함하지만 여기에 국한 되지는 않는다:(생략)  

이상적인 과학적 작업은 특정한 문제를 규정하고, 가설을 확립하며, 결과를 해석하며, 논리적인 결론을 내린후 세심한 검토를(peer review) 포함하는 잘정리된 방법론을 포함한다. 과학과 과학적 방법론은 다음과 같이 정의되는  가설, 이론, 그리고 법칙을 다룬다.6  

       1. 가설: “추론의 기초가 되는 제안으로서 그 진위가 시험의 대상이 되는 것: 가능한 원인에 대한 추측을 가설이라고 부른다. (American Heritage Dictionary of Science) 가설은 그것에 기초한 예측이 검증될 때 마다 신뢰도를 얻는다. (Parks and Steinbach, Systematic College Chemistry, p304).”

       가설은 결코 완벽하게 검증되거나 증명 될 수 없는데, 이는 그것이 실험의 결과에 따라 지지되거나 반박되기 때문이다. 이것의 이유는 잘못된 가설이 다른원인을 갖지만 같은 결과를 내는 경우 참되게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가설은 단지 결과에 대한 임시적인 해석을 제공하며, 많은 경우 어떤 이론의 기초로서 혹은 다음 실험과 관측을 위한 길잡이로서 잠정적으로 채택되는 것이라는 것이다.”7    

       2. 이론(Theory): 이론은 여러 가설들의 집합이다. 에를들어 진화론은 돌연변이, 집단유전학, 자연선택, 유전적 표류(Genetic Drift), 생명의 기원등에 관한  다수의 가설들의 집합이다. 이론은 “자연현상을 설명하고 예측하는데 쓰이는 일반화된 원칙으로서 시험되고 검증이 된 설명이나 이론체계로서 실험과 관측, 그리고 추론에 의해 형성되는 것”(The American Heritage Dictionary of Science)이라고 정의 된다.8   과학적 용어로서의 이론과 가설은 “관찰된 특수한 사실로부터 일반화된 것으로, 그것의 원인과 관계까지 설명할수 있는 것처럼 제안 된다.”9

       3. 법칙 (Law): “법칙이란 어떤 규정된 조건 아래에서는 언제나 일어나는 현상에 대한 진술을 말한다.”10 다시 말하자면 법칙이란 주어진 조건아래에서 언제나 참으로 관측되는 사실에 대한 선언 이라고 할수 있다. 과학적 법칙은 과학적 이론과 가설에서 발견 되는 종류의 설명은 젝ㅇ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중력의 법칙은 모든 물체는 공중에서 땅으로 떨어진다고 언명한다. 중력의 이론은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지를 설명하려고 하는 것이다. 따라서, 과학적 이론은 법칙이될수 없고 다만 법칙을 설명할 뿐인 것이다.”    

       진화론의 경우에 있어서는 어떻게 개념을 정립할 것인가? 과학적 법칙, 이론, 혹은 가설이 정확한 개념일까?분명 과학적 법칙이나 사실은 아니며, 앞에서 정의한 이론에 적합한 것도 아니다. 만일 어떻게 하여 진화론이 합법적으로 임시적인 이론이나 가설로 고려된다 하더라도 역시 문제점을 갖고 있다. 만일 우리가 가설을 “현상의 원인에 대한 추측”이나 “자료에 대한 단순히 임시적인 설명”으로 정의 한다면, 진화론은 빈약하지만 가설의 범주에 포함될 것이다.11 그러나 우리가 가설을 “관찰된 개개의 사실들의 추론에 따라 일반화된 것으로서, 현상의 원인과 관계등을 잘설명할수 있는 것”이라고 정의 한다면, 진화론은 이범주에 들어 가지 않는다. 우리가 내릴수 있는 진화론에 관한 가장 정확한 분류는 “과학적 자연주의에 기초한 기원에 대한 진술로서 유물론적인 전제이며, 증거가 없이도 참으로 여겨지는 것” 이다.  

       본질적으로는 진화론은 진정한 과학 이론으로서 받아들여 져서는 안될것이었다. 참된 과학은 심험적으로 관찰된 사실들로부터 유추된 논리적인 추론을 사용하여 진실에 도달한다. 과학과 과학적 방법론에 대한 정확한 정의가 시사하는 바는 자연을 탐구하는 과학자는 과학적 방법론을 구사한다 할지라도, 진화론 자체는 궁극적으로 좋은 과학이 될 수 없는데, 이는 진화론은 “증명된 사실”이나 “관찰된 현상”을 포함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진화론이라는 일반화된 진리에 존재하는 개개의 사실들을 관찰함으로서 도달할수 없기 때문에  귀납법적인 방법으로도 이 결론에 이를수는 없다. 13 일부 식물이나 동물의 교배를 통해 알려진 바와 같이 종내의 아주 제한된 변이는 관찰될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진화론과는 아무런 관게도 없다. 또한 엄밀히 조사해 보면, 이것이 진화가 어떻게 일어나는지에 대한 기작(Mechanism)을 보여 주는 것도 아니다.  

       우리가 이 “이론”이라는 용어가 진화론에 어떻게 잘못 적용 되었는지 에 대해 생가하는지 좀더 숙고해 보자. 이미 언급한 대로 이용어는 상식적으로 사용되는 의미보다 보다 깊은 뜻이 있다. 과학적으로 말해 그것은 “단순한 이론”이다 라고 말하면 이는 그것이 이미 사실이 아니라는 뜻이다. 좋은 과학적 이론은 과학적 법칙들에 의존하는 법칙과 사실을 포함 하며 수많은 과학적 지식을 설명할수 있어야 한다.*14      

* 진화론자들은 “진화 이론”에서의 이론은 오랫동안 논쟁되어온 “진화의 기작”에 대한 것이지 “진화의 사실”에 대한 것이 아니라고 항변한다. 따라서 “진화이론을 의심하는 것은 원자이론이나 중력이론을 의심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고 주장한다. 15 문제는 진화의 기작뿐아니라 진화론의 모든 국면이 논쟁의 대상이 될 때에도 이 진화론을 선험적으로 참되다고 믿는데에 있다.  

