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7/9)
현대세계에 미친 진화론의 영향
다윈의 저작을통해 전파된 사상들에 의해 영향을 받지 않은 어떠한 과학이나 인간관, 혹은 제도권력도 존재하지 않는다. - 철학자 제이 콜린스, “밀러와 레빈의 생물학(Miller and Levine’s Biology, Prentice Hall, 1995, p.313)” 중에서
인류역사상 진화론 만큼 큰영향을 끼친 이론도 없을 것이다. 이를 예증하기 위해, 여러분야에서 저명한 과학자와 전기작가, 그리고 사상가들이 진화론의 영향에 대해 언급한말들을 살펴보자. 그런 연후에야 우리는 진화론의 엄청난 영향과, 현대를 사는 우리의 삶에 미친 영향을, 그리고 우리의 후손들의 삶에 미칠 영향에 대해 이해하기 시작할 것이다.
이 주제에 대해 좀더 비판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함에 따라, 다음의 말을 숙고해 보라. 생믈학 및 생태학자인 쥴리안 헉슬리경은 “진화론은 지구가 생긴이래 탄생한 가장 강력하고 포괄적인 이론”이라고 진술했다. 1 약 25년전 유명한 진화 동물학자이며 하바드대 교수였던 어네스트 메이어 는 “진화론은 인간역사상 일어났던 모든 지적 혁명중 가장 근본적인 것”으로 여겨 지게 될것이라고 말했다.2 사실또한 그랬다. 현재 거의 모든 학계에서 진화론이 수용된 사실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찰스다윈에 대한 현대판전기의 결정판인 다윈: 고통받은 진화론자의 생애을 저술한 제임스 무어는 그 저서를 통해 “다른 어떤 사상가 보다도 – 심지오 막스나 프로이드 보다도- 다윈이 이 지구라는 행성위에 사는 우리가 우리자신을 생각하는 방식을 변혁했다”고 지적했다.4
다윈의 종의 기원
현대세계에 끼친 점을 생각해 볼 때, 다윈의 이 저서는 다른 어떤 책과도 비교 될 수 없다. 웬델 버드는 예일 대를 졸업한 유명한 미국의 변호사로서, 미국의 대법원에서 있었던 창조론과 진화론의 소송에서 창조론의 주장을 대변하였다. 1,100쪽에 이르는 보고서 “다시쓰는 종의 기원: 진화이론과 돌연한 종의 출현에 관한 이론(The Origin of Species Revisited: The Theory of Evolution and of Abrupt Appearance)”에서 종의기원이라는 단한권의 책이 진화론적인 전제하에 발전해가는 자연과학 뿐 아니라 다른 인문과학, 신학, 그리고 정부조직에 까지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기술했다.5 물리학자 립슨은 한걸음더 나가서 “종의 기원은 이제까지 출판된 책들중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책이라고 하였다”.6
유명한 생물학자인 데오도시우스 도브쟌스키는 그의 저서 “진화하는 인간”이라는 책에서 “1859에 출간된 다윈의 종의 기원이 인간의 역사에 지적인면에서 전환점을 가져 왔고 인간과 우주에서의 인간의 위치에 대하여 새로운 이해로 안내하였다”고 썼다.7 다윈사후 백년이 지난 지금에도 진화론은 인간이 인간을 이해하는 모습의 핵심이 되고 있다고 그는 말했다. 이런 진화론의 영향은 생물학이나 과학의 범주를 훨씬 벗어나 있다: 이해하든 오해하든 간에 이미 대중문화의 일부분인 것이다.8
과학계외에 미치는 진화론의 영향
몇가지 예를 생각해 보자. 하바드대의 생물학 교수인 어네스트 메이어는 사이언티픽 어메리칸 (Scientific American) 1978년 9월호 47쪽에서 “우리의 세계관은 진화론에 의해 주도되며…”라고 썼으며, 1972년 6월 2일에 사이언스 (Science) 지 981쪽에 “진화론은 인간의 인간중심주의뿐 아니라 만일 일관되게 적용되기만 했다면 다른 모든 형이상학과 윤리학의 개념에 큰 영향을 주엇을 것”이라고 주장했다.9 저명한 생태학자인 리네 두보와(Rene Dubois)는 어메리칸 사이언티스트(American Scientist), 1965sus 3월호 6쪽에서 “진화의 개념은 사회의 제도기관과 예술에까지 적용되었다. 실제 신학, 사회학, 역사학, 예술을 가르치는 학교뿐아니라 대부분의 정당들까지도 진화론을 가르치며 또 그것을 그들의 강령의 기초로 삼고 있다”고 말했다.10
미국 도서관 협회의 전직회장인 로버트 다운스는 진화론의 영향에 대해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칼 막스라는 가능한 예외를 제외하고는 이 19세기의 유명인사들과 또한 그외 19세기의 수많은 사람들중에 다윈 만큼 주류 사상과 인간사회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조망에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은 없을 것이다. 회고해 보건데, 거의 모든 학문 영역에 미친 다윈의 영향은 심대하였고 또한 앞으로도 또한 그럴 겄이다. 진화론의 강령은 생물학자, 지질학자, 화학자, 물리학자, 인류학자, 심리학, 교육학, 철학, 사회학자, 그리고 심지어는 역사학자, 정치학자와 언어학자들에까지 깊이 파고 들었다. 찰스 엘우드는 “다윈의 업적이 모든 종류의 사상, 특별히 생물학, 심리학, 사회과학에 끼친 영향을 생각해 볼 때 우리는 다윈이 19 세기가 낳은 영국뿐 아니라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 결실을 남긴 사상가라는 가장높은 보좌라는 명예를 주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다윈이즘이 사회에 끼친 영향에 대한 이해는 이제 막 시작 했을 뿐이다.”라고 천명했다.
안토니 웨스트는 “종의 기원의 영향은 실로 거대한 것이 다. 단지 새로운 정적인 것에서 동적인 것으로의 접근원리를 천명함으로서, 그는 학문의 모든 분과들, 천문학에서 역사학까지, 화석학에서 심리학까지, 심지어 발생학에서 종교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것에 혁명적 변화를 일으 켰다”11 라고 동의 하였다. 따라서 분자 생물학자이며 진화론 비판자인 마이클 덴튼은 이 강력한 이론이자연과학의 범주를 넘어까지 미친 강력한 영향에 대해 이야기 할 때, 특별히 20세기의 사회적 격변들이 진화론에 의해 재가를 받은 철학이 없었다면 불가능 했을 것이라고 지적하는 것이다:
20세기는 진화론을 배제하고는 이해할수 없는 세기가 될 것이 다. 지난 80년간을 휩쓴 사회및 정치적인 흐름들은 그것들을 재가해준 기본적인 사상들이 없었다면 불가능 했을 겄이다. 생물학과는 아무관계도 없는 영역들에게 미친 진화론의 영향은 과 학적으로 엄밀한 증거가 없는 추론적인 이론이 전체사회의 유행하는 사상이 되고 우리가 시대를 보는 강력한 관(觀)이 되었는지 역사상 가장 놀라운 예가 될 것이다.
