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전체

Categories

위험한 도박

<번역문서>

1. 위험한 도박 (2001/7/9)

1. 위험한 도박  

왜 창조/진화 문제가 그토록 중요한가?

 

진화의 과정을 믿어라. 모든 것이 잘될 것이다. – 티모시 레리, The Politics of Ecstasy

나쁜 생각?  

       누군가가 현명하게도 다윈은 운좋게도 딴속셈이 있는 모든 사람들을 만족시켰다고 말한적이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책에서 모든사람들을 즐겁게 하려고 하는 대신 다윈의 이론을 객관적으로 비판하여 과학과 사회에 끼친 결과를 보이고자한다. 우리들의 중심 주제는 “진화”의 이론은 과학적으로 오류이며, 따라서 이로부터 유래하는 모든 결론들도 오류라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또한 현재에도, 진화이론의 일반적인 수용은 종교, 도덕, 인생의 목적에 깨닫지 못할 만큼 커다란 영향을 미쳤으며, 어느정도는 전제적인 정부의 출현에 영향을 미쳤고, 사회를 지탱하는 권위에 대한 존중을 무너트렸다고 볼수 있다.  
 물론 한이론의 참과 오류는 그것의 결과들만으로 판단될 수는 없지만, 그이론이 그결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는 것이다. 만일 나쁜 사상이 나쁜 결과들을 낳고, 진화론이 나쁜 사상이라면, 그것이 일부의 사람들을 분노케 할지라도, 그것은 밝히 알려 져야한다. 우리의 매일매일에 영향을 미치는 이런 사상들은 특별히 우리가 자주 그효과들에 대해 잘 느끼지 못하며 살 때, 더욱 조심스럽게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진화이론에 대해서는 이러한 평가 작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는데, 그 부분적인 이유는 이 이론이 너무나도 광범위하게 받아 들여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부눈적인 이유는 비평이 더욱더 필요하다는 것을 증명할 뿐이다.  

       과학적 평가는 물론 극히 중요한 문제이며, 이책의 중심주제를 이룰 것이다. 진화가 과학적 사실인가 아닌가를 결정하는 것은 물론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과학적으로 아무리 증명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사태의 한쪽 국면 만을 다루는 것이다. 따라서, 진화이론이 역사와 사람들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쳣는지 간단히 알아 보는 것도 중요한데, 이는 그것이 사태의 전체를 보여 주기 때문이다. 의도 했던 아니던, 진화이론이 가져온 사회적 해악들을 파해치는 것은 미래의 악한 이론에 대비하는 것이 될 것이다.  

어떤이론들은 너무나도 악해서 그것이 가져올수 있는 결과만으로도 폐기되어야 한다고 주장될수 있다. 앞으로 보게 되겠지만 진화이론이 바로 그런 악한이론의 하나이다.  

인생의 의미와 마주침

       다윈 이론의 결과들이 전체적이든 부분적으로나 삶과 죽음의 문제에 대해 관련이 있다는 것은 명백한 일이다. 진화론은 우리의 삶과 죽음에대한 이해와 조망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데, 이는 진화론의 철학적인 전망에따른 논리적인 귀결이라고 할수 있다.  
우리모두는 경험적으로 삶은 좋은 것이나 또한 연약한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세상을 울렸던 다이애나 황태자비의 비극은 ㅇ현재이곳에 있던 인생이 다음순간 사라져 버릴수 있음을 잘 보여 주고 있다. 다른 예를 든다면, 520명을 태우고 가던 JAL #123 보잉 727기의 비극을 생각해 보자. 이모든 생명이 사라 지는데 단지 9분이 걸렸을 뿐이다. 그 점보기의 520명은 모두 사망했는데, 이들은 모두 당연히 살아 다음날을 맞을 것으로 생각 되었지만 이중 어느 누구도 다음날 새벽여명의 경이 로움을 느끼지 못하였다.  

       우리중 많은이들은 이 인생의 심오함을 어떤 비극을 만나기 전에는 잘 깨닫지 못한다. 그리고 바로 이곳에서 이 창조냐 진화냐의 논쟁이 개인적으로 큰 의미를 갖게된다. 종국에는 이 기원에 대한 논의는 과학이나 신학의 이론을 크게 넘어 서게 된다. 참으로, 우리의 기원에 대한이해는 우리의 사회가 효과적이며 윤리적으로 기능하는데 심대한 영향을 미칠수 있다.

       이 첫 번째 장에서, 우리는 진화론이 우리들 개인과 근세 역사에 미친 영향들을 보려고 한다. 이 첫장의 정보들은 이후의 장들을 읽을 독자들에게 놀랍고도 유용한 역할을 하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우리 개인에게 진화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로 시작할까한다.    

진화의 친족?

대부분의 사람들이 진화론이 자신들의 개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았을 지라도, 그들은 개인으로서의 뚜렸한 개성과 인격을 갖고 있다. 진화론이나 유물론적인 세계관에 의하면, 불행히도, 인간은 그 자신이 임의로 부여한 의미외에 특별하고 독특한 진실되고 적절한 의미를 갖지 못한다. 작고한 진화론의 대가인 조지 심슨(George Gaylord Simpson) 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
       고 있다:  

       다윈의 세계에서는 인간에게 다만 동물의 특별한 한 종 이라는 것 이외에    아무런 다른 특별한 지위는 없다. 그는 온전한 의미에서 자연의 일부이지 자연밖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는 , 비유가 아니라 문자 그대로, 모든 살아있는 것들의, 그것이 아메바든, 촌충이든, 해초이든, 참나무이든, 아니면 원숭이든 간에  그들의 혈족인 것이다. 42 촌에 해당하는 촌충과 형제와도 같은 원숭이에대한 관계의 정도와 공감하는 정도가 다를 지라도 모두 혈족인 것이다….1  

심슨의 인간이 촌충에 확실히 관련되어 있다는 언급은 적절하다고 볼수 있다. 다윈 자신도 자신이 촌충과 비슷한 어떤 벌레의 후손이라고 믿었다. 아얄라 와 발렌틴은 그들의 책 “Evolving”에서, “확실히 나비와 인간은 먼였날 촌충충을 닮은 바다벌레의 일종을 공동 조상으로 하여 탄생 하엿을 것이다”라고 단정하고 있다.