       과학자에게 이론이라는 것은 일반인들이 생각하듯 불명료한 개념이나 잘정립되지않은 가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에 근거한 아주잘 정립된 개념을 의미한다. 이론은 사실이 되지 않는다. 그것은 사실들을 설명할 뿐이다. 이론은 반드시 검증될수 있어야 한다. 기존의 이론에 반대되는 현상이 관찰되면, 그이론은 반드시 교정되거나 폐기되어야 한다.16  

       진화론은 검증될수 없다. 그것이 설명하는 사실도 드물며,과학적 사실들과 모순이 되는 내용들조차 포함하고 있다. 더구나 그것에 반되돼는 부정할수 없는 많은 증거들이 있다. 따라서 과학적으로는 반드시 교정되거나 폐기되어야 한다. 진화론에 과학적 이론이라는 말을 쓰는 것은 부적절한 일이다. 진화론에 이용어를 쓸때는 오히려 상식적인 의미에서의 이론: “불명료한 개념이나 잘정립되지않은 가설”을 의미하는 것이다.  

       진화론자들의 진화론은 증명할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언급을 인용한 후에 랜디 와이송 박사는 “진화론은 과학적인 방법론에의해 공식화된 것이 아니다. (이들 과학자들은) 깨닫기를 (사실상) 진화론은 조성과 환경을 알수 없는 대기 혹은 바다에서 생성된 알수 없는 화학 물질들 로부터의 알수 없는 생물들의 최초의 형성을 의미한다. 그후 그 생물체들은 알수 없는 기작을 통해 알수 없는 진화 사닥다리를 통해 올라가는데 전혀 알수 없는 증거들을 남긴다” 고 말했다.17  

       의사 과학

       과학의 철학적 성격과 정의에 대한 심도있는 논의를 통해 우리는 왜 현대 진화론이 적절한 과학적 정의에 합당하지 않을 뿐아니라 오히려 과학을 왜곡하고 있다는 것을 알수 있다.  실제로 진화론자들에 의해 제안된 과학에 대한 과격한 정의는 “정의 자체만으로 돌연한 출현 (과학적 창조론)을 배제하기위한 명백한 의도를 가지고 고안 되었다.”18 예를 들어:

 1982년 연방법원의 판사였던 멕린(McLean)에 의해 작성된 정의는 다음과  같다: 과학의 본질적 특징은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다음과 같다:

1. 자연법칙에 따른다;
2. 자연법칙을 인용하여 설명하여야만 한다;
3. 실헌할수 잇는 세계에서 실험해 볼수 있어야 한다;
4. 그 결론은 잠정적인 것이다. 즉, 그것은 최종적인 결론이 아니다;
5. 거짓임이 입증될 가능성(Falsifiability)이 있어야 한다.  

 이 정의를 가지고 과학을 비과학과 구별하는 것은 완벽한 오류이다… 매린  정의(the mcLean Definition)는 존재하는 과학철학의 모든 문헌에 나오는    과학에 대한 정의의 어떤 것과도 닮지도, 혹은 그 근처에도 가지 않는다.    그리고, 그 법정에 선 몇몇 증인을 제외하면, 그후에도 어떤 과학철학자들   의 지지도 받지 못하였다. 실제로, 과학에 대한 멕린 정의는 ACLU(American Civil Liberties Union)이라는 단체가 “창조과학” 이라는 것을 과학이라는 정의를 통해 부정하기 위해 고안한 전술이었다. 19    

   버드가 앞서 언급 한 것과 같이,  한 과학 철학자는 “오버튼(Overton) 판사가 제시한 기준은(Mc Lean에 포함된) 과학의 “본질적 조건”은 이미 폐기된 여러 조건들을 부활시키려는  시대착오적인 노력 이외에 아무 것도 아니라고 지적하며 과학이 무엇인가    에 대한 거짓된 전형을 제시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과학 철학자는 이 멕린 기준이 아래에서 논의 된 것처럼 명백하게 오류라고 기술 했다.20  

  이 기준이 적합하지 않은 한가지 이유는 그 조건 1과 2에 나타난 과학적 자연주의의 전제 때문이다. 과학적 자연주의는 우주의 모든 것은 창조주에게 의존하지 않고도 폐쇄된 계내의 원인들 만으로 설명될 수 있다는 믿음이다.  그러나 이것은 무어랜드 박사가 창조 가설( The Creation Hypothesis, 1996)에서 지적한 대로 전혀 진지한 과학이 아니다. 만일 과학이 과학적 자연주의에 의해 지배되어야 한다면, 그것은 이미 과학이라고 여겨질 수 없는 것이다.  