실제로 오늘날 20세기를 규정하는 불가지론과 회의주의는 다른 무었보 다도 진화론의 영향이라고 볼수 잇다. 이 이론이 바로 문자 그대로 세계를 바꾼 것이다.” 12 옥스퍼드 대학, 켄터베리대학, 그리고 에일대학 교수를 역임한 버나드 스톤하우스 박사는 현재 “Polar Record”라는 학술지의 편집위원으로 케임브리지의 스콧 폴라 연구소 (Scott Polar Research Institute)에 있다. 그는 이 진화이론에 대해 철학의 모든 분과에 퍼져가는 요원의 불길과도 같다. 이것은 종교와 도덕의 영역에 까지 침투하여 성직자들이 우려하는 대로 상식이 되어 가고 있다. 그러나 만일 진화론이 허구라면 우리가 일상적으러 생각했던 것들의 기초가 무너지며 우리 모두는 보다 나은 것을 찾아 나서야 할 것이다. 13
그러나 만약 진화론이 우리의 모든 문화에 침투해 있고 현대인에계 세계관을 제공하고 그에 따른 모든 행동들에 영향을 미쳐왔다면, 이론에 대한 고찰은 정말 중대한 것이 아니겠는가? 누가 이 창조-진화 논쟁이 중요하지 않다고 할것인가? 실제로 인간이 그의 기원에대해 이해하는 것은 그의 세계관 형성에, 그의 여러 결정들에, 심지어 그의 삶의 방식에 까지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철학자 프럔시스 쉐퍼는 말하기를 스스로 깨닫는 것 보다 훨씬 더 그들의 전제(presupposition)들에일치 되게 산다고 했다.14
새로운 종교?
이런점에서 진화론은 단순한 과학 이론이 아니다. 이것은 거대한 유물론의 통합이론으로 종교의 거의 모든 요소를 갖고 있는 것이다 (17장에서 더깊이 논의 됨). 쥬리안 헉슬리경이 썼듯이 “현재 우리의 지식은 실제로 모든 존재하는 것은 진화 – 스스로 변해가는 단일한 과정으로 서의 진화- 뿐이라는 세계관으로 우리를 강제한다. 15 이것이 도브잔스키가 다음과 같이 관찰하게된 이유이다:” 진화론은 우주안의 모든 발전의 모든 단계: 우주론적, 생물학적, 인간적, 그리고 문화적인 발생 및 전개의 모든 단계를 구성한다. 진화론을 생물학에만 극한 시키는 것은 터무니 없는 짓이다. 생명은 무기물에서 진화되어 나왔고, 인간은 생물이 진화 되어 생긴 것이다.”16
만일 모든 실체가 진화에 의한 것이며 진화자체가 실체의 모든 것이고 그것이 우리를 만들었다면, 우리는 진화를 신뢰하고 그 앞에 절해야 할 것이다. 아마도 진화론은 인간사회를 이끄는 안내 원리가 되야 할 것이다.17 쥴리안 헉슬리경이 UNESCO의 초대 총재가 되었는데, 그 기구의 처음 몇 년 동안에 UNESCO의 기본 철학이 UN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관계속에서 헉슬리는 1979년 3-4 월호 The Humanist 35-36 쪽에서, ” UNESCO가 진화론을 채택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UNESCO 의 철학은 전 지구적인 규모와 진화론적인 배경신념을 갖는 과학적 인본주의 이어야 한다. 따라서 자연선택의 기초인 생존경쟁은 사상과 의식의 투쟁인 의식선택으로 대체되고 있다.18 전직 UN 부사무총장이며 뉴에이지운동의 기수인 로버트 뮬러는 ”우리가 오늘날 할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일은 진화론을 믿는 일이다”라고 하였다.19
일부의 사람들은 거의 진화론을 경배하는 수준이라는 것의 에로서 로만 카톨릭 신부이며 신 일치 되게 산다고 했다.14
새로운 종교?
이런점에서 진화론은 단순한 과학 이론이 아니다. 이것은 거대한 유물론의 통합이론으로 종교의 거의 모든 요소를 갖고 있는 것이다 (17장에서 더깊이 논의 됨). 쥬리안 헉슬리경이 썼듯이 “현재 우리의 지식은 실제로 모든 존재하는 것은 진화 – 스스로 변해가는 단일한 과정으로 서의 진화- 뿐이라는 세계관으로 우리를 강제한다. 15 이것이 도브잔스키가 다음과 같이 관찰하게된 이유이다:” 진화론은 우주안의 모든 발전의 모든 단계: 우주론적, 생물학적, 인간적, 그리고 문화적인 발생 및 전개의 모든 단계를 구성한다. 진화론을 생물학에만 극한 시키는 것은 터무니 없는 짓이다. 생명은 무기물에서 진화되어 나왔고, 인간은 생물이 진화 되어 생긴 것이다.”16
만일 모든 실체가 진화에 의한 것이며 진화자체가 실체의 모든 것이고 그것이 우리를 만들었다면, 우리는 진화를 신뢰하고 그 앞에 절해야 할 것이다. 아마도 진화론은 인간사회를 이끄는 안내 원리가 되야 할 것이다.17 쥴리안 헉슬리경이 UNESCO의 초대 총재가 되었는데, 그 기구의 처음 몇 년 동안에 UNESCO의 기본 철학이 UN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관계속에서 헉슬리는 1979년 3-4 월호 The Humanist 35-36 쪽에서, ” UNESCO가 진화론을 채택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UNESCO 의 철학은 전 지구적인 규모와 진화론적인 배경신념을 갖는 과학적 인본주의 이어야 한다. 따라서 자연선택의 기초인 생존경쟁은 사상과 의식의 투쟁인 의식선택으로 대체되고 있다.18 전직 UN 부사무총장이며 뉴에이지운동의 기수인 로버트 뮬러는 ”우리가 오늘날 할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일은 진화론을 믿는 일이다”라고 하였다.19
피에르 테일하드 드 차르뎅의 말을 들어 보자: “진화론은 공리(公理)로서 모든 이론과 모든 가정과 모든 체계가 이앞에 무릎을 꿇어야 하며 진리이고 또 사유될수 잇기 위해 서는 진화론을 만족 시켜야만 하는 것이다. 진화론은 모든 사실들을 비추는 빛이며, 모든 생각들이 반드시 따라야 하는 궤도이다.”20
결론적으로 오늘날 진화론은 전세계의 거의 모든 나라들의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 그리고 대학에서의 전문적인 학술 교육, 대중매체, 심리학, 사회학, 역사학, 문학, 교육, 윤리, 법, 헌법, 종교, 그리고 사회의 거의 전영역에 강력하고 주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진화론이 엄밀한의미에서는 과학이 아니라고 믿는 사람들의 이유이다. 어떠한 과학적 이론도 – 중력이론이나 원자이론들 마져도 – 이렇게 과학의 영역이 아닌 곳(사회, 종교, 정치)에 진화론 만큼의 믿을수 없는 영향력을 끼친 것은 없다. 이미 언급했지만 진화론의 영향과 또 그 남용은 그것을 많은 사람들이 이미 지적햇듯이 그것을 보다 종교적인 것으로 보이게 하였다. 이것이 어떤 이들의 진화론에 대한 예상치 않은 다음과 같은 주장을 낳게 했다: “진화론은 더욱 더 강렬하게 세계 종교, 세계 문화, 세계정부의 이론으로서의 역할을 할것이다.” 21
전세게의 대다수의 사람의 마음을 사로 잡고 있는 거의 신에 가까운 이이론을 이해하려면 다음의 친진화론적인 영향력 있는 철학과 종교들을 살펴보자: 자연주의, 실존주의, 유물론, 막시즘, 무신론, 인본주의, 신비주의, 힌두교, 불교, 도교, 자유주의적 유대교 및 기독교(과정신학 Process Theology 포함), 대다수의 이슬람과 로만 카톨릭, 대부분의 사교, 신흥종교, 그리고 뉴에이지 운동등.