       만일 인간이 순전히 우연에 의해 자연의 최대의 혜택을 받아 가장 고등하게 된 것이라면, 어떤 동물들이 어떤 권리들을 갖을 것이며, 또 어떤 권리 혹은 어떤 동물이 가장 중요하여 보존해야 할지 어떻게 알것인가? 진화 이론에 따르면 (더큰 뇌를 갖고 있으므로) 동물들 보다 정량적으로 뛰어나지만, 정성적으로 뛰어난 것(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창조된 것)은 아니라고 한다. 따라서 진화론적으로 말한다면, 우리의 문자적인 형제인 다른 동물들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은 윤리적으로 바르지 못한 일이된다.  

       PETA(People for the Ethical Treatment of Animals) 의 회장인 잉그리드 뉴커트는 “쥐는 돼지이며, 돼지는 개이며, 개는 소년이다” 라고 주장했다. 이 주장의 논리에 따르면 모든 고등 생물은 동등하게 취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안락사 교회의 대표자는 동물들의 권리는 인간들의 권리보다 우월하다고 믿고 있다. 심각하게도, 그녀는 전국의 시청자들에게 “만약 당신이 어떤 종을 멸종시키고 싶다면, 인류를 먼저 멸종시켜라. 왜냐하면 인류는  총자연계에서 적은 역할을 지닌 소수의 종이기 때문이다.” 라고 말했다. 다른 동물 보호 단체는 “고기를 먹는 것은 살인이다.” 혹은 “인류는 폭군과 같은 종이다. 그리고 소나 닭을 죽이는 것은 나찌에 의한 유대인 대학살과 같다.” 라고 주장한다.  

       만일 진화론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이런 결론들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즉 우리는 모두 그저 동물일 뿐이며, 동물 권리 단체의 주장이 타당한 듯 보인다. 우리는 다른 동물의 권리를 침해할 권리가 전혀 없다. 자연계의 모든 동물들은 동등한 가치를 지니며 권리도 동등하여 “쥐는 결국 소년이다”라는 점에 이르게된다. 인간 화석 전문가인 마빈 루비누는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논쟁을 요약했다.

       동물의 권리와 인간의 권리를 동일시 하는 주장이 진화론에 기인한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은 쉽지 않지만, 모든 공개적으로 동물의 권리를  주장한 자들이 진화론자들이라는 것은 단순한 우연은 결코 아니다. 진화론에 따르면 인간이 큰 뇌를 가진 것은 단순히 “운좋은 뽑기”에 불과하며,  우리의 조상에게가 아나라 원숭이의 조상에게 돌연변이들이 일어났더라면 우리가 원숭이이고 그들이 우리가 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인간에게는 우연에 의해 성취된 우월성을 가지고  인간과 같은 정도의  능력을 진화시키지 못한 (자신들의 잘못이 아님) 다른 동물의 권리를침해할 윤리적 근거가 없다.  
동물권익 단체들은 진화론 철학의 논리적 결과를 우리들에게 보여 준다. * 그러나 우리가 앞으로 보겠지만 다른 결론들도 있다. 최근의 과학문헌들은 진화론의 원리에 따른 인간의 동물적 지위에 근거하여, 간음, 동성애, 무분별한 유전공학, 야만적인 “태아”연구에 이르는 다양한 것들을 정당화 하고 있다.  

우연과 존엄    

       만일 인간이 단지 동물이거나, 자연계의 우발적 사건이거나, 우연한 돌연변이의 모음에 불과 하다면, 어디에서 궁극적인 의미와 존엄과 절대가치를 구하겠는가?  

       자연주의 진화론에 따르면 기본적 3요소(물질, 시간, 우연)가 전 우주와 그안의 모든 살아있는 것들을 창조하였다고 한다. 노벨상 수상자인 자끄 모노는  그의 저서 “우연과 필연”에서 많은 사람들의 감정을 대변 한다: “인간은 이 무한한 우주안에서 홀로이다. 그는 우연히 생겨 났다8″ 그리고 “우연 만이 모든 개량과 생명계의 모든 창조의 원천이다. 순전한 우연, 절대자유 그러나 맹목적인 우연만이  이 거대한 진화라는 건축물의 기초인 것이다.” 9

       저명한 진화론자인 버로우는 다윈의 “종의 기원” 서문에 다음과 같이 썼다:

       다윈에 따르면, 자연은 맹목적 우연과 맹목적 투쟁의 산물이고,  자신의 생존을 위해 야수들과 투쟁하는 외롭운 지성적 돌연변이이다. 일부의 사람에게는 이것은 돌이킬수 없는 상실로서 마치 탯줄이 잘리고, 그자신이   아무런 열정도 없는 차가운 우주의 일부분임을 깨닫는 것과도 같다. 그리스 철학자들이나 계몽주의자들, 혹은 이성적 기독교 전통에서 생각한  자연과는 달리, 다윈의 자연은 인간 행위에 아무런 단서도, 인간의 도덕적인 딜레마에 아무런 해답도 제공하지 않는다.10  
       인간을 “외로운 지성적 돌연변이”로, 모든 생명체를 우연의 산물로 보는 이 우울한 인간관은 우주를 맹목적인 힘의 산물이 아닌 자신의 형상에 따라 인간을 지으신 무한하며 인격적인 하나님의 의도적인 피조물이며, 인간에게 동물을 초월하는 존엄성과 가치를 부여하는 유대 및 기독교 전통에 크게 대조된다. 11    

       불행히도 현대 진화론에 의해 주어진 인간상은 우주적 고립의 하나이다: 하나님의 우리를 위해 존재하지 않을 뿐 아니라, 그는 한번도 존재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앞으로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종교란 이런 점에 의해 갈등하는 사람들을 위한 아편이다. 인간은 광할한 그러나 끔찍히도 몰인격적인 우주안에 홀로 살고 있다.   우리에게 경외심을 자아내는 그러나 낯선 이우주는 믿음과 인생의 목적, 사랑과 박애와 같은 우리가 가장 깊은 의미를 부여하는 것들에게 최종적인 타당한 근거를 제공해주지는  못한다.  