       달리 말하자면, 창조론과 진화론에 관한 동일 시간법에 대한 윌리엄 오버튼 판사의 결정이 위헌적이라는 사실은 그 자체가 잘못된 과학에 관한 정의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에 부당한 것이다. 이 판결은 잘못된 법률적 추리일 뿐 아니라 사이비과학이기도 한 것이다. 이것은 심지어 많은 진화론자들에게서도 비판을 받았다. 예를 들어 피츠버그 대학의 과학철학 교수이며 진화론자인 레리 로든 박사는 “아칸소 소송에서의 승리는 공허한 것이다. 왜냐하면 이는 과학과 과학적 방법에 대한 잘못된 전형을 영속시키고 규범화하는 대가 위에 얻어진 승리이기 때문이다. 만일 이런 견해가 과학계내에서 아무런 도전도 받지 않는다면, 과학계 전반의 지적인 완전성에 심각한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 될 것이다.” 21      

      이경우와 또다른 많은 경우에서 처럼 좋은 법률적 추론도 과학적 원칙도 없이, 과학계의 대다수의 진화론자들은 결코 이판례에 대해 이론을 제기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그들은 오버튼 판사의 잘못된 판결을 창조론문제가 대두될때마다 진화론을 방어하는데 사용하였다.22 하지만 잘못된 과학의 정의를 기초로 하는 방어는 다만 자신들의 진화론에 대한 입장이 얼마나 빈약한지를 보여줄 따름이다.   기쉬박사나 다른 사람들이 지적한 바와 같이 진화론자들은 창조과학자들을 잘못된 근거로 공격하였을 뿐아니라 그들의 방법은 특히 사악하고 중상하는 것이었다. 23  창조과학자들을 문맥과 동떨어진 인용, 부정확한 인용, 왜곡하기, 그리고 까농고 거짓말하기 등으로 끊임없이 공격하는 것은 전문적인 과학자로서의 진화론자들 자신을 불공정하며 비윤리적이며 스스로의 품위를 떨어 뜨리는 자들로 만들었다. 이러한 전술은 단지 진화론 진영의 허약함을 긍정하는 일일 뿐이며, 자신들의 시들어 가는 이론에 대한 과학적 도전을 대응 하지못하는 무능력을 드러낼 뿐이었다. 만일 사실이 진화론편이라면, 그들은 단지 사실만을 언급하면, 그다음은 사실 자체가 웅변으로 진실을 이야기 할것이었다.24  

       매린법정에서의 창조론에 대한 편견에 상관없이, 과학적 발견은 확증된 진리와 관찰된 사실의 정도에 따라 정해지기 때문에 진화론은 과학적 발견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 진화론은 생명의 기원을 유물론적으로 설명하려는 자연주의 철학이나 세계관으로 분류되는 것이 가장 적절한 분류일 것이다. 고(故) 윌더 스미스박사는 , 3개의 과학 박사학위를 갖고 있었는데, 말하기를 “진화이론의 내포”에서 커컷(Kerkut)이 보여준대로 신다위니즘의 사상은 7대 가정을 가르친다. 이들증 어느 한가지도 증멸될 수 없고, 실험하는 것 조차 불가능 하다. 만일 그것이 실험적으로 지지 받지 못하는 것이라면, 그 전체 이론은 과학적인 것으로서 인정 받을 수 없는 것이다.만일 신다위니즘의 7대 가정이 실험적으로 확인해 볼 수 없다면, 그곳은 과학이 아니라 철학으로 간주 되어야 하는데 이는 과학은 실험 가능한 증거만을 취급하기 때문이다.25 윌더 스미스박사는 이 주제를 그의 저서 “공적인 과학들은 진화론과는 관계가 없다 (The National Sciences Knows Nothing of Evolution)” 등에서 다루었다.  

       기쉬 박사는 한걸음 더 나가서 진화론은 실험과학의 기준에 부합되지 않음을 지적했다:

       엄격히 정의할 때 실험과학은 반복적으로 관찰 가능한 사건, 과정, 그리고    성질 등을 관찰, 이해, 그리고 설명하려는 시도를 의미한다.  이런 이론적 기초 위에서 라면 미래의 사건이나 관련된 자연현상에 대한 예측이 가능하다. 따라서, 실험을 착상하여 진행해 봄으로서 그 이론을 검증해 보며, 만일 그 이론이 참되지 않다면 그것의 거짓됨을 밝힐 수 있는 것이다. 이 잠재적인 Falsifiability야말로 참된 과학적 이론의 핵심 요소인 것이다. 실험과학과 과학적 이론은 우주와 그 안에 있는 생명체가 어떻게 작용 (operate)하는지를 설명 하는 것에 국한 되어야 한다. 그것은 지금 저밖에 있는 세계, 바로 지금 이 시간에 존재하는 세계에 관해 이야기해야 하는 것이다.26  

       명백히도, 기원에 관한 이론들, 즉 우주의 기원, 은하계나 태양계에 관한 기원, 지구의 기원, 지구상의 생명의 기원 등은 엄밀히 말해 실험과학의 범위가 아니다. 기원은 관찰될 수 없으며, 또한 반복 될 수 없다. 단지 오류임이 밝혀 질 가능성이 있는 보조적인 가설들 만이 고려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는 진화론이든 창조론이든 오류성을 증명하기는 그 자체가 원래 불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여러 부수적인 가설들에 대한 오류를 증거하는 증거들이 압도적으로 많을 때는 다른 대안이 더 논리적인 선택이 될 것이다.  
그런데 이곳의 진퇴양난은 좀더 심각한 것이다. 진화론은 완전히 과학의 영역에서 벗어나 있고, 그간의 세월 동안 굉장한 탄력을 구축하여 모든 상호 모순되는 증거들을, 그것들이 얼마나 결정적이든 관계치 않고, 포괄하여 버렸다.         이것이 바로 진화론자들인 스탠포드 대학의 폴 엘릭 박사와 시드니 대학의 버치 박사가 최고 권위의 과학 잡지인 네이쳐(Nature)지에 다음과 같이 기고한 이유이다: “우리의 진화이론은 어떠한 가능한 관찰에 의해서도 반박될수 없는 것이 되었다. 어떠한 관찰도 진화론에 맞추어진다. 따라서 이것은 ‘실험과학의 영역을 벗어나는 것이지만 반드시 틀렸다고 만은 할수없을 것이다.” 27 사실, 앞으로 보겠지만, 모든 실제적인 논점에 있어서 진화론은 오류에 가득차 있다.  