이들 철학과 이데올로기들이 지상의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므로, 은밀하게 숨어 있을
일부의 사람들은 거의 진화론을 경배하는 수준이라는 것의 에로서 로만 카톨릭 신부이며 신비주의자인 지라도, 진화론을 세계종교라고 말할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만일 진화론이 틀렸다면? 진화론의 영향을 받았던 모든 것들이 그 받은 악영향과 해악들을 드러내지 않을 것인가? 진화론이 미쳣던 영향력의 규모로 보아 그 파장은 결코 작을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보았듯이 20세기의 역사를 통해 진화론적 유물론의 해악을 따져보기만 한다면 이것이 얼마나 참인지 알 것이다. 무신론, 나찌즘, 막시즘과 같은 이데올로기들은 모두 합쳐볼 때 수천만의 인명을 학살했다. 오늘날 만연하는 상대주의, 이기주의, 허무주의, 절망, 그리고 비합법적 범죄들은 수천만명의 희생을 더했다. 이모든 일들이 진화론의 유물론적인 신조와 적자생존의 원칙에의해 승인되고 지원받았다. 따라서 진화론은 사실상 모든 영역의- 모든 학문의 분과, 모든 교육의 단계, 모든 적용분야 – 현대 사상을 주도하고 있다고 볼수 있다. 이사실 자체 만으로도 진화론은 현대사회의 현실에 대해 막중한 책임이 있는 것이다. 22 다시한번 20세기의 가장 유명한 소설가인 알더스 헉슬리는 “진화론은 세계를 오늘날 우리가 아는 세계로 만들었다”라고 한 것은 정확한 관찰이었다.23
과학, 진화, 그리고 해석의 과정
진화론자들이 일관되게 주장하는 것은 진화론은 진정한 과학적 이론으로서 추측이나 독단적 주장, 혹은 신앙을 완전히 배제한 것이라는 것이다. 펜실베니아 주립대학 생물학자 연합회에서는 ”진화론은 과학적과 과학적이론의 기준에 부합하며, 종교적인 믿음이나 단순한 추측, 혹은 독단적 주장이 아니다. 창조론자들이 그러듯이 진화론을 단지 이론이라고 하는 것은 과학과 과학적 방법에 대한 무지를 드러내는 것일 뿐이다”라고 주장했다.1
오해된 과학
오늘날 과학에 대한 많은 오해들이 존재 한다. 과학철학자 제이 피 무어랜드박사는 이런 과학에 대한 오해에 대해 말하면서 심지어 다음과 같은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오늘날의 과학자들은 더 옛날의 과학자들보다 과학을 정의하기에 더어려운 입장에 있는데 이는 그일이 본질적으로 철학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2 놀라운 진실은 W.R. 버드등이 지적했듯이 많은 과학자들이 과학의 속성에 대해 무지하다는 사실이다.3 버드와 무어랜드는 대학물리학, 생물학, 그리고 웹스터 뉴 컬리지 사전등과 같이 같이 보편적인 교재들과 1981년 12월에 미국 알칸사주의 리틀락에서 있었던 창조론 소송에서 창조론을 반대하기 위해 사용되었던 윌리엄 오버튼 판사의 과학에 대한 정의에서 과학에 대한 몇가지 표준적인 정의들을 인용하였다. 그러나 이것들중 어느 것도 과학에 대해 충분히 정확한 정의는 돼지 못하였다.4
지금 이시점에서 과학에 대한 정의의 문제를 깊이 다루지는 않겠다.5 그러나 그러나 우리는 과학과 철학의 상호영향은 복잡한 문제이며, 모든 사람이 수긍하는 과학에 대한 완벽한 정의는 없다는 사실은 분명히 하고자 한다. * 과학 자체를 정의 하는 것 보다는 과학적 방법론에 대해 정의하는 것이 보다 일반적이며 유익한 일이 될 것이다. 이를 위해 1982년판 옥스퍼드 사전 (Oxford American Dictionary)의 과학에 대한 정의를 살펴 보자: “학문의 한 분과로서 이미 논증이 된 진리들의 유기적인 집합 혹은 관찰된 사실로서 조직적으로 분류되고 결합되어 일반적인 법칙으로서 확립되고 그 영역안에서 새로운 진리들을 발견할수 있는 신뢰할만한 방법론을 포함하는 것.”(강조는 저저 첨가)
간단히 말한다면 과학적 방법론은 다음의 과정들을 포함하지만 여기에 국한 되지는 않는다:(생략)
이상적인 과학적 작업은 특정한 문제를 규정하고, 가설을 확립하며, 결과를 해석하며, 논리적인 결론을 내린후 세심한 검토를(peer review) 포함하는 잘정리된 방법론을 포함한다. 과학과 과학적 방법론은 다음과 같이 정의되는 가설, 이론, 그리고 법칙을 다룬다.6
1. 가설: “추론의 기초가 되는 제안으로서 그 진위가 시험의 대상이 되는 것: 가능한 원인에 대한 추측을 가설이라고 부른다. (American Heritage Dictionary of Science) 가설은 그것에 기초한 예측이 검증될 때 마다 신뢰도를 얻는다. (Parks and Steinbach, Systematic College Chemistry, p304).”