       코넬대학의 윌리암 프로빈스가 주장한대로 ” 그러나, 현대 과학이 내포하는 것은 대부분의 종교적 전통과는 명백히 모순되는 것이다… 어떠한 근원적인 도덕이나 윤리도 존재하지 않으며, 인간사회를 견지해 주는 어떤 절대 원리도 없는 것이다. 우주는 우리를 돌보지 않으며, 우리 인생에 어떠한 궁극적인 의미도 없는 것이다.12 따라서, 모노가 결론 짓듯이 선이든 악이든, 우리의 가치관은 우리의 선택에 달린 것이다. 13 그리고 세계 도처에서 이미 실제로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복지는 고려치 않고 가치관을 선택하여 많은 경우 심각한 결과를 초래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도 크고 불확실한 우주에서 수백만의 사람들이 그들의 존재의 의미에 대해 숙고하는 것이 놀라운 일은 아니다. 모든 것이 완료되고 언급된 후라면, 인생의 진정한 목적은 발견될까?  레슬리 폴이 말했듯이, “정확히 언제일지는 몰라도, 천문학적인 시계로는 이미 임박한, 이 외로운 행성의 마지막은  차갑고, 모든 생물은 멸절되고, 모든 생각이 그치고,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 처럼 될 것 이다.  솔 직히 말하자면, 이것이 진화가 도달하려고 하는 여행의 종착역으로서, 맹렬한 삶과 죽음의 자비로운 종국 인 것이다… 모든 생명은 어두움속에서 그어대는 성냥불의 명멸에 다름이 아니다. 궁극적인 결과는 생명으로부터 의미를 완전히 박탈 하는 것이다.”14

       X-선 결정학(Crystallography) 교수인 J.D. 버날은 다음과 같은 진화론적 생명의 정의를 내렸다: ” 생명은 부분적이고, 연속적이며, 점진적이고, 다양하며, 끈임없이 상호작용하는 원ㅈ내의 전자들이 갖는 상태들의 가능성들의 자기실현 이다.”15  우리가 진짜  촌충의 형제일 뿐이며, 전자상태들의 가능성일 뿐이라면, 그것이 함축하는 바는 결코 하찮은 것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며, 어떤 삶을 살고, 또 다른 사람들을 어떻게 생각 하는지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논리적으로 생각하면, 유물론적 사상은 우리에게 특별히 매력적인 것은 아니다. 우주적인 시야에서 볼 때, 궁극적인 의미에서, 죽음이후에 남자와 여자는 하루살이와 같은 70여년 보다 길지 않은 영원에서의 한 순간에 잠시 결합한 원자들의 연합에 지나지 않는다.  

대조되는 세계관들  

       서구세계의 현대사상에는 크게 두가지 세계관이 주도 하고 있다. 그 첫째는 이제까지 살펴본 “자연주의 세계관” 으로, “세속적 인본주의” 혹은 “과학적 유물론” 이라고도  불린다. 이미 언급한 대로 인간은 이 비인격적인 우주의 우연한 작동의 최종적 산물인 것이다. 이 고귀한 인간이라는 동물은 용기를 가지고 그자신의 존재의 무의미함을 직시하고 위엄을 지키면서 살고 또 죽어야 한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든 우주적이든, 삶이 끝 났으면, 정말로 끝 인 것이다. 궁극적인 의미를 갖는 것 이란 없다.  

       두 번째 세계관은 유대-기독교 전통에 의해 대표 된다. 여자와 남자는 신의 창조의 결과 이며, 자신을 희생함까지 인간을 사랑하시는 무한하시며 또 인격적인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지음 받았으므로 위엄과 영원한 의미가 부여 된 존재라고 가르치고 있다.  어떤 세계관을 택하든지, 그결과가 중요하자 얺다고 말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우리의 기원에 관한 대답은, 앞으로 보게 되겠지만, 정말 큰 차이를 초래한다. 일례로 다음쪽에 있는 두세계관의 대조표를 숙고해 보라.  

       아마도 이 두세계관의 적용뿐아니라 차이의 폭이 생각있는 사람들을 공개 토론의 장에서 기원론의 의미에 대해 점점더 인정하게 하는 것 같다.  우리의 기원에 대한 관은 우리가 죄나 성교육, 혹은 종교적 자유등과 같은 대중적으로 중요한 사안에 대한 의견을 정할때에 이에 영향을 미칠 뿐아니라 심지어 결정 짖기도 한다. 통계에 따르면 미국인의 대다수는 진화론 뿐 아니라 창조론도 학교에서 가르쳐야 한다고 꾸준히 보여 주고 있다:  

       86% 에서 88% 에 이르는 절대다수의 미국민은 공립학교에서 진화론 뿐 아니라 창조론도 가르쳐야 한다는 주장에 지지하고 있다(AP – NBC News 통계 ): 절대다수의 개신교인과 천주교인(합치면 50%) , 66%의 변호사, 그증 63%는 창조와 진화의 병행 교육이 합헌이라고(American  Bar Association Commission 통계), 오하이오대학의 80%의 학생과  오벌린대학의 56%가,  67%의 공립학교의 위원회 위원들이 (American  School Board Journal 통계), 그리고 42.3 %의 공립학교 생물교사교사들이( Austin Analytical Consulting 통계) 창조이론을지지 하고있다. 1

위험한 도박  

       이런 기원에 대한 창조론적 이해에 대한 개방성은 인생이 의미를 갖고 있다는 것에 대한 직관적인 반영 인지도 모르겠다. 기독교인은 유물론자와 기타 진화론자들이 그들의 미래에 대해 위험한 도박을 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들은 그들의 세계관이 옳다는 전제하에 궁극적인 실체에 대한 믿음을 단언하고 있다: 궁극적 실체는 물질이지 신이 아닌 것이다. 우리를 창조한 신이 없다면 우리를 심판할 신도 없는 것이다.  

