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류는 진화되지 않았다 (김루웅 2002/1/24)
<창조> 제 117호 (1999년 11-12월호)에 게재되었던 글입니다.
“날개 있는 모든 새들을 그 종류대로 창조하시니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창 1:21)”
생물학적인 관점에서 볼 때 진화론의 꽃은 대진화(Macroevolution)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진화론의 가장 큰 허구가 또한 대진화이다. 대진화는 연구실에서 결코 실험해 볼 수 없는 grand scale의 시간을 필요로 하는 것으로, 확실한 증거에 의거하는 과학적 이론이라기 보다는 다윈이즘에 따른 순환 논리적 결론일 뿐이다. 이 글에서는 대진화의 대표적인 예로 꼽히는 조류 진화론(Avian Evolution)에 대해 그 허구를 최근의 학술지에 실린논문들을 통해 파헤쳐 보고자 한다.
진화론의 주장
현대 진화론은 조류의 직계 조상을 Velociraptor라는 공룡으로 생각하는데 이 공룡은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쥬라기공원(Jurassic Park)을 본 독자라면 이미 친근한 공룡이다. 영화에서 이 공룡은 음흉한 눈초리와 날카로운 세손가락을 가진 짧은 팔로 주인공을 위협하는 악당으로 우리의 기억에 남는다. 그런데 새들의 조상으로 주장되는 시조새(Archaeopterix)의 화석이 처음 발견되었을 때 바로 이 Velociraptor로 잘못 분류되었던 사실을 아는 분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림 1 과 같이 두 동물의 골격 구조는 유사하다. 과연 이 Raptor와 시조새는 대진화의 연결 고리인가?
그림 1. 시조새(위)와 Raptor(아래) 의 골격 구조 비교. (S.Swartz 참조)
조류의 특징
조류를 파충류인 공룡으로부터 구분할 수 있는 특징을 들라면 뼈의 기강(氣腔)구조(Pnematization of bones), 공기 주머니에 의한 호흡 (Air Sac Driven unilateral air flow), 척추에서 멀리 떨어진 직장(post colon) , 그리고 세손가락으로 이루어진 날개구조등을 들 수 있다. 깃털의 존재는 조류에 국한된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최근의 연구 결과는 보다 광범위한 깃털의 이용이 과거에 존재했었음을 보여 준다. 최근 중국의 리아오닝(Liaoning)지방에서 Qiang Ji 등이 발견한 두종류의 공룡(Protoarchaeopteryx와 Caudipteryx)의 화석은 공룡의 일부도 깃털을 갖고 있었음 을 보여준다. 물론 이 화석들은 진화론자들에 의해 대진화의 증거로 인용되지만 이는 과학적인 추론의 결과가 아닌 진화론적인 신념의 도약일 뿐이다.
공기 주머니에 의한 조류의 호흡 계는 매우흥미있는 주제이다. 다른 모든 동물들과는 비교가 안될 만큼 조류는 호흡의 효율이 높은데 이는 다른 동물들은 숨을 내쉬는 것과 들이쉬는 것이 섞이는 양방향(bidirectional) 호흡을 하는데 반해 조류만은 parabronchi를 이용한 일 방향의(unidirectional) 호흡을 하기 때문이다(Denton 참조). 이런 공기 주머니 호흡 때문에 새는 비행 시에 필요한 고효율의 호흡이 가능한 것이고 이것이 없다면 새들은 날개가 있다 해도 5분도 안되어 모두 뇌사하고 말 것이다. 사실 모든 종류의 새가 단일한 구조적 특성을 갖는 다는 사실 자체가 진화론을 부정하는 증거가 된다. 왜냐하면, 진화론적으로 생각한다면, raptor는 먼저 날기 위한 비교적 원시적인 구조를 갖는 형태로 진화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박쥐의 경우와 같이 분명 새와 같이 날수 있지만, 모든 조류가 갖고 있는 일 방향 공기 주머니는 갖지 않는 중간 단계의 새가 있어야 하고 그중 일부는 ,펭귄이 좋은 예인데, 날 필요가 없으므로 계속 박쥐같은 구조로 남아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하자면 새들 중의 일부는 박쥐와 같은 양방향 호흡기관을 갖 고 있어야만 한다는 것이 진화론적인 논리의 필연적 귀결이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날지 못하는 새인 펭귄마저도 이런 공기 주머니 호흡을 한다는 사실이다. 반면 아무리 새와 비슷하다고 생각되는 파충류라도 이런 구조가 없다는 사실을 이제 살펴보고자 한다. 종류대로 창조하신 하나님의 창조의 특징을 다시 한번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과학이 부정하는 조류 진화
깃털을 제외한 4가지 특징은 현존하는 모든 조류와 아마도 시조새에 이르기까지 확실히 공유되는 특징일 것이다. 먼저 시조새의 경우 이는 확실히 새라고 분류하기에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이미 많은 창조론 지면들을 통해 시조새가 파충류가 아닌 온전한 새라는 주장이 제기되어 있으므로 이를 여기에서 반복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다만 이 시조새의 골 구조에 대한 Britt 등의 논문 한편을 소개 하고자 한다. 원래 조류의 뼈는 가볍고 튼튼하여 마치 철교의 구조를 연상시킨다. 이는 두말할 필요 없이 잘 날기 위함이다. 그런데 앞에서 언급한 이 공기 주머니는 비행 중에는 전체 체적의 20% 까지 차지하는 아주 고도로 발달된 기관으로서 이중의 일부는 뼈 속을 관통하여 발달해 있다. 이것을 조류 골격의 기강 구조(pnematization)라고 한다. 초기 화석 연구에 따르면 시조새의 골 구조는 조류의 골 구조보다는 파충류에 가깝다고 주장되었으나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조류 특유의 기강(氣腔)구조가 발견되었다. 이 연구는 다시 한번 시조새가 결코 대진화의 중간 고리가 아니며 온전한 새라는 주장을 뒷받침한다.