가설은 결코 완벽하게 검증되거나 증명 될 수 없는데, 이는 그것이 실험의 결과에 따라 지지되거나 반박되기 때문이다. 이것의 이유는 잘못된 가설이 다른원인을 갖지만 같은 결과를 내는 경우 참되게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가설은 단지 결과에 대한 임시적인 해석을 제공하며, 많은 경우 어떤 이론의 기초로서 혹은 다음 실험과 관측을 위한 길잡이로서 잠정적으로 채택되는 것이라는 것이다.”7
2. 이론(Theory): 이론은 여러 가설들의 집합이다. 에를들어 진화론은 돌연변이, 집단유전학, 자연선택, 유전적 표류(Genetic Drift), 생명의 기원등에 관한 다수의 가설들의 집합이다. 이론은 “자연현상을 설명하고 예측하는데 쓰이는 일반화된 원칙으로서 시험되고 검증이 된 설명이나 이론체계로서 실험과 관측, 그리고 추론에 의해 형성되는 것”(The American Heritage Dictionary of Science)이라고 정의 된다.8 과학적 용어로서의 이론과 가설은 “관찰된 특수한 사실로부터 일반화된 것으로, 그것의 원인과 관계까지 설명할수 있는 것처럼 제안 된다.”9
3. 법칙 (Law): “법칙이란 어떤 규정된 조건 아래에서는 언제나 일어나는 현상에 대한 진술을 말한다.”10 다시 말하자면 법칙이란 주어진 조건아래에서 언제나 참으로 관측되는 사실에 대한 선언 이라고 할수 있다. 과학적 법칙은 과학적 이론과 가설에서 발견 되는 종류의 설명은 젝ㅇ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중력의 법칙은 모든 물체는 공중에서 땅으로 떨어진다고 언명한다. 중력의 이론은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지를 설명하려고 하는 것이다. 따라서, 과학적 이론은 법칙이될수 없고 다만 법칙을 설명할 뿐인 것이다.”
진화론의 경우에 있어서는 어떻게 개념을 정립할 것인가? 과학적 법칙, 이론, 혹은 가설이 정확한 개념일까?분명 과학적 법칙이나 사실은 아니며, 앞에서 정의한 이론에 적합한 것도 아니다. 만일 어떻게 하여 진화론이 합법적으로 임시적인 이론이나 가설로 고려된다 하더라도 역시 문제점을 갖고 있다. 만일 우리가 가설을 “현상의 원인에 대한 추측”이나 “자료에 대한 단순히 임시적인 설명”으로 정의 한다면, 진화론은 빈약하지만 가설의 범주에 포함될 것이다.11 그러나 우리가 가설을 “관찰된 개개의 사실들의 추론에 따라 일반화된 것으로서, 현상의 원인과 관계등을 잘설명할수 있는 것”이라고 정의 한다면, 진화론은 이범주에 들어 가지 않는다. 우리가 내릴수 있는 진화론에 관한 가장 정확한 분류는 “과학적 자연주의에 기초한 기원에 대한 진술로서 유물론적인 전제이며, 증거가 없이도 참으로 여겨지는 것” 이다.
본질적으로는 진화론은 진정한 과학 이론으로서 받아들여 져서는 안될것이었다. 참된 과학은 심험적으로 관찰된 사실들로부터 유추된 논리적인 추론을 사용하여 진실에 도달한다. 과학과 과학적 방법론에 대한 정확한 정의가 시사하는 바는 자연을 탐구하는 과학자는 과학적 방법론을 구사한다 할지라도, 진화론 자체는 궁극적으로 좋은 과학이 될 수 없는데, 이는 진화론은 “증명된 사실”이나 “관찰된 현상”을 포함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진화론이라는 일반화된 진리에 존재하는 개개의 사실들을 관찰함으로서 도달할수 없기 때문에 귀납법적인 방법으로도 이 결론에 이를수는 없다. 13 일부 식물이나 동물의 교배를 통해 알려진 바와 같이 종내의 아주 제한된 변이는 관찰될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진화론과는 아무런 관게도 없다. 또한 엄밀히 조사해 보면, 이것이 진화가 어떻게 일어나는지에 대한 기작(Mechanism)을 보여 주는 것도 아니다.
우리가 이 “이론”이라는 용어가 진화론에 어떻게 잘못 적용 되었는지 에 대해 생가하는지 좀더 숙고해 보자. 이미 언급한 대로 이용어는 상식적으로 사용되는 의미보다 보다 깊은 뜻이 있다. 과학적으로 말해 그것은 “단순한 이론”이다 라고 말하면 이는 그것이 이미 사실이 아니라는 뜻이다. 좋은 과학적 이론은 과학적 법칙들에 의존하는 법칙과 사실을 포함 하며 수많은 과학적 지식을 설명할수 있어야 한다.*14
* 진화론자들은 “진화 이론”에서의 이론은 오랫동안 논쟁되어온 “진화의 기작”에 대한 것이지 “진화의 사실”에 대한 것이 아니라고 항변한다. 따라서 “진화이론을 의심하는 것은 원자이론이나 중력이론을 의심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고 주장한다. 15 문제는 진화의 기작뿐아니라 진화론의 모든 국면이 논쟁의 대상이 될 때에도 이 진화론을 선험적으로 참되다고 믿는데에 있다.
과학자에게 이론이라는 것은 일반인들이 생각하듯 불명료한 개념이나 잘정립되지않은 가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에 근거한 아주잘 정립된 개념을 의미한다. 이론은 사실이 되지 않는다. 그것은 사실들을 설명할 뿐이다. 이론은 반드시 검증될수 있어야 한다. 기존의 이론에 반대되는 현상이 관찰되면, 그이론은 반드시 교정되거나 폐기되어야 한다.16
진화론은 검증될수 없다. 그것이 설명하는 사실도 드물며,과학적 사실들과 모순이 되는 내용들조차 포함하고 있다. 더구나 그것에 반되돼는 부정할수 없는 많은 증거들이 있다. 따라서 과학적으로는 반드시 교정되거나 폐기되어야 한다. 진화론에 과학적 이론이라는 말을 쓰는 것은 부적절한 일이다. 진화론에 이용어를 쓸때는 오히려 상식적인 의미에서의 이론: “불명료한 개념이나 잘정립되지않은 가설”을 의미하는 것이다.
진화론자들의 진화론은 증명할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언급을 인용한 후에 랜디 와이송 박사는 “진화론은 과학적인 방법론에의해 공식화된 것이 아니다. (이들 과학자들은) 깨닫기를 (사실상) 진화론은 조성과 환경을 알수 없는 대기 혹은 바다에서 생성된 알수 없는 화학 물질들 로부터의 알수 없는 생물들의 최초의 형성을 의미한다. 그후 그 생물체들은 알수 없는 기작을 통해 알수 없는 진화 사닥다리를 통해 올라가는데 전혀 알수 없는 증거들을 남긴다” 고 말했다.17
의사 과학
과학의 철학적 성격과 정의에 대한 심도있는 논의를 통해 우리는 왜 현대 진화론이 적절한 과학적 정의에 합당하지 않을 뿐아니라 오히려 과학을 왜곡하고 있다는 것을 알수 있다. 실제로 진화론자들에 의해 제안된 과학에 대한 과격한 정의는 “정의 자체만으로 돌연한 출현 (과학적 창조론)을 배제하기위한 명백한 의도를 가지고 고안 되었다.”18 예를 들어:
1982년 연방법원의 판사였던 멕린(McLean)에 의해 작성된 정의는 다음과 같다: 과학의 본질적 특징은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다음과 같다:
1. 자연법칙에 따른다;
2. 자연법칙을 인용하여 설명하여야만 한다;
3. 실헌할수 잇는 세계에서 실험해 볼수 있어야 한다;
4. 그 결론은 잠정적인 것이다. 즉, 그것은 최종적인 결론이 아니다;
5. 거짓임이 입증될 가능성(Falsifiability)이 있어야 한다.