       우리는 점차 분명해질 이유들로 인해, 이러한 도박은 현명치 않다고 믿는다. 퉁명스럽게 말해 진화론이 사실일 가능성은 일천억분의 일 보다도 작다. 이렇게 일천억 분의 일 이라는 확률을 보임으로해서, 우리는 세계관을 이런 것에 기초하는이일이 현명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보일수 있다.

       감기약 캡슐로 일 천만개로 가득찬 일 입방 마일의 산을 상상해 보자. 그런데 단한개의 캡슐을 제외한 모든 캡슐이 스트리키니네라는 독이 들어 있다고 하자. 가능성은 이 일천억개의 캡슐중에서 우연히 독이없는 단하나의 캡슐을 집어 드는 것과 같다. 제 정신인 사람이라면 아무리 머리가 아파도 이산에 들어 가 약을 주워 먹지는 않을 것이다. 확률이 반반이라 할지라도 아무도 이런 도박은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진화론 자들은 훨씬더 적은 확률 (일 천억분의 일 11장 과 17장을 보라)에 돈을 걸고 있다. 지금까지 보아왔지만, 이런 도박은 단지 우리의 육체적인 인생만을 걸고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궁극적인 기원의 문제 (자연주의적 진화론이냐 신에 의한 창조냐)와 궁극적인 운명(멸절이냐 아니면 천국과 지옥이냐)에 대한 논의를 하고 있는 것이다.  
       만일 창조론자들과 기원에 관한 성경의 설명이 옳다면, 이논의는 유물론자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더 중대한 의미를 갖게 될 것이다. 진화론자들은 마지막 숨을 쉴때에 이르면, 중간고리 화석에 대한 논쟁보다 더 중요한 문제들이 그들을 압박하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라스베가스에서 돈을 잃는 문제와 한 인간의 영혼을 진화론 이라는 도박에 걸어 잃는 일은 너무나도 비교할수 없는 일인 것이다.  

하나님의 상실과 사회적 조작(Losing God and Social Manipulation)  

       다른곳에서도 언급 했지만, 서구 근세사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누구도 진화론이 인격적 창조주 하나님과 성경에 대한 믿음과, 기독교 전체에 대한 믿음에 끼친 악영향을 부인할수 없을 것이다. 저명한 진화론 비평가이자 캘리포니아 버클리 주립대 법대교수인 필립 존슨은 진화론을 “무신론자와 불가지론자들이 지성의 세계와 정부에서 우월한 지위를 점하는데 진화론이 결정적인 철학적 개념을 제공하였고, 이영역에서 유신론을 거의 완전히 배제하게 하였다.”고 말했다. 17  이런 역사상의 세속주의로의 회귀가 가져오는 영향은 엄청난 것이다. 철학자 윌 듀란트는 “역사의 동인으로 신 대신에 진화를 제시함으로서, 다윈은 기독교세계에서 윤리의 신학적인 기초를 제거해 버린 것이된다.. 신에 대한 경외가 없는 윤리란 매우 부안정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처해있는 현실이다. 나는 인간이 어떤 초월자의 감찰하심과 이에 따른 심판에 대한 두려움 없이도 개인의 존엄성과 사회질서를 유지할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18 철학자 듀란트의 평가가 옳다는 것은 우리주위에서 흔히 발견된다.  

       오늘날 세계도처에서, 상대주의, 무도덕주의, 쾌락주의, 무신론의 형태로 흘러나오는 진화론의 허무주의는 남녀노소에게 파고들어, 우리는 우연한 돌연변이 이며, 진화된 동물이고 인생에 의미나 목적은 없다고 가르치고 있다. 실제로 대부분의 현대의 사회악은 유물론적 진화론에서 나오는 무도덕주의와 허무주의에 기인 한다. “하나님은 없고, 거기 있는 것이 존재하는 모든 것이다.” 라는 진화론의 주장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신 더큰 사회병리를 가져왔다. 19          

유행성 절망  

       우리는 이미 진화란 시간과 비인격적인 물질과 우연의 혼합으로 생명이 나왔다는 기본 전제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을 언급했다. 그것이 우리의 타고난 권리이며 우리의 묘비명인 것이다. 본질적으로, 인간은 광대한 우주를 현기증나는 속도로 회전하는 비극적인 재난이 되었다. 애절한 현대인의 절망은 다음표에서 볼수 있듯이 오늘날 어디서나 발견되며, 그 기원은 쉽게 무신론과 자연주의적 진화론에 기인된다. 20

진화론은 인간의 자각속에서 신에 대한 개념을 제거할 정도가 되었고, 신에게서 소외된 현대인의 공포와 상실감은 진화론의 책임인 것이다.  다시말하자면, 유물론적 전제하에 형성된 철학적 세계관은 수백만 개인의 하루하루의 생활을 반영하는 것이다. 이것은 캠브리지의 지질학자인 세쥐윅과 다아윈의 동료들에의해 인정되었다. 세쥐윅은 다아윈의 종의 기원을 “우리를 창조자로부터 단지 독립적으로 만들기위해 교묘하게 조리되고 나눠지는 계급 유물론의 요리” 라고 비웃었다. 세쥐윅이 올바르게 느꼈듯이 다아윈은 모든 범죄자들에게 그들의 죄악을 합리화하는 길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세취윅은 또한 인류가 진화론을 받아들인다면 너무도 심각한 타격을 받아 야만스럽게 되어 인간은 역사가 기록된 이후로 볼수 없던 정도로 저질의 퇴보를 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22  
수많은 진화론 비판자들이 보기에는 세취윅의 두려움은 이미 현실화 되었다. 다윈의 이론은 광범위하게 받아 들여졌고, 그이후로 인류는 야만적 잔인성으로 인해 유사이래 경험하지 못했던 최악의 상태로 떨어 졌다.  