화석은 경골 구조만을 포함하는 것이 일반적인 원칙이나 아주 예외적으로 soft tissue 가 보존되는 경우가 있다. 최근 Ruben등이 이태리에서 발견한 raptor의 일종인 theropod가 놀랍게도 이러한 내장 기관까지 보존된 채로 화석화되어 있었는데, 아 마도 혐기상태에서 미이라가 된 후에 화석화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화석이 특히 관심을 끈 이유는 이 raptor가 조류로 진화하는 중간 고리라는 가설 때문이었다. 만일 이 공룡이 조류에 가까운 내부 구조를 갖고 있다면 진화론을 지지하는 증거로 인용될 것이었다. 자외선을 이용한 분석 결과 이 암반 속에 갇힌 raptor의 내부 구조는 다음의 중요한 두 가지 사실을 드러냈다. 첫째는 raptor 는 조류의 특징인 air sac이 아닌 횡경막(diaphragm)에 의해 호흡하는 전형적인 파충류의 호흡기관을 갖고 있으며, 둘째로는 조류와는 달리 대장(post colon)과 척추가 아주 가까이 붙어 있어서 현존하는 생물중 악어와 가장 유사하다는 결론이 났다.
또 다른 최근의 연구는 오래 묵은 진화 논쟁 하나를 종식 시켰다. 새의 조상으로 주장되는 raptor는 3개의 손가락을 갖고 있는데 조류의 경우에도 날개를 이루는 손가락이 3개 이기 때문에 진화론자들은 이를 진화론에 유리하게 해석해 왔다. 하지만 5개의 손가락중 어느 두 개가 사라 지냐에 따라 raptor 와 조류는 동일한 특징을 혹은 상이한 특징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Raptor의 경우에는 첫째, 둘째, 셋째 손가락이 발달하고 넷째와 다섯째는 발육을 중지한 채로 소위 “I,II,III” 의 구조를 이룬다(IV와 V는 아주 작지만 볼 수 있다.). 지난 150년간 조류의 손가락 구조는 진화론의 파라다임에 따라 I,II,III의 구조로 결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최근 A. C. Burke등은 실제 발생 단계에 있는 여러 종류의 새들의 손가락 뼈의 발생을 진화론의 선입관이 없이 연구한 결과 조류는 첫째와 다섯 번째 손가락이 발생 도중 퇴화되어 “II, III, IV”의 구조를 이룬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150년간 실험 한번 하지 않고 군림해 오던 진화론의 오만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결론
“날개 있는 모든 새들을 그 종류대로 창조하시니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창 1:21)”. 하나님이 주신 이 분명한 말씀이 있는데도 세상은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 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 하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롬 1:21-23)”라는 말씀과 같이 진화론을 믿고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고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 졌을 뿐이다.
다윗은 시편 19편에서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 도다.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라고 노래하였다. 진화론적 세계관을 배제하고 객관적인 연구를 한다면 모든 사람들이 자연에 나타난 하나님의 창조 섭리를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날개 있는 모든 새들을 그 종류대로 창조하시니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으며, 날개 있는 모든 새들이 하나님의 창조 사역을 증거 하니라. 아멘.
참고문헌
Ji,Q. et al., Nature, 1998, 393:753-761
Burke, A.C. et al., Science, 1997, 278:666-668
Ruben, J.A. et al., Science, 1999, 283:514-516
Britt, B.B. et al., Nature, 1998, 395:374-376
Swartz, S. Science, 1998, 281:355-356
Pedian, K. and Chiappe, L.M. Sci. Am. 1998, Feb., 38-47
Denton, M. Evolution:A theory in crisis.