이 정의를 가지고 과학을 비과학과 구별하는 것은 완벽한 오류이다… 매린 정의(the mcLean Definition)는 존재하는 과학철학의 모든 문헌에 나오는 과학에 대한 정의의 어떤 것과도 닮지도, 혹은 그 근처에도 가지 않는다. 그리고, 그 법정에 선 몇몇 증인을 제외하면, 그후에도 어떤 과학철학자들 의 지지도 받지 못하였다. 실제로, 과학에 대한 멕린 정의는 ACLU(American Civil Liberties Union)이라는 단체가 “창조과학” 이라는 것을 과학이라는 정의를 통해 부정하기 위해 고안한 전술이었다. 19
버드가 앞서 언급 한 것과 같이, 한 과학 철학자는 “오버튼(Overton) 판사가 제시한 기준은(Mc Lean에 포함된) 과학의 “본질적 조건”은 이미 폐기된 여러 조건들을 부활시키려는 시대착오적인 노력 이외에 아무 것도 아니라고 지적하며 과학이 무엇인가 에 대한 거짓된 전형을 제시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과학 철학자는 이 멕린 기준이 아래에서 논의 된 것처럼 명백하게 오류라고 기술 했다.20
이 기준이 적합하지 않은 한가지 이유는 그 조건 1과 2에 나타난 과학적 자연주의의 전제 때문이다. 과학적 자연주의는 우주의 모든 것은 창조주에게 의존하지 않고도 폐쇄된 계내의 원인들 만으로 설명될 수 있다는 믿음이다. 그러나 이것은 무어랜드 박사가 창조 가설( The Creation Hypothesis, 1996)에서 지적한 대로 전혀 진지한 과학이 아니다. 만일 과학이 과학적 자연주의에 의해 지배되어야 한다면, 그것은 이미 과학이라고 여겨질 수 없는 것이다.
달리 말하자면, 창조론과 진화론에 관한 동일 시간법에 대한 윌리엄 오버튼 판사의 결정이 위헌적이라는 사실은 그 자체가 잘못된 과학에 관한 정의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에 부당한 것이다. 이 판결은 잘못된 법률적 추리일 뿐 아니라 사이비과학이기도 한 것이다. 이것은 심지어 많은 진화론자들에게서도 비판을 받았다. 예를 들어 피츠버그 대학의 과학철학 교수이며 진화론자인 레리 로든 박사는 “아칸소 소송에서의 승리는 공허한 것이다. 왜냐하면 이는 과학과 과학적 방법에 대한 잘못된 전형을 영속시키고 규범화하는 대가 위에 얻어진 승리이기 때문이다. 만일 이런 견해가 과학계내에서 아무런 도전도 받지 않는다면, 과학계 전반의 지적인 완전성에 심각한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 될 것이다.” 21
이경우와 또다른 많은 경우에서 처럼 좋은 법률적 추론도 과학적 원칙도 없이, 과학계의 대다수의 진화론자들은 결코 이판례에 대해 이론을 제기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그들은 오버튼 판사의 잘못된 판결을 창조론문제가 대두될때마다 진화론을 방어하는데 사용하였다.22 하지만 잘못된 과학의 정의를 기초로 하는 방어는 다만 자신들의 진화론에 대한 입장이 얼마나 빈약한지를 보여줄 따름이다. 기쉬박사나 다른 사람들이 지적한 바와 같이 진화론자들은 창조과학자들을 잘못된 근거로 공격하였을 뿐아니라 그들의 방법은 특히 사악하고 중상하는 것이었다. 23 창조과학자들을 문맥과 동떨어진 인용, 부정확한 인용, 왜곡하기, 그리고 까농고 거짓말하기 등으로 끊임없이 공격하는 것은 전문적인 과학자로서의 진화론자들 자신을 불공정하며 비윤리적이며 스스로의 품위를 떨어 뜨리는 자들로 만들었다. 이러한 전술은 단지 진화론 진영의 허약함을 긍정하는 일일 뿐이며, 자신들의 시들어 가는 이론에 대한 과학적 도전을 대응 하지못하는 무능력을 드러낼 뿐이었다. 만일 사실이 진화론편이라면, 그들은 단지 사실만을 언급하면, 그다음은 사실 자체가 웅변으로 진실을 이야기 할것이었다.24
매린법정에서의 창조론에 대한 편견에 상관없이, 과학적 발견은 확증된 진리와 관찰된 사실의 정도에 따라 정해지기 때문에 진화론은 과학적 발견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 진화론은 생명의 기원을 유물론적으로 설명하려는 자연주의 철학이나 세계관으로 분류되는 것이 가장 적절한 분류일 것이다. 고(故) 윌더 스미스박사는 , 3개의 과학 박사학위를 갖고 있었는데, 말하기를 “진화이론의 내포”에서 커컷(Kerkut)이 보여준대로 신다위니즘의 사상은 7대 가정을 가르친다. 이들증 어느 한가지도 증멸될 수 없고, 실험하는 것 조차 불가능 하다. 만일 그것이 실험적으로 지지 받지 못하는 것이라면, 그 전체 이론은 과학적인 것으로서 인정 받을 수 없는 것이다.만일 신다위니즘의 7대 가정이 실험적으로 확인해 볼 수 없다면, 그곳은 과학이 아니라 철학으로 간주 되어야 하는데 이는 과학은 실험 가능한 증거만을 취급하기 때문이다.25 윌더 스미스박사는 이 주제를 그의 저서 “공적인 과학들은 진화론과는 관계가 없다 (The National Sciences Knows Nothing of Evolution)” 등에서 다루었다.
기쉬 박사는 한걸음 더 나가서 진화론은 실험과학의 기준에 부합되지 않음을 지적했다:
엄격히 정의할 때 실험과학은 반복적으로 관찰 가능한 사건, 과정, 그리고 성질 등을 관찰, 이해, 그리고 설명하려는 시도를 의미한다. 이런 이론적 기초 위에서 라면 미래의 사건이나 관련된 자연현상에 대한 예측이 가능하다. 따라서, 실험을 착상하여 진행해 봄으로서 그 이론을 검증해 보며, 만일 그 이론이 참되지 않다면 그것의 거짓됨을 밝힐 수 있는 것이다. 이 잠재적인 Falsifiability야말로 참된 과학적 이론의 핵심 요소인 것이다. 실험과학과 과학적 이론은 우주와 그 안에 있는 생명체가 어떻게 작용 (operate)하는지를 설명 하는 것에 국한 되어야 한다. 그것은 지금 저밖에 있는 세계, 바로 지금 이 시간에 존재하는 세계에 관해 이야기해야 하는 것이다.26
명백히도, 기원에 관한 이론들, 즉 우주의 기원, 은하계나 태양계에 관한 기원, 지구의 기원, 지구상의 생명의 기원 등은 엄밀히 말해 실험과학의 범위가 아니다. 기원은 관찰될 수 없으며, 또한 반복 될 수 없다. 단지 오류임이 밝혀 질 가능성이 있는 보조적인 가설들 만이 고려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는 진화론이든 창조론이든 오류성을 증명하기는 그 자체가 원래 불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여러 부수적인 가설들에 대한 오류를 증거하는 증거들이 압도적으로 많을 때는 다른 대안이 더 논리적인 선택이 될 것이다.