       만일 진화론이 그렇게 변덕스러운 이론이라면 “실제 자료들은 아무 문제도 되지 않는다”28  왜냐하면 모든 자료를 꿰 맞출 방법들이 있기 때문인데, 그렇다면 그게 무슨 타당성이 있는 이론 이겠는가? 그이론은 검증해 볼수 없고 오류가능성을 조사할수 없으며, 그것의 가장 근간이 되는 가정들을 완전히 반박하는 자료마저 포용하는 이론인 것이다. 그것은 어떤것이든지 둘러 쌀수 있다. 종국에는 어떠한 질문도 없이 진리라고 수용되는 도그마가 아닐까? 그리고 도그마는 과학이라기 보다는 종교의 성질이 아닌가? 29  

네덜랜드의 우르트레히 대학의 발생유전학과의 연구교원이자 윌렘 오웬일박사는 그의 논문 “진화론 교리의 과학적 특성”에서 갈수록 많은 과학자들에게 명백해 져가는 사실을 지적했다: “진화론은 심지어 좋은 과학조차 되지 못한다.”30 그는 주장하기를 진화론은 과학적 사실, 이론, 가설, 혹은 공리로 간주되서는 않된다고 하였다. 예를 들어,  진화론은 엄밀한 과학적 공리(公理)가 아니다. 왜냐하면 공리가되려면, (1) 먼저 수학과 자연과학의 근간을 이루는 대법칙들과 부합해야 한다; (2)현상을        설명하는데 필요한 것이상으로 복잡해서는 않된다; (3) 장래의 실험과 관측에 의해 검증될수 있는 결론들을 도출해야 한다; (4) 반드시 일반 과학의 실험관측 결과들과 일치해야 한다; (5) 다른 대안이 틀렸거나 적합하지 않음을 반드시 제시해야하며; (6) 과학적 개념의 신뢰도는 그개념이 의지하는 공리의 수에 반비례한다.  진화론은 이 6가지 기준에 모두 부적합하여 과학적 공리로서 분류될수 없다. 이 것이 바로 오웬일박사가 진화론은 유물론적인 공리이지 신뢰할 만한 과학적 이론이 아니라고 한 근거이다.31  철헉자이며 비창조론자인 데이빗 벌린스키는 1996년 9월호 코멘터리(Commentary)지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 했다: “… 우리의 지식이 성장할수록 조악한 진화론의 얼개는 실제 증거들 과는 더욱 멀어질 뿐이다 … 그런데 실제 진화론의 문제점은 실험적인 측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개념자체의 이론적인 측면에 있다. 다윈의 진화론은 일화들의 모음집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과학 논문들을 읽어가지고는 이러한 사실을 결코 깨달을 수 없는데, 이는 이들이 진화가 과학적인 사실이라고 끈임 없이 세상을 향해 설득하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진화론이 사실일 수 밖에 없는 이유는 과학계를 지배하고 있는 자연주의철학의 영향때문인데, 이것은 종국에는 불필요하며 여러모로 과학하는 동기에 해로운 것이다.32        

가정과 해석  

       이쯤해서 과학적 자료에대한 해석의 문제를 다루고자한다.  진화론 문헌에서는 흔히 “진화는 사실이며” 혹은 “증거의 양은 엄청나다” 라는 드의 선언을 자주 듣게 된다. 반면에 반진화론 문헌에서는 “진화론은 신화”이며 “진화론을 믿는데 필요한 믿음은 믿음의 경지를 초월한다”는 등의 언급을 볼수 있다.  

       어떻게 같은 과학적 자료를 검토한 과학자들이 이렇게도 상반된 견해를 가질수 있는가? 이유는 간단하다: 그것은 어떻게 자료를 해석 하느냐에 달린 문제인 것이다. 진화론은 사용된 자료의 신뢰성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해석하는 과학자의 형이상학적 가정들의 범위내에서의 주관적인 해석에 더욱 의존하는 것이다.  ”자료들은 그 자체만으로는 아무 의미도 없다: 그것들은 반드시 해석 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들은 자주 개개인들이 원하는 것을 말한다.”33  따라서 어떤사람이 과학적 자연주의자라면, 그는 그의 자료들이 진화론의 각본에 반드시 들어 맏아야한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실제로, 모든 종류의 기술적인 과학실험, 논쟁, 그리고 철학화등은 진화론을 지지하도록 압박을 받고 있으며, 명백히, 수만편의 진화론을 지지하는 학술 논문들은 인상적인 것 같기도 하다. 과학자들이 이논문들을 읽을 때, 특히 자신의 분야가 아닐때는, 진화가 참이라고 스스로 믿게되는 것이다.  

       어려운 점은 해서은 아주 큰 노력이 드는 일 이어서,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진화에 반대되는 증거나 창조론을 지지하는 증거들을 거의 고려하지 않는다. 다시 말하자면, 다른쪽은 결코 객관적으로 고려하지 않는데, 이는 진화론이 반드시 옳다는 “과학의 권위”에 그들이 기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시말하지만 자료들은 진화론의 틀안에 맞추어 질 수 있다. 엄격히 검토해볼 때 모순되는 것은 단지 자료들일 뿐인 것이다.                      

           법정에서 이에 대한 예를 발견할수 있다. 피고는 범죄레대해 무죄일수도 유죄일수도 있다. 검사와 변호사 모두 경찰들이 애써 모은 자료를 공유한다. 검사는 이것을 피고가 유죄임을 증명하는데사용하겠지만, 동시에 변호사는 이를 피고가 무죄임을 증명하는데 사용할 것이다.  