       최근 75년 동안 인간역사상 가장 지독한 만행들이 저질러 졌는데, 이것은 주로 나찌와 공산당에 의해 저질러 졌다. 알렉산더 쏠제니친은 1917에서 1959년 동안 사회주의는 소련에서만 일억 일천만의 생명을 희생했다고 주장했다.23 중국에서는 3천 만명이 주어 갔다.24 캄보디아와 기타 동남아시아에서도 수 백만의 인명이 죽었다. 약 20억의 남녀가 자유가 말살된 채 막시즘의 이데올로기의 노예가 되었다. 이러한 이데올로기가 오늘날 완전히 사라진것도 아니다. 독일에서는 신나찌주의가, 이탤리에서는 신파시즘이 부흥하고 있으며, 믿기지 않겠지만 이 신파시즘은 뭇솔리니의 친 손녀가 이끌고 있다. 유럽과 러시아에서의 공산주의의 몰락에도 불구 하고, 아직도 10억이넘는 중국인들과 몇몇 민족들을 지배하고 있으며, 유럽과 러사아가 민주주의로 계속해서 전진할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이것들이 진화론과는 어떤관계가 있을까? 앞으로 우리는 진화론이 단지 영향력이 있었을 뿐아니라, 현대인의 절멍과 파괴적인 정치체계들의 기초가 되어 왔다는 것을 보이고자 한다. 궁국적으로 아무 의미가 없는 이 우주에서 개인과 사회의 윤리는 어떻게 될것인가? 왜 더 강하고 더 똑똑한 자들이 그들이 보기에  선하고 가치있어 보이는 일에 힘없고 덜배운 사람들을 조작하여 이용해서는 안된다는 말인가?  

              일부가 주장하듯 인간이 연소장치에 의해 동력을 얻는 복잡한 생화학적 기계로서 입력된 정보를 보존하기 위해 고성능 저장장치를 갖춘 컴퓨터를 유지하는 것일 뿐이라면, 권력과 또 그럴 의사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인간을 조작하지 못할것이 무었인가?25  

       20세기는 이런 예들로 가득차 있다. 우리는 다음의 예들을 인류에게 일어난 끔찍한 일들이 진화론에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다고 주장하기 위해 드는 것은 아니다. 명백하게도, 인간의 악 뿐아니라 사단의 역사등 여러 가지 변수가 작용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우리가 주장하는 것은 진화론이 현대 사회의 악한 일들에게 논리적인 동인과 격려를 제공하였고 이점이 바로 우려할만한 일인 것이다.  

       물론 어느 이론이나 원칙도 오용될수 있다. 어떤 이유든 간에 이론이나 원리는 좀 부주의한 사람들에 의해 잘못 이해 되거나 오용될수 는 있다. 우리가 앞으로 보이려는 것은 진화론의 문제점이 그 이론의 오해나 오용이 아니라 정당한 논리적 결론과 그 이론의 정확한 적용 때문이라는 사실이다.  

진화윤리?

       만일 우리가 20세기의 가장 처참한 두 가지 예로서 나찌즘과 공산주의를 검토해 본다면, 진화론이 함의 하는 것의 사회적 적용이 부분적인 책임이 있다는 것은 논리적인 일일 것이다. 엘리트 정치가 들의 진화론을 실용주의적으로 적용한 결과가 적응하는 자는 살고 부적응자는 죽는 히틀러의 인종차별주의 우생학을, 국가의 복지를 위해라면 개인은 희생될 수 있다는 공산주의를 낳지 않았겠는가?  기독교 가치관은 결코 이런한 결과들을 가져올수 없지만 진화론은 이런 결과들을 초래해 왔다. 우리는 어떻게 알수 있는가?  

     현세의 가장 유명한 진화론자중의 하나 이며 인류학자인 아써 케이쓰 경은 기독교를 강경하게 비난하며 동시대의 누구보다도 많은 시간을 진화윤리의 연구에 바쳤다. 그의 저서 “진화와 윤리”에서 그는 기독교 윤리와 진화론적 윤리는 결코 양립할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에를 들어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진화 법칙에 정면으로 반대되며, 기독교 윤리는 인간의 본성에 결코 조화될수 없으며, 잘 드러나지는 않지만 자연의 진화계획과 윤리에 상극인 것이다. 26  그는 또 고백하기를 “내가 도달한 결론은 그리스도의 법과 진화의법은 서로 양립할수 없으며, 아니 차라리 그 두 법은 서로 교전중에 있다고 해야 할것이다”27  

       케이쓰는 또한 “우리가 진화윤리를 원칙대로 따른다면 논리적인 결론으로서 범우주적인 윤리체계를 얻으려는 희망을 포기해야 하는데 이는 과거와 현재를 통해 자연의 진화가 작용하는 방식은 항상 잔인하고 거칠며 인정사정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이해하고 있다.28  기독교가 사랑과 자비와 이타주의를 주창할 때 이는 진화윤리에는 모순되어 보일지 모른다. 예를 들어 케이쓰는 “산상수훈은 진화사다리에 대한 저주”라며, 기독교는 그 반 진화론적인 성격 때문에 망할것이라고 단언했다. 29  

세계대전

       그러므로 다위니즘이 19세기후반과 20세기에 사회 및 정치에 미친 영향을 검토해볼 때, 케이쓰가 말한대로 아주 불안한 도덕적인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컬롬비아대학의 역사학 교수인 쟉끄 바젼은 “1870년에서 1914년까지의 문헌의 상당부분을 읽어 보지 않은 사람은 누구나 그것이 피를 부르는 긴 호소였다는 것을 알수 없을 것이다.”30 그리고 이 피를 부르는 호소는 그시대의 과학적 진화론의 전문용어에 의해 수행되었고 합리화되었다.  