그런데 이곳의 진퇴양난은 좀더 심각한 것이다. 진화론은 완전히 과학의 영역에서 벗어나 있고, 그간의 세월 동안 굉장한 탄력을 구축하여 모든 상호 모순되는 증거들을, 그것들이 얼마나 결정적이든 관계치 않고, 포괄하여 버렸다. 이것이 바로 진화론자들인 스탠포드 대학의 폴 엘릭 박사와 시드니 대학의 버치 박사가 최고 권위의 과학 잡지인 네이쳐(Nature)지에 다음과 같이 기고한 이유이다: “우리의 진화이론은 어떠한 가능한 관찰에 의해서도 반박될수 없는 것이 되었다. 어떠한 관찰도 진화론에 맞추어진다. 따라서 이것은 ‘실험과학의 영역을 벗어나는 것이지만 반드시 틀렸다고 만은 할수없을 것이다.” 27 사실, 앞으로 보겠지만, 모든 실제적인 논점에 있어서 진화론은 오류에 가득차 있다.
만일 진화론이 그렇게 변덕스러운 이론이라면 “실제 자료들은 아무 문제도 되지 않는다”28 왜냐하면 모든 자료를 꿰 맞출 방법들이 있기 때문인데, 그렇다면 그게 무슨 타당성이 있는 이론 이겠는가? 그이론은 검증해 볼수 없고 오류가능성을 조사할수 없으며, 그것의 가장 근간이 되는 가정들을 완전히 반박하는 자료마저 포용하는 이론인 것이다. 그것은 어떤것이든지 둘러 쌀수 있다. 종국에는 어떠한 질문도 없이 진리라고 수용되는 도그마가 아닐까? 그리고 도그마는 과학이라기 보다는 종교의 성질이 아닌가? 29
네덜랜드의 우르트레히 대학의 발생유전학과의 연구교원이자 윌렘 오웬일박사는 그의 논문 “진화론 교리의 과학적 특성”에서 갈수록 많은 과학자들에게 명백해 져가는 사실을 지적했다: “진화론은 심지어 좋은 과학조차 되지 못한다.”30 그는 주장하기를 진화론은 과학적 사실, 이론, 가설, 혹은 공리로 간주되서는 않된다고 하였다. 예를 들어, 진화론은 엄밀한 과학적 공리(公理)가 아니다. 왜냐하면 공리가되려면, (1) 먼저 수학과 자연과학의 근간을 이루는 대법칙들과 부합해야 한다; (2)현상을 설명하는데 필요한 것이상으로 복잡해서는 않된다; (3) 장래의 실험과 관측에 의해 검증될수 있는 결론들을 도출해야 한다; (4) 반드시 일반 과학의 실험관측 결과들과 일치해야 한다; (5) 다른 대안이 틀렸거나 적합하지 않음을 반드시 제시해야하며; (6) 과학적 개념의 신뢰도는 그개념이 의지하는 공리의 수에 반비례한다. 진화론은 이 6가지 기준에 모두 부적합하여 과학적 공리로서 분류될수 없다. 이 것이 바로 오웬일박사가 진화론은 유물론적인 공리이지 신뢰할 만한 과학적 이론이 아니라고 한 근거이다.31 철헉자이며 비창조론자인 데이빗 벌린스키는 1996년 9월호 코멘터리(Commentary)지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 했다: “… 우리의 지식이 성장할수록 조악한 진화론의 얼개는 실제 증거들 과는 더욱 멀어질 뿐이다 … 그런데 실제 진화론의 문제점은 실험적인 측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개념자체의 이론적인 측면에 있다. 다윈의 진화론은 일화들의 모음집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과학 논문들을 읽어가지고는 이러한 사실을 결코 깨달을 수 없는데, 이는 이들이 진화가 과학적인 사실이라고 끈임 없이 세상을 향해 설득하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진화론이 사실일 수 밖에 없는 이유는 과학계를 지배하고 있는 자연주의철학의 영향때문인데, 이것은 종국에는 불필요하며 여러모로 과학하는 동기에 해로운 것이다.32
가정과 해석
이쯤해서 과학적 자료에대한 해석의 문제를 다루고자한다. 진화론 문헌에서는 흔히 “진화는 사실이며” 혹은 “증거의 양은 엄청나다” 라는 드의 선언을 자주 듣게 된다. 반면에 반진화론 문헌에서는 “진화론은 신화”이며 “진화론을 믿는데 필요한 믿음은 믿음의 경지를 초월한다”는 등의 언급을 볼수 있다.
어떻게 같은 과학적 자료를 검토한 과학자들이 이렇게도 상반된 견해를 가질수 있는가? 이유는 간단하다: 그것은 어떻게 자료를 해석 하느냐에 달린 문제인 것이다. 진화론은 사용된 자료의 신뢰성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해석하는 과학자의 형이상학적 가정들의 범위내에서의 주관적인 해석에 더욱 의존하는 것이다. ”자료들은 그 자체만으로는 아무 의미도 없다: 그것들은 반드시 해석 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들은 자주 개개인들이 원하는 것을 말한다.”33 따라서 어떤사람이 과학적 자연주의자라면, 그는 그의 자료들이 진화론의 각본에 반드시 들어 맏아야한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실제로, 모든 종류의 기술적인 과학실험, 논쟁, 그리고 철학화등은 진화론을 지지하도록 압박을 받고 있으며, 명백히, 수만편의 진화론을 지지하는 학술 논문들은 인상적인 것 같기도 하다. 과학자들이 이논문들을 읽을 때, 특히 자신의 분야가 아닐때는, 진화가 참이라고 스스로 믿게되는 것이다.
어려운 점은 해서은 아주 큰 노력이 드는 일 이어서,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진화에 반대되는 증거나 창조론을 지지하는 증거들을 거의 고려하지 않는다. 다시 말하자면, 다른쪽은 결코 객관적으로 고려하지 않는데, 이는 진화론이 반드시 옳다는 “과학의 권위”에 그들이 기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시말하지만 자료들은 진화론의 틀안에 맞추어 질 수 있다. 엄격히 검토해볼 때 모순되는 것은 단지 자료들일 뿐인 것이다.