       이예는 같은 증거가 실제로는 한가지 방향으로 가장장 해석될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서로 다른 두가지 방법으로 해석될수 있는지를 잘 보여 준다. 그리고 대개는, 특별히 변호사가 솜씨가 좋고 법을 교묘히 다룰줄 아는 경우에는 더욱, 실제 어느쪽으로 증거가 기우는지를 가늠하는데 시간이 걸린다. 관심을 갖고 있는 보통사람이 창조/진화 논쟁에 대해 이해하고자 할 때에도 같은 상황에 처하게 된다. 판결에 시간이 걸리는 한가지 이유는 대부분의 유물론적 과학자들이 자신의 과학속에 포함시키는 철학적 전제들 때문인데, 이것을 저용하는 것은  실제 과학적 자료들을 조작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the application of which is tantamount to a manipulation of the data.)  

       창조론자 들은 과학적 자연주의에서 시작하지 않고 유신론적 과학 혹은 창조과학에서 시작하기 때문에 다른 시각을 갖게 된다. 창조론자들이 진화론을 다음과 같은 수다한 학문 (수학적 확률론, 화석학적 증거, 정보이론 및 생물체가 갖고 있는 방대한 정보량, 열역학, 생물속생설(biogenesis)과 모순이 없음(noncontradiction), 생리학/해부학/분류학/발생학/형태학/유전학 및 생화학의 비교연구, 인류학, 지질학, 생물학)의 관점에서 살펴볼 때 누구라도 객관적으로 사안을 검토해 본사람이라면 진화론이 사실이라 거나 혹은 믿을 만한 이론이라고 조차 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왜 창조론자들이 일반인이든 과학자이든지, 누구든지 선입견이 없이 증거들을 검토한다면 그 증거들이 창조론을 지지하는 것을 발견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유이다.  

       따라서 진화론자이며 생물학자인 에드워드 도슨이 “분기학(分岐學, Cladistics)적 논란에도 불구하고 진화론을 증거하는 아직도 많은 증거가 생물지리학, 비교해부학, 비교발생학, 비교생리학 비교생화학, 고생물학, 유전학, 세포학과같은 광범위한 학문분야에 존재한다”34고 말할 때, 이는 이미 전제되 있는 철학적 가정(과학적 자연주의)에의한 해석의 문제에 대한 사안임을 깨달아야한다. 창조론자들은 똑 같은 분야를 평가할 때 진화론을 부정하거나 창조론적인 관점에의해 자료들을 더욱 잘 설명하게 된다. 예를 들어, 해부학적인 사실 자체를 가지고 논쟁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심지어 같은 진화론자들 가운데서도 그것을 해석함에 있어서는 보통 어려움을 격을뿐 아니라 잠정적인 것에 그친다. 이것에 대한 좋은 예들이 드비어( G. DeBeer)의 저서 “상동기관:그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Homology: An Unsolved Problem)”과 마발리 웨이크(Marvalee H. Wake)의 “하이멘의 척추동물 비교해부학(Hyman’s Comparative Vertebrate Anatomy)”등의 해부학/상동기관 저서에 잘 나타난다. 이들 저서들은 왜 창조론자들이 이분야의 증거가 실제로 창조론을 더욱 지지하고 있다고 주장하는지에 대해 잘 보여주고 있다.  

       동식물의 지리적 분포를 연구하는 학문인 생물지리학의 예를 한번 살펴보자. 유명한 동물학자인 가렛 넬슨은 버드(W.R. Bird)의 저서 “다시 초대된 종의 기원”의 다음과 같은 서문을 썻다. “이책은 진화론을 비판하는 장점을 갖고 있지만”이라고 한후에, 그러나 이책에는 명백히도  생물지리학의 자료들이 빠져있는데 저자는 이를 반드시 다루었어야만 했다고 주장했다. 넬슨의 관점에 의하면 “수많은 지리학적 분포의 사실들이 존재 하며, 이 자료들은 진화론을 지지하는 가장 강력한 증거로 여겨져왔다”.35    

       그러나 이것은 결코 사실이 아니다. 하바드 대학에서 고생물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커트 와이스(Kurt P. Wise)박사는 소생물지리학(Microbiogeography)과 대생물지리학(Macrobiogeography)는 반드시 구분 되야 한다고 지적했다. 소생물지리학은 아주 닮은 생물들은 근접한 지역에서 자주발견되는 사실을 포함하는데, 이는 이들이 마치 진화를 통해 그렇게 된것처럼 생각된다는 것이다. 와이스박사는 지적하기를 이는 단지 소진화(microevolution, 혹은 variation)와 집단유전학적 변이(evolution of populations)의 증거일뿐이라고 지적하면서, 이것이 결코 대진화(Macroevolution)나 생물분류의 대표그릅들의 기원을 설명할수 없음을 지적한다. 대생물지리학에 관해서는 “대진화를 지지하는 대생물지리학적 증거는 거의 없으며, 있다 해도 개연적인 것들일 뿐이다. 가장 잘 알려진 예는 호주의 유대류들인데, 이것 조차 그렇게 설득력이 있는것도 아니다.36″라고 논평했다.  