       20세기 초의 독일의 장성이었던 번하디는 그의 저서 “독일과 다음전쟁 (1911)”에서 군국주의를 찬양하면서 진화론적 관점에서 볼 때 지구상의 약한 인간들을 궤멸시키는 것은 생물학적으로 옳은일이라고 주장했다. “힘이 정의이고” 또 “전쟁은 최우선의 생물학적 숙명이다”31 헨리 모리스 박사는 “다윈, 니이체, 헥켈 등은 극렬한 독일 군국주의의 기초를 놓았고, 이것이 궁극적으로 1914년에서 18년 까지의 제1차 세계대전을 일으킨다고 기술하였다.물론 다수의 독일 장군들과 정치 지도자들을 포함하는 다른 사람들도 가세하는데 이들은 모두 독일판 사회진화론의 주문에 걸려있었다고 볼수 있다. 프레드리히 본 번하디 장군은 “전쟁은 생물학적으로 올바른 결정을 가져오는데 이는 그 결정이 사건의 본성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쟁은 단지 자연의 법칙일 뿐아니라, 도덕적인 의무인 것이고, 따라서, 문명의 불가결한 요소이다.”32  

       케이쓰경 자신도 1947년이전에 세게평화에 미치는 진화론의 전율할 해악에 대해 쓰고 있다:

       1914년에 유럽에서 일어난 대전은 다윈의 진화론에서 그 기원을 찾을수 있는데, 이는 특별히 독일의 경우 더욱 그러하다고 종종 말해진다. 이런 신념의 표현은 아직도 더보게 될 것이다. 1935년에 30개국을 대표하는 심리학자들의 위원회에서 “전쟁은 진화론의 필연적인 결과”이다 라는  선언서를 발표했다.다윈이 발표한 진화의 진화의 법칙은 국가간의 전쟁에 대한 설명을 제시하는 데, 이는 내가 납득할수 있는 유일한 것이다.
       그리고 그는 다음의 예를 제공했다.

       진화론적 방법론과 종족의 윤리가 얼마나 극렬하게 근대의 제국들에 적용되었는지를 보려면, 우리는 다시한번 1942년의 독일을 살펴봐야한다.  히틀러는 진화론만이 국가정책의 진정한 기초를 제공한다고 굳게 믿었다. 히틀러가 자신의 종족을 보전하려고 택한 방법은 조직적인 학살로서 전유럽을 피로 물들게 하였다. 그러한 만행은 어떤 윤리적 기준으로 판단하여도 정당화 될 수 없지만, 독일인들은 이를 합리화 하였다: 학살은   종족의 혹은 진화의 윤리에 의해 정당화 된다. 독일은 과거의 종족으로 복귀하여 전세계를 향해 적나라하게 진화의 방법론을 실제로 보여주었다.      

       따라서, 계속해서 예기했지만, 총통 히틀러는 진화론자인 것이다; 그는 독일의 관습을 진화론에 맞추도록 의식적으로 노력했던 것이다.34  히틀러는 진화론안에서 그 자신의 개인적인 관점의 합리화를 찾았는데, 이는 19세기 말엽의 사회진화론자들이 그랬던것과 같다. ” 진화론이 나찌즘의 기본이라는 것은 처음에서 끝까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럼에도 오늘날 이것을 깨닫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사실은 놀라울 뿐이다.”35  

유명한 과학자였던 고 윌더 스미스는 자신의 저서 “자연과학은 진화론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에서 실존주의 심리학자인 에리히 프롬의 글을 인용한다:

       사회진화론이라는 “종교”는 지난세기의 사상중에서 가장 위험한 요소에 속한다. 그것은 진화론을 도덕적표준으로 확립함으로서 무자비한 국가 및  인종적 이기주의를 전파하는 것을 돕는다. 만일 히틀러가 무언가를 믿었다면 그것은 진화론이며, 그것이 그의 행동을 특히 잔혹한 행위들을  정당화하고 죄를 씻어 준것이다.    

       놀랄일도 아니지만 히틀러는 다윈의 이론에서 전통적인 가치체계를 반박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을 찾았다.37  그리고 히틀러는 진화론을 전통적인 종교에 대한 가장강력한 무기로서 강조하고 선택하였고, 기독교가 진화론교습을 반대한다는 이유로 반복하여 힐난하였다.38    

       명백히 기독교를 증오하던 히틀러는 “나는 기독교가 이제까지 존재한 모든 것중에서 가장 치명적이고 유혹적인 거짓말이라고 여긴다”라고 말했다. 진화론적인 가치관에 따라 그는 저서 Mein Kampf에서, ” 살려고 하는 자는 반드시 투쟁해야한다”; “영원한 투쟁이 생명의 법칙인 이세상에서 투쟁하지 않으려는 자는 존재할 가치가 없는자이다”; “나는 왜 인간이 자연과 같이 잔인해 져서는 않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자연은 잡종을 종아하지 않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순수한]혈통이 아닌 모든 인종은 쓰레기에 불과하다”라고 말했다.40     유태인과 흑인과 집시들을 학살하면서, 히틀러는 자신은 단지 자연도태를 도우며 인간 우생학에 기여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41   실제로 1996년 10월 28일에 잡지 “타임”의 한기사에는 “진화론에 따르면, 자연계의 모든악은 자연의 근본적인 뿌리에 기인하는데, 그것은 창조주가 주입해논 것으로 바로 자여도태라고 하는 것이다. 결국, 자연 도태라는 것은 도덕률로부터 속박받지않는 지속적인 경쟁인 것이다.”라는 주장이 실렸다.  

       로버트 클라크 박사는 “진화론은 공공연하게 히틀러의 나의 투쟁이나 그의 대중연설의 모든 최악의 부분의 근거로서 작용하고있다.”42 라고 말했다. 히틀러의 논리에 따르면, 모든 자연사는 적자생존의 단순한 투쟁이므로 보다고등하고 순수한 인종의 승리를 돕는 어떠한 행위도 정당화된다고 하였다. 히틀러에게 있어서 그의 다른 민족에 대한 잔혹한 학살극은 종족을 정화하려는 그의 노력의 선한 일부가 되는 것이다.”  