법정에서 이에 대한 예를 발견할수 있다. 피고는 범죄레대해 무죄일수도 유죄일수도 있다. 검사와 변호사 모두 경찰들이 애써 모은 자료를 공유한다. 검사는 이것을 피고가 유죄임을 증명하는데사용하겠지만, 동시에 변호사는 이를 피고가 무죄임을 증명하는데 사용할 것이다.
이예는 같은 증거가 실제로는 한가지 방향으로 가장장 해석될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서로 다른 두가지 방법으로 해석될수 있는지를 잘 보여 준다. 그리고 대개는, 특별히 변호사가 솜씨가 좋고 법을 교묘히 다룰줄 아는 경우에는 더욱, 실제 어느쪽으로 증거가 기우는지를 가늠하는데 시간이 걸린다. 관심을 갖고 있는 보통사람이 창조/진화 논쟁에 대해 이해하고자 할 때에도 같은 상황에 처하게 된다. 판결에 시간이 걸리는 한가지 이유는 대부분의 유물론적 과학자들이 자신의 과학속에 포함시키는 철학적 전제들 때문인데, 이것을 저용하는 것은 실제 과학적 자료들을 조작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the application of which is tantamount to a manipulation of the data.)
창조론자 들은 과학적 자연주의에서 시작하지 않고 유신론적 과학 혹은 창조과학에서 시작하기 때문에 다른 시각을 갖게 된다. 창조론자들이 진화론을 다음과 같은 수다한 학문 (수학적 확률론, 화석학적 증거, 정보이론 및 생물체가 갖고 있는 방대한 정보량, 열역학, 생물속생설(biogenesis)과 모순이 없음(noncontradiction), 생리학/해부학/분류학/발생학/형태학/유전학 및 생화학의 비교연구, 인류학, 지질학, 생물학)의 관점에서 살펴볼 때 누구라도 객관적으로 사안을 검토해 본사람이라면 진화론이 사실이라 거나 혹은 믿을 만한 이론이라고 조차 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왜 창조론자들이 일반인이든 과학자이든지, 누구든지 선입견이 없이 증거들을 검토한다면 그 증거들이 창조론을 지지하는 것을 발견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유이다.
따라서 진화론자이며 생물학자인 에드워드 도슨이 “분기학(分岐學, Cladistics)적 논란에도 불구하고 진화론을 증거하는 아직도 많은 증거가 생물지리학, 비교해부학, 비교발생학, 비교생리학 비교생화학, 고생물학, 유전학, 세포학과같은 광범위한 학문분야에 존재한다”34고 말할 때, 이는 이미 전제되 있는 철학적 가정(과학적 자연주의)에의한 해석의 문제에 대한 사안임을 깨달아야한다. 창조론자들은 똑 같은 분야를 평가할 때 진화론을 부정하거나 창조론적인 관점에의해 자료들을 더욱 잘 설명하게 된다. 예를 들어, 해부학적인 사실 자체를 가지고 논쟁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심지어 같은 진화론자들 가운데서도 그것을 해석함에 있어서는 보통 어려움을 격을뿐 아니라 잠정적인 것에 그친다. 이것에 대한 좋은 예들이 드비어( G. DeBeer)의 저서 “상동기관:그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Homology: An Unsolved Problem)”과 마발리 웨이크(Marvalee H. Wake)의 “하이멘의 척추동물 비교해부학(Hyman’s Comparative Vertebrate Anatomy)”등의 해부학/상동기관 저서에 잘 나타난다. 이들 저서들은 왜 창조론자들이 이분야의 증거가 실제로 창조론을 더욱 지지하고 있다고 주장하는지에 대해 잘 보여주고 있다.
동식물의 지리적 분포를 연구하는 학문인 생물지리학의 예를 한번 살펴보자. 유명한 동물학자인 가렛 넬슨은 버드(W.R. Bird)의 저서 “다시 초대된 종의 기원”의 다음과 같은 서문을 썻다. “이책은 진화론을 비판하는 장점을 갖고 있지만”이라고 한후에, 그러나 이책에는 명백히도 생물지리학의 자료들이 빠져있는데 저자는 이를 반드시 다루었어야만 했다고 주장했다. 넬슨의 관점에 의하면 “수많은 지리학적 분포의 사실들이 존재 하며, 이 자료들은 진화론을 지지하는 가장 강력한 증거로 여겨져왔다”.35
그러나 이것은 결코 사실이 아니다. 하바드 대학에서 고생물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커트 와이스(Kurt P. Wise)박사는 소생물지리학(Microbiogeography)과 대생물지리학(Macrobiogeography)는 반드시 구분 되야 한다고 지적했다. 소생물지리학은 아주 닮은 생물들은 근접한 지역에서 자주발견되는 사실을 포함하는데, 이는 이들이 마치 진화를 통해 그렇게 된것처럼 생각된다는 것이다. 와이스박사는 지적하기를 이는 단지 소진화(microevolution, 혹은 variation)와 집단유전학적 변이(evolution of populations)의 증거일뿐이라고 지적하면서, 이것이 결코 대진화(Macroevolution)나 생물분류의 대표그릅들의 기원을 설명할수 없음을 지적한다. 대생물지리학에 관해서는 “대진화를 지지하는 대생물지리학적 증거는 거의 없으며, 있다 해도 개연적인 것들일 뿐이다. 가장 잘 알려진 예는 호주의 유대류들인데, 이것 조차 그렇게 설득력이 있는것도 아니다.36″라고 논평했다.