       생물지리학의 문제는 제쳐놓더라도 우리는 버드박사에의해 제시된 수많은 진화론을 부정하는 증거들이 넬슨박사에게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에 흥미를 느낀다. 그러나 사실은 이것이 바로 핵심인 것이다. 넬슨박사가 버드의 저서에 대해 말했듯이 “이 주장들은 결코 나의 진화론을 믿는 동료들을 설득 시키지 못할 것이다…”37    

            오늘날 과학적 자연주의에 헌신된 과학자들은 증거가 아무리 설득력 있더라도 결코 창조과학자들의 주장에 설득되지 않을 것이다. 이는 그들이 철학적 전제가 원천적으로 다른 길을 가로막기 때문이다.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 버클리분교의 법학교수인 필립 죤슨은 너무도 중요한 저서 “균형잡힌 이성: 과학, 법, 그리고 교육에 있어서 자연주의에 대한 반대 판례”를 썼다. 이책에서 그는 현대 진화론의 믿음뒤에 있는 철학적 가정들을 논하면서 진화론자들이 창조론에 대해 어째서 그렇게 거부감을 나타내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어떤 것이 합당하고 이성적인 것인지는 진리를 탐구해서 알아지는 것이 아니라 어떤 것이 합리적인지에 대한 선험적 개념들에 의해 규정되는 것이다. 오늘날 통용되는 과학에 대한 정의는 물질만이 모든 존재의 궁극적인 원인이라는 개념을 내포한다.  따라서 존재에 대한 어떠한 초자연적인 혹은 비물질적인 설명도 결코 용납되지 않으며 터무니 없는 것으로 취급된다. 본질적으로, 다윈이 그의 저서 “종의 기원”을 통해 성취하려고 했던 것은 과학의 영역에서 신을 축출하려는 것이었고, 이는 실제로 이루어 졌다. 종교적인 설명들은 신뢰받지 못하는데, 이는 그것이 신뢰할수 없는 선입견에 의해 좌우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종교적인 설명은 비과학적인데, 이는 종교적인 설명은 과학적일수 없기 때문이다.38  

       되풀이 되지만 “표준(The Criterion)” 이라는 책의 저자이며 유명한 진화론자인 제리 버그만의 창조론자에 대한 변명할수 없는 편견을 드러내는 다음 진술을 고려해보자:  

       이 평론가들은 설계된 세계관(a designed worldview)을 지지하는 자들을     공격하기위해 씌어진 반-창조론에관한 수십권의 책들을 읽었다. 대부분의  저서들은 지성에의한 설계논증(the intelligent design view)에 대한 이해가  전혀없는 자들에 의해 씌여졌다. 대부분은 부정확한 진술들을 반복하다가    부정확하며 기초가 없는 결론에 이르게 되는데 이는 자주 반복되다가 결국 수용되고 만다. 넘버스나 토우미 같이 창조론자들에 관해 심도있고 광    범위한 연구를 수행한 사람들은 진화론적 자연주의의 근간을 이루는 잘못    된 결론들을 효과적으로 반박하거나 적어도 비판하였다.”39    

       제리 버그만이 감수한 책은 크리스토퍼 토우미(Christopher P. Toumey)가 쓴 “하나님의 과학자들: 세속안의 창조론자들 (God’s Own Creationists: Creationists in a Secular World)”로서 1994년에 럿거스대학(Rutgers University)출판부에서 출판되었다. 토우미는 자연주의적 진화론자들의 창조론과 창조과학자들에 대한 일반적인 이해가 매우 자주 심히 부정확함을 보여주고 있다. 그실 실제로 다음과 같이 결론짖고 있다: “과학적 창조론은 진화론에 대한 일반인들의 신뢰를 뒤 앞었으며, 보수적 기독교인들에게 과학이야말로 성경의 가장좋은 친구라는 것을 믿을 이유를 제공했다. … 현대적 창조론은 더 이상 과학적 무지나 성경에 대한 노예와 같은 맹종으로 치부될수 없다. 사실은 창조론이야 말로 풍부하고 복잡한 지식과 가치와 믿음의 체계인 것이다… 미국 창조과학 연구소인 ICR(Institute for Creation Research)의 과학자들은 다른 모든 과학자들이 하는 것 이상으로 엄격한 과학활동을 하고있다.”40  

         따라서 우리는 이 창조/진화 논쟁이 사실은 과학적 자료에대한 해석의 문제임을 보게 된다. 창조론자들도 진화론자들이 하듯이 자신의 과학적인 자료들을 해석할 정당한 근거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오직 창조론만이 정당한 과학적시야를 제공한다는 사실만이 왜 임없이, 비록 소수지만, 과학자들이 진화론을 거부하고 창조론을 수용하게 되는지를 설명할수 잇다. 사실 우리는 확신하기를 만일 충분히 설명 할 수만 있다면, 미국의 모든 법정의 배심원들이 창조론이 과학적일뿐 아니라 진화론에 대한 동등한 대안이며, 실은 더 나은 과학적 대안임을 인정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만일 창조론진영에서 창조론자는 아니지만 진화론에는 반대하는 전문가를 포함하는 최고의 법률, 철학, 과학의 전문변호사들이 소송에 참가한다면, 그 소송에서 창조론진영이 승리할 것임을 우리는 확신한다.  

    신학적 차원  

마지막으로, 어떤 의미에서는, 과학적 자료를 해석하는데 있어서 신학적인 차원의 개입이 존재한다. 적어도, 기독교인이라면, 로마서 1장에 나오는 창조/진화에 관한 언급을 알고 있어야만 할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진리를 분명하게 보여주심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그들이 진리를 핍박하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신다고 분명히 하고 있다: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 이는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롬 1:18-21).