       나찌의 노동?(labor front)였던  로버트 레이 박사는 1940년의 전쟁에 대해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전쟁은 평화의 반대가 아니다. 전쟁은 다만 국가와 개인의 중단되지 않은 투쟁의 또다른 표현일 뿐이다. 그것은 이간의 가장 높고 가장 위대한 표현인 것이다.”43  

       히틀러가 진화론이 의미하는 바를 깨달았기 때문에 진화론의 교훈은 독일 국민을 강타하고 그들을 뒤흔들어놓게 된 것이다. 44 생물학안에 의도적으로 진화론이 들어 옴으로 인해 학교교육이 심각한 영향을 받았다. 독일 청년운동이 약자를 돕지 않는다는 독일 국가관에 동의했다고 해서 누가 놀랄 것인가? 열등한 인간들은 국가의 안위와 순수한 인류의 보존 자체를 위해서 희생되야 했다. 그런데도, 진화론이 히틀러에 미쳤던 영향에 대해 전혀 언급조차 않는 히틀러와 나치 제3제국에 대한 수많은 책들을 만날 수 있는데, 이는 책들의 저자들이 반진화론자로 몰리거나, 진화론의 영향을 진정하기를 원치 않기 때문이다.45

       이탤리에서는 파씨스트 독재자 뭇솔리니는 지속적인 평화의 개념을  진화론적 발전의 장애물로 여겨 조롱하였다.  뭇솔리니의 태도는 진화론에 의해 완전히 지배되었다. 공개적인 발언에서    그는 진화론의 표어들을 반복적으로 사용하였고, 진화를 방해하지 못하도록 항구적인 평화를 조롱하였다. 그에게는 영국에 참전하기를 꺼려하는 것은 대영제국이 진화론적으로 볼 때 퇴락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46  래리 아저는 그의 저서 “20세기의 위기: 전체주의의 기초”에서 300 가지 이상의 인용문을 이용해 다음과 같은 핵심적인 주장들을 제시했다: “인간사상에 끼친 진화론의 영향은 결코 과장될수 없다”; 다윈의 진화론은 도덕성 그자체의 기초를 훼파하였다”; “히틀러는 이 극단적 인종차별주의 원리를 액면가 그대로 받아 들였다… 그는 오늘날 우리가 아인쉬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받아들이 듯이 진화론을 수용했다”; 육천 삼백만명의 사람들이 멸절이 자연 법칙인 진화론을 따르기 위해 죽어가야 했을 것이다.”47  

       그러나 진화론의 이러한 소름끼치는 결과들은 단지 20세기의 양대 세계대전에만 국한 되는 것은 아니다. 19세기 말엽에서 벌써 진화론의 비인간적인 영향을 찾아 볼수 있다. 한 예로 초기 다위니즘에의한 테즈메니아 원주민의 멸종사건을 들수 있다. 제리 버그만 박사는 그의 논문 “19세기 진화론과 테즈메니아 원주민의 인종 학살”의 초록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19세기에는 테즈메니아인이 현존인류와 인류의 조상과의 살아있는 연결고리라고 널리 믿어 졌다. 자연주의적 진화론의 전제에 따르면,  테즈메니아 원주민은 인간이하의 존재이고 따라서, 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동물처럼  다루는 것을 부도덕 하거나 잘못된 일로 여기지 않았다. 이러한  경향은 결국 테즈메니아 원주민의 멸종을 가져 왓다. 오늘날에는 그들을 오스트리아 원주민과 가까운 인종으로서, 독특한 문화를 갖은 완전한 인간으로 생각한다. 이 사건은 진화론적 자연주의가 근세에 만들어낸  수많은 비극의 한예에 불과 하다. 48  

맑스와 다윈  

       마지막으로, 진화론은 공산주의 이론을 전파하는데 효과적으로 사용되었다. 칼 맑스는 “자신의 업적이 다윈의 것에 필적하는 것으로” 느꼈고, 비록 다윈이 거절 했지만, 그는 자신의 자본론의 일부를 다윈에게 헌정 하였던 일을 아주 감사하게 여겼다.49  맑스는 엥겔스에게 종의기원에 대해 말하기를 “우리를 위한 자연사의 기초를 담고 있다”고 했다.50 1861년에 그는 또, “다윈의 책은 매우 중요하며, 역사의 계급투쟁의 자연선택의 기초를 제공한다”51고 썼다. 따라서, 버로우 가 말했듯이”맑스와 엥겔스도 계급투쟁의 생물학적 반영으로 다위니즘을 채택한 것이다.”52  

       실제로 맑스와 엥겔스는 아주 분명히 그들의 공산주의 철학을 진화론의 기초위에 쌓았다. … 그들은 교조적인 진화론자들 이었고, 그 이후로 모든  공산주의자들이 또한 진화론자들이 었다. 무신론이 공산주의 기본적인 교의이고, 특히 소련은 더욱 그러하므로 진화론이 공산주의의 제 1 신조임은 명백한 일이다. 레닌과 트로츠키, 그리고 스탈린은 모두 무신론적 진화론자들이고, 또한 현재의 모든 공산당 지도자들도 또한 그러   하다. 사실, 그들이 공산당 지도자가 되려면 그럴수 밖에 없다. …현대 공산주의의 지속적인 무신론적 진화론에 대한 헌신은 전세계 공산당들의 출판물들을 볼 때 명백한 일이다.53      

       1883년에 맑스의 임종할 때까지도 그의 이론은 그다지 큰 영향은 미치지 못하였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 공산주의 이론은 진화론이 널리 수용되어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할 과학적 근거를 제공하고 인간의 본성과 역사의 전개에 대한 전혀 다른 시각을 제공할때까지는 역사적으로 존립할 곳을 찾지 못하였었다. 따라서, 어떤면에서는 진화론이 공산주의이론의 성장과 적용을 장려하기 위한 관념의 변화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고 볼수 있다. 54  