생물지리학의 문제는 제쳐놓더라도 우리는 버드박사에의해 제시된 수많은 진화론을 부정하는 증거들이 넬슨박사에게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에 흥미를 느낀다. 그러나 사실은 이것이 바로 핵심인 것이다. 넬슨박사가 버드의 저서에 대해 말했듯이 “이 주장들은 결코 나의 진화론을 믿는 동료들을 설득 시키지 못할 것이다…”37
오늘날 과학적 자연주의에 헌신된 과학자들은 증거가 아무리 설득력 있더라도 결코 창조과학자들의 주장에 설득되지 않을 것이다. 이는 그들이 철학적 전제가 원천적으로 다른 길을 가로막기 때문이다.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 버클리분교의 법학교수인 필립 죤슨은 너무도 중요한 저서 “균형잡힌 이성: 과학, 법, 그리고 교육에 있어서 자연주의에 대한 반대 판례”를 썼다. 이책에서 그는 현대 진화론의 믿음뒤에 있는 철학적 가정들을 논하면서 진화론자들이 창조론에 대해 어째서 그렇게 거부감을 나타내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어떤 것이 합당하고 이성적인 것인지는 진리를 탐구해서 알아지는 것이 아니라 어떤 것이 합리적인지에 대한 선험적 개념들에 의해 규정되는 것이다. 오늘날 통용되는 과학에 대한 정의는 물질만이 모든 존재의 궁극적인 원인이라는 개념을 내포한다. 따라서 존재에 대한 어떠한 초자연적인 혹은 비물질적인 설명도 결코 용납되지 않으며 터무니 없는 것으로 취급된다. 본질적으로, 다윈이 그의 저서 “종의 기원”을 통해 성취하려고 했던 것은 과학의 영역에서 신을 축출하려는 것이었고, 이는 실제로 이루어 졌다. 종교적인 설명들은 신뢰받지 못하는데, 이는 그것이 신뢰할수 없는 선입견에 의해 좌우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종교적인 설명은 비과학적인데, 이는 종교적인 설명은 과학적일수 없기 때문이다.38
되풀이 되지만 “표준(The Criterion)” 이라는 책의 저자이며 유명한 진화론자인 제리 버그만의 창조론자에 대한 변명할수 없는 편견을 드러내는 다음 진술을 고려해보자:
이 평론가들은 설계된 세계관(a designed worldview)을 지지하는 자들을 공격하기위해 씌어진 반-창조론에관한 수십권의 책들을 읽었다. 대부분의 저서들은 지성에의한 설계논증(the intelligent design view)에 대한 이해가 전혀없는 자들에 의해 씌여졌다. 대부분은 부정확한 진술들을 반복하다가 부정확하며 기초가 없는 결론에 이르게 되는데 이는 자주 반복되다가 결국 수용되고 만다. 넘버스나 토우미 같이 창조론자들에 관해 심도있고 광 범위한 연구를 수행한 사람들은 진화론적 자연주의의 근간을 이루는 잘못 된 결론들을 효과적으로 반박하거나 적어도 비판하였다.”39
제리 버그만이 감수한 책은 크리스토퍼 토우미(Christopher P. Toumey)가 쓴 “하나님의 과학자들: 세속안의 창조론자들 (God’s Own Creationists: Creationists in a Secular World)”로서 1994년에 럿거스대학(Rutgers University)출판부에서 출판되었다. 토우미는 자연주의적 진화론자들의 창조론과 창조과학자들에 대한 일반적인 이해가 매우 자주 심히 부정확함을 보여주고 있다. 그실 실제로 다음과 같이 결론짖고 있다: “과학적 창조론은 진화론에 대한 일반인들의 신뢰를 뒤 앞었으며, 보수적 기독교인들에게 과학이야말로 성경의 가장좋은 친구라는 것을 믿을 이유를 제공했다. … 현대적 창조론은 더 이상 과학적 무지나 성경에 대한 노예와 같은 맹종으로 치부될수 없다. 사실은 창조론이야 말로 풍부하고 복잡한 지식과 가치와 믿음의 체계인 것이다… 미국 창조과학 연구소인 ICR(Institute for Creation Research)의 과학자들은 다른 모든 과학자들이 하는 것 이상으로 엄격한 과학활동을 하고있다.”40
따라서 우리는 이 창조/진화 논쟁이 사실은 과학적 자료에대한 해석의 문제임을 보게 된다. 창조론자들도 진화론자들이 하듯이 자신의 과학적인 자료들을 해석할 정당한 근거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오직 창조론만이 정당한 과학적시야를 제공한다는 사실만이 왜 임없이, 비록 소수지만, 과학자들이 진화론을 거부하고 창조론을 수용하게 되는지를 설명할수 잇다. 사실 우리는 확신하기를 만일 충분히 설명 할 수만 있다면, 미국의 모든 법정의 배심원들이 창조론이 과학적일뿐 아니라 진화론에 대한 동등한 대안이며, 실은 더 나은 과학적 대안임을 인정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만일 창조론진영에서 창조론자는 아니지만 진화론에는 반대하는 전문가를 포함하는 최고의 법률, 철학, 과학의 전문변호사들이 소송에 참가한다면, 그 소송에서 창조론진영이 승리할 것임을 우리는 확신한다.
신학적 차원
마지막으로, 어떤 의미에서는, 과학적 자료를 해석하는데 있어서 신학적인 차원의 개입이 존재한다. 적어도, 기독교인이라면, 로마서 1장에 나오는 창조/진화에 관한 언급을 알고 있어야만 할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진리를 분명하게 보여주심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그들이 진리를 핍박하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신다고 분명히 하고 있다: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 이는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롬 1:18-21).
하나님이 가르치시면 실패할 염려가 없다. 오직 고의적으로 증거들을 무시할 때 많이 믿지 않는 불신앙을 가져오는 것이다. 거듭나지 않은 사람들의 마음과 생각에 대해 성경이 증거하는 것과 같이 세속과학자들은 일반적으로 분명히 보이는 것을 부정하고, 심지어는 창조의 사실에 대해 적대적이기 까지 한 선택을 하는 것이다. 로마서 1장에 따르면 창조의 사실은 “희미하거나 감추어진 것이 아니라 분명히 보이는 만들어진 것들을 통해 이해되는”진리인 것이다. 그들이 의지적으로 하나님의 존재하심과 그의 창조에 관한 진리를 왜곡 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불신자들이 변명할 수 없다고 하신 것이다. 다시 말해서 과학자를 포함하는 모든 사람들이 자연에 나타난 하나님 존재를 부정하려 할 것이며, 혹은 고의적으로 그것을 훼손할 것 인데, 이는 자연계의 상태에 따른 것이 아니라 오직 그들의 마음의 상태에 따른 것이다. 사도 베드로는 또 다른 영적 사실인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서도 “그들이 고의적으로 잊으려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벧후 3:5).
본질적으로는, 유물론적 과학자들은 자연을 하나님 없이 혹은 멀리 존재하는 것으로 해석 하는 고의적인 개념체제를 고안했는데, 이것이 바로 다윈이 했던 일인 것이다. (닐 길레스피의 중요한 저서인 다윈과 창조의 문제(Charles Darwin and the Problem of Creation)를 보라.) 그들은 모든 사물을 이 왜곡되고 결함투성이인 자유주의 개념체제를 통해서 해석되는 것이다.42
따라서 과학적 증거 자체만큼 중요한 것은 인간의 마음속에 있는 신학적인 편견으로서 이것이 증거들을 객관적으로 검토하는 것을 차단하는 것이다. 제리 버그만 박사가 유물론적 경향이 심한 과학과 창조론에 관한 사전(Dictionary og Science and Creationism)을 감수하고서는 다음과 같이 평했다: “이 책을 감수하면서, 창조론에 반대하는 책을 쓴 사람들에 대한 나의 가정에 일치함을 곧 발견했는데, 이는 그들이 개인적으로 기독교에 대해 뿌리깊은 악감정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43 누구라도 이런 사람들이 진화의 개념을 하나님을 거역하고 성경의 권위를 부인하며, 기독교 신앙을 반대하면서, 다른 모든 종류의 철학, 도덕, 사회 그리고 정치적 해악들을 지지하는데 사용했는지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그 것이 함축하는 바를 쉽게 이해할 것 이다.
이 모든 것들이 관련된 신학적 논점인 영적 기만의 문제로 귀결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