       하나님이 가르치시면 실패할 염려가 없다. 오직 고의적으로 증거들을 무시할 때 많이 믿지 않는 불신앙을 가져오는 것이다. 거듭나지 않은 사람들의 마음과 생각에 대해 성경이 증거하는 것과 같이 세속과학자들은 일반적으로 분명히 보이는 것을 부정하고, 심지어는 창조의 사실에 대해 적대적이기 까지 한 선택을 하는 것이다. 로마서 1장에 따르면 창조의 사실은 “희미하거나 감추어진 것이 아니라 분명히 보이는 만들어진 것들을 통해 이해되는”진리인 것이다. 그들이 의지적으로 하나님의 존재하심과 그의 창조에 관한 진리를 왜곡 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불신자들이 변명할 수 없다고 하신 것이다. 다시 말해서 과학자를 포함하는 모든 사람들이 자연에 나타난 하나님 존재를 부정하려 할 것이며, 혹은 고의적으로 그것을 훼손할 것 인데, 이는 자연계의 상태에 따른 것이 아니라 오직 그들의 마음의 상태에 따른 것이다. 사도 베드로는 또 다른 영적 사실인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서도 “그들이 고의적으로 잊으려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벧후 3:5).
        본질적으로는, 유물론적 과학자들은 자연을 하나님 없이 혹은 멀리 존재하는 것으로 해석 하는 고의적인 개념체제를 고안했는데, 이것이 바로 다윈이 했던 일인 것이다. (닐 길레스피의 중요한 저서인 다윈과 창조의 문제(Charles Darwin and the Problem of Creation)를 보라.) 그들은 모든 사물을 이 왜곡되고 결함투성이인 자유주의 개념체제를 통해서 해석되는 것이다.42

       따라서 과학적 증거 자체만큼 중요한 것은 인간의 마음속에 있는 신학적인 편견으로서 이것이 증거들을 객관적으로 검토하는 것을 차단하는 것이다. 제리 버그만 박사가 유물론적 경향이 심한 과학과 창조론에 관한 사전(Dictionary og Science and Creationism)을 감수하고서는 다음과 같이 평했다: “이 책을 감수하면서,  창조론에 반대하는 책을 쓴 사람들에 대한 나의 가정에 일치함을 곧 발견했는데, 이는 그들이 개인적으로 기독교에 대해 뿌리깊은 악감정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43 누구라도 이런 사람들이 진화의 개념을 하나님을 거역하고 성경의 권위를 부인하며, 기독교 신앙을 반대하면서, 다른 모든 종류의 철학, 도덕, 사회 그리고 정치적 해악들을 지지하는데 사용했는지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그 것이 함축하는 바를 쉽게 이해할 것 이다.  

       이 모든 것들이 관련된 신학적 논점인 영적 기만의 문제로 귀결 된다.

“식량은 저절로 생긴다.”

(심봉섭 박사. 워싱턴창조과학회)

 사람들은 지혜로운 판단을 하고, 바른 길을 가고 싶어 한다. 그렇지만, 세상에는 생각의 한계를 넘어서는 복잡한 사건이 많고, 상황과 이해 관계에 따라 수 많은 의견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핵심을 꿰뚫는 지혜로 옳은 판단을 내리지 못할 때가 많다. 특히 기원에 대해 더 이상 생각하기를 포기하고 싶을 때, 우리가 흔히 쓰는 말이 있다. 닭이 먼저인가? 달걀이 먼저인가?’

 누구도 알 수 없을 것 같은 이 문제에 대해, 창세기의 기록을 신뢰하는 사람이라면 닭이 먼저임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피조물을 창조하실 때, 각기 종류대로(their kinds)그리고 성체(成體)로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이런 성경의 답을 듣고나면, 어떻게 달걀이 먼저라고 주장할 수 있었는가 하는 어리석음이 깨우쳐 진다. 달걀은 닭이 품어주지 않으면 닭이 될 수 없지만, 닭은 달걀 없이도 달걀을 낳을 수 있다. 반면에, 성경과 하나님의 창조를 부인하는 진화론자들에게는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는 풀 수 없는 영원한 난제가 된다.

이것이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닭(livestock)을 창조하신 이유에서 (인간의 죄로 인해 육식이 시작되는 노아 홍수 후를 대비해) 우리에게 식량과 식사의 즐거움을 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은혜를 엿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그 분만이 성체인 닭을 창조하실 수 있는 전지전능자시며, 자연 현상과 법칙이 그 분의 지혜 아래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우리가 열심히 일해서 먹고 사는 것 같지만, 사실, 우리의 식량은 저절로 생긴다. 사과가 태양 빛을 받아 저절로 자라고, 쌀이 그렇고, 돼지와 소가 그렇다. 우리의 모든 음식은 저절로 생긴다. 우리가 하는 일은 사과를 따서, 집으로 가져와, 깨끗하게 씻고서, 이쁘게 썰어, 먹는 일 밖에 없다. 정작 중요한 본질적인 일 즉, 사과가 커져서 먹기 알맞게 익는 일과 육축들이 교배해 일정기간에 새끼를 탄생 시키는 일은 창조주 하나님께서 하신다. 무엇이 지혜로운 삶의 방법인가? 우리가 애쓰고 수고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모든 것을 주신 분이 성경 속의 창조주시며 그 분께 감사하고,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일이다. 그리고 가장 어리석고, 피해야 할 일은 창조주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사람들의 궤변에 동의, 동조해 주는 일이다.

창 1:30 “땅의 모든 짐승과 하늘의 모든 새와 생명이 있어 땅에 기는 모든 것에게는 내가 모든 푸른 풀을 먹을 거리로 주노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문의 734-262-0824/Ark353.com)

“5+5=13″

(심봉섭 박사. 워싱턴창조과학회)

 
 5 더하기 5가 13, 20, 10이라면? 모두 정답일 수 있다.  7진법으로는 13, 5진법으로는 20, 현재 사용하는 10진법으로는 10이기 때문이다. 각각의 계산은 논리적이지만, 만약 12진법으로 계산해야 옳았다면 모두 틀린다. 일주일은 7진법이고, 시간은 12진법이기 때문에, 이런 다양한 논리의 계산법은 억지가 아니다.
 