       윌더 스미스 박사는 ” 공산주의는 그것을 강요하는 대상을 잔인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보면서  정치적,  반종교적 선전들이 맑스의 시대로부터 가장원시적인 진화론과 섞여 있다” 고 말했다.55  히틀러와 마찬가지로 맑스의 철학도 진화론의 잔인성을 반영하고 있다. 그는 “부르조아계급의 무장해제 … 혁명적 공포 … 그리고 혁명적 군대의 창설 … 자유는 순전히 부르조아의 이상이뿐” 과 같은 말들을 언급하였다. 더나가서, 혁명정부는 연민이나 후회를 할 시간도 기회도 없을 것이라며, 그 정부의 과업은 적들을 공포에 질려 동의 하게 만드는 것이다. 반대자들은 처형과 투옥과 강제노동과 언론통제를 통해서 반드시 무장해제 되어야 한다.56  

       분명히 가장 비인간적인 만행중 일부는 진화 철학에 기초를 둔 국가 사회주의자니 맑시스트에의 계속되어 왔다: 오늘날 세상의 대부분의 히틀러나 스탈린을 혐오 한다. 두사람 모두 성경에서 말하는 이웃사랑을 거부하고 수백만을 학살 하였다. 스탈린은 스스로 다윈을 택했고,  히틀러는 적자생존의 개념을 전세계에 주입하려고   했다. 하바드대의 굴드박사는 곤충학자 버논 켈로그의 “최고의 진화상태에   있는 인간은 반드시 이 생존투쟁에서 이겨야한다”는 주장을 인용하기도했다.57    

       1985년 2월 21일과 22일에 CBS 저녁뉴스에 발표된 테러범의 성명서를 보자: “생명에 특별히 신성한 어떤 것은 없으며…”; “증오가 너의 법이며, 보복이 너의 제1의 특권이다.”

       이런 것을 발표한 테러범은 어디에서 이런 생각을 갖게 되엇을까? 에수님으로 부터일까? 그들이 자신들을 논리적으로 공산주의와 함께 진화론을 믿는 유물론자라고 한다면 놀랄 일 일까? 진화론에 따르면, 생명은 우연한 확률에 따라 생성되어 잠시 존재 했다가 영원히 소멸되는 것이므로, , 아무런 신성한 것도 그안에 있을수 없다. 그것에 아무런 궁극적인 의미도 특별한 가치도 없다. 그리고 분명히, 칼 맑스와 다른 공산주의 지도자들의 책들을 읽어 보면 증오와 복수가 법이며 특권인 것을 이해할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지난 백년간 맑스 주의가 한일이며, 이로인해 일억 오천명의 인간이 죽어 갔다.    

       히틀러, 맑스, 그들의 동료들, 그리고 그들의 반인간적인 철학의 진화론적 무신론과의 명백한 관계등의 영향을 고려해 볼 때, 역사 철학자 존 코스터의 논평은 적절하다고 말할수 있다:  히틀러이외의 다른 이름들이 유대인 대학살을 설명하기위하여 거론 되었다. 이상하게도, 찰스 다윈의 이름은 한번도 거론되지 않았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 다윈과 헉슬리의 우주에서의 인간에 대한 이해는 유대인대학살로 가는 길을 예비했다고 볼 수 있다. 히틀러와 스탈린은  인류역사상 종교적인 이유로 인한 모든전쟁에서 죽은 사람보다 훨씬 더      많은 무죄한 사람을 살해했다. 그들은 이들을 그들의 영혼을 구하기 위한    잘못 지도된 의도에 따라서나 혹은 그들의 죄를 징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식량에 대한 경쟁자로서 그리고 진화과정의 방해물이라는 이유로  그들을 학살하였다. 많은 인도주의자들 기독교인, 유대인, 혹은  불가지론자들은 니이체의 사상과 히틀러의 대량학살팀과 시체소각장과의 관계를 이해 한다. 니이체의 사상을 한단계 더 소급해서 다윈에게로 소급해 간 사람은 별로 없다. 과학자 다윈은 니이체의 초인사상과 나찌가    일부의 인간은 인간이하의 동물이라는 추론을 하도록 작용했다. 많은증거들이 있는데, 그중 한예는 나찌의 인종차별주의를 설명할 때 공개적으로 신-다위니즘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자연도태라는 개념이 인간에게 적용되는 것이 유대인학살의 일급 자료인 “완시 협의회”기록에서 드러났다….

               우리는 히틀러의 독일과 스탈린의 소련에서 일어났던일들을  그들이 우리와는 달리 아주나쁜 인간들이어서 생긴 어떤 일관성이 전혀없는 잔혹행위들의 모음쯤으로 생각할수도 있다. 아니면, 헉슬리와 다윈의   “생명은 곧 질병이다라”는 이론을 병상의 우울증에게 과학이란 가면을쓰고 속여서, 학살의 시대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깨달을 수 도있다. 그리고 우리는 여기서 경고의 메시지를 발견할수 있다. 사람들은  다른 인간을 기계로 여기는 일을 중단해야 하며, 그들을 영혼을 갖고 있는   남자와 여자로 바라보아야 한다. …      

               역사는 과학적 무신론이 정신질환의 한형태임을 증명하기위해 또다른 수억의 희생자를 원치 않는다. 58 실용주의적인 윤리관을 갖는 자연의 진화론적인 방법론들을 반영하는 무도덕주의 이론이 인간의 역사에 그런 악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에 놀랄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다음장에서 다룰 진화론이 현대세계에 미친 광범위한 영향들을 살펴 보면, 왜 현대의 많은 사람들이 갈수록 더 걱정하고 있는지 알수 있을 것이다.              

               사상은 결실을 맺는 법이다.

Leave a Reply

 

 

 

You can use these HTML tags

<a href="" title=""> <abbr title=""> <acronym title=""> <b> <blockquote cite=""> <cite> <code> <del datetime=""> <em> <i> <q cite=""> <strike> <str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