우리에게 알려진 기원과학의 함정이 바로 이렇다. 매일매일 벌어지는 현상에 대해 검증 가능한 실험 과학과는 구별되게, 기원과학은 검증 실험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과학자들이 여러가지 논리를 세워 지구와 우주의 기원을 추정 해석한다. 과학의 기법을 사용하지만, 주관적 해석이 필수적인 “과학적 역사학”이다. 즉, 본질적으로 기원과학은 주관적인 해석이다.
 
 실험과학을 전공하는 필자의 관점으로, “진화”는 이러한 주관적 믿음 중 하나이지 과학이 아니다. 진화론의 두 가지 핵심 주장, “생명의 자연발생”과 “진화중간체 (Missing link)”의 증거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첫째, 생명의 자연발생설은 파스퇴르에 의해 부정되었다. 미생물이라도, 생명은 자연발생되지 않는다는 것을 파스퇴르가 실험으로 증명하였다. 다윈의 진화론을 ‘믿는’ 밀러가 라세미체 아미노산을 합성하였다고 하나, 이 결과로부터 생명의 자연 발생을 연결하는 과학자는 현재 거의 없다. 둘째, 진화는 종간에 이동(즉, 물고기로부터 새, 파충류, 양서류, 포유류가 되는 변화)을 주장하는데, 진화 중간체가 없다. 화석에도 없다. 이를 빠진고리라고 하는데, 진화론을 ‘믿는’ 과학자들이 이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새롭게 추가한 이론이 ‘단속평형이론 (Punctuated equilibrium)’이다. 즉, 종 간의 진화는 순식간에 일어나서, 진화중간체의 화석이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는 이론이다. 다른말로, 증거가 없어도 진화를 믿자는 제안이다.
 
 실험과학과 다르게, 기원과학은 실험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증명도 부정도 쉽게 할 수 없다. 따라서, 여러가지 이론을 논리에 맞게 주장할 수 있는 것이 기원과학이다. 현대 과학의 문제 중 하나는 진화이론이 검증된 적이 없는 무신론적인 “믿음”인데 공립학교에서 가르쳐지고 있는 것이다. 창조론적인 해석은 금지당한채 진화론적 해석만 가르쳐지고 있다. 모든 교실에서 “창조주는 없으며, 세상은 저절로 생겼다”는 진화믿음을 세뇌당하고 있다. 진화믿음의 열매는 사회학 통계가 말해 주듯이 낙태, 동성연애, 포르노, 이혼율의 급증으로 나타난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게 하셨으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롬1:24-25) (문의 734-262-0824/Ark353.com)

지부 소개

◈ 설립 목적

1. 본회는 지역 사회에 진화론의 허구를 알리고 성경과 과학과 자연을 통해(롬1:20) 창조의 사실을 선포하여(창1:1) 인류의 잃어 버린 창조주의 형상을(창1:27) 회복하고 오늘날의 자연과 만물의 기원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함이다. ”

2. 현 교과서의 진화론적 사상과 뉴에이지에 노출된 한인 2세들에게 하나님의 자녀라는 정체성을 갖게 하며 지속적인 교육의 장(School)을 제공하여 성경의 진리와 세상의 학문을 혼란 없이 분별하여 받아드릴 수 있도록 돕기 위함이다.

3. 자녀들에게 창조의 진리를 전하고 싶어하는 한인 부모들에게 미국 및 한국 창조과학회의 사역과 활동을 알려 자녀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고 그 속에서 교육받아 성장한 2세들이 다시 한인 사회로 돌아와 창조과학 사역을 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함이다.
 
 
◈ 주요 사역

1. 강의 및 세미나 사역

다양한 내용과 자료를 갖추고 있는 창조과학학교의 체계 있는 강의를 통해 잘못된 지식을 벗겨내고 진리의 지식을 갖출 수 있도록 도우며 인원과 장소에 구애 받지 않는 세미나를 제공한다.

2. 은사자 발굴 및 자료 개발 사역

창조과학 사역에 은사가 있는 분을 발굴해 전공별로 창조의 증거를 연구, 개발 및 보급한다. 

3.  지역 사회에 대한 사역

창조의 사실을 알고 싶거나 자녀들에게 가르쳐 주고 싶을 때 언제든지 찾아올 수 있도록 장소나 장(school)을 제공한다.

4. 미국 창조과학회 활동의 보급

미국 창조과학회에서 발표되는 창조의 과학적 증거와 그 곳에서 제공하는 여러 활동 및 소식들을
다양한 매체를 통해 한인 사회의 학부모에게 전해 2세들에게 전달될 수 있도록 돕는다.

 

진실임이 틀림없다 (과학이 그렇다고 하니까)

과학적 입증과 진화

어떤 주제에 대한 독단적인 주장은 객관적인 생각과는 조화를 이루지 않는다. 과학은 항상 시험적이며 궁극적인 진실을 줄 수 있는 것 같지는 않다. – West Virginia Academy of Sciece

진화는 사실이다, 사실이야, 사.실.이.란.말이다.!. – 마이클 루제 (Michael Ruse)

진화는 과학자 집단에 의해서 계속해서 확고한 과학적 사실인 것처럼 주장되어지고 있다. 진화가 과학적 사실임이 “틀림 없는” 유일한 이유는 과학계 전반에 걸쳐서 침투해 있는 자연주의적이며 반-초자연적인 편견이다. 이러한 편견은 19세기 진화론 분야의 4명의 거장-다윈(Darwin), 스펜서(Spencer), 헉슬리(Huxley), 왈라스(Wallace)-과 오늘날 진화가 과학적 사실이라고 주장하는 과학자들의 삶에서 확인해 볼수 있다.

생물과학(BioScience)을 쓴 저자인 하버드 대학교의 레원틴은 진화론자들이 “진화는 사실이지 가설이 아니다”라고 분명히 선언하면서 동시에 “창조론자들은 아무것도 모른다”고 야단치는 것이 직업적 성향임을 잘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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