↓ <그림 2. 악어(위)와 조류(아래)의 몸통 횡단면 비교. (pc: Post colon) >
포스트 게놈시대 (정명철 2002/1/29)
얼마 전 저명 과학 잡지인 ‘사이언스’와 ‘네이처’는 인간의 모든 ‘게놈’을 완전 해독하여 보고하였다. 2005년에나 해독 될거라던 예상을 깨고 단시간에 해독된 이유는 한 생명공학 벤처회사의 상업주의에 영합한 속도전 덕분이었다. 이유야 어쩌든 소위 ‘생명의 책’이라고 불리던 게놈의 완전해석은 적지 않은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지금까지 인간(동물)과 아기장대, 쌀(식물), 초파리(곤충), 효모 및 대장균(미생물), 599종의 바이러스 등을 포함한 광범위한 생물체의 유전자가 해독되어 바야흐로 게놈시대가 열렸다. 이러한 게놈의 해석은 단지 과학적 업적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정보상품, 진단시약, 치료제 개발 등 고부가가치의 상품을 생산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많은 경제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관심의 대상이다.
게놈과 그 해독
‘게놈(genome)’이라는 단어는 ‘유전자(gene)의 전체(ome)’라는 뜻의 합성어로 유전물질인 디옥시리보핵산(DNA)을 담고 있는 염색체쌍 전체를 일컫는다. 인간은 23쌍의 염색체를 갖고 있으며 이들 염색체는 30억 개 정도의 DNA 염기서열로 되어있다. DNA 염기는 4종류의 염기로 구성되어 있는데, 아데닌(A), 구아닌(G), 시토신(C) 및 티민(T)이 그것이다. 이 네 개의 염기는 적당한 순서로 되어 있으며 그 순서에 따라 외모, 성격, 유전병 등이 결정된다. 다시 말하면, 게놈은 이 네 개의 알파벳으로 쓰여진 암호문 책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이 암호문 속에는 의미가 있는 암호와 의미가 없는 암호가 있지만 기능이 없어 보이는 암호 속에도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기능이 숨겨져 있어 쓸모 없는 것은 하나도 없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인간의 유전자는 얼마나 정교한 설계도인가를 깨닫게 된다. 예를 들면, 4번 염색체상의 돌연변이로 CAG(글루타민이라는 아미노산을 지정하는 정보)라는 단어가 39번 이상 반복되면 중년에 퇴행성 질병인 헌팅턴병에 걸리게 된다.
게놈의 염기서열을 분석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인간의 경우 두 가지가 사용되었다. 하나는 전체 DNA를 연구하기에 좋은 적당한 길이로 자른 다음, 염색체 지도를 완성하여 적당한 길이의 절편이 어디에 해당하는지를 먼저 확인한다. 그런 다음 해당부분을 하나씩 서열분석 하는 방법으로 미 정부 주도의 휴먼게놈연구소(NHGRI)를 비롯한 국제협력기구가 택한 방법이다. 다른 하나는 인간 전체 게놈을 분석하기 편한대로 무작위로 잘라 분석한 다음(이를 ’shotgun’ 방법이라고 함) 각각의 분석된 서열을 컴퓨터에 입력하여 조각그림 맞추듯이 맞추어 나가는 방법으로 메릴랜드 락빌에 위치한 벤처회사인 ‘셀레라 지노믹스’가 택한 방법이다. 후자의 방법이 더 노동집약적인 작업이지만 슈퍼컴퓨터의 도입과 로봇에 의해 조절되는 DNA 자동분석기의 등장으로 그 기한을 4년이나 앞당기는 개가를 올리게 되었다.
인간게놈분석 결과
’네이처’가 밝힌 인간 게놈 분석 결과, 인간의 유전자의 수는 3만 내지 4만개 정도로 최대 10만개에 달할 것이라던 과학계의 일반적인 견해보다 훨씬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유전자 수는 이미 유전자 지도가 완성된 식물인 애기장대의 유전자 수인 2만 5천개와 큰 차이가 없는 것이며, 선충인 C. 엘레강스 1만 9천개나 초파리의 1만 3천개의 2-3배, 효모의 5배에 불과한 것이다. 비슷한 유전자 수이지만 인간은 벌레보다 훨씬 복잡한 이유는 미스테리라고 화이트헤드 연구소의 에릭 랜더는 말했다. 또한 각 개인의 유전자는 99.99%가 똑같으며, 나머지 0.01%의 차이가 인간 개개인의 차이를 결정 짓는다고 밝혔다. 흥미로운 사실은 유전자의 변이가 여성보다 남성에게서 2배정도 빈번하게 발생한다는 것이다. 남성의 경우 한꺼번에 많은 정자를 생산하기 때문에 DNA를 합성하는 과정에서 실수가 일어날 수 있는 확률이 높은 반면, 여자의 경우 한 달에 하나의 난자를 만들기 때문에 실수가 일어날 확률이 낮을 것이라고 혹자는 설명하기도 한 다. 이로부터 남성의 활발한 유전자 변이가 많은 질병을 유발했다고 평가하면서 여자의 평균 수명이 남자보다 긴 것도 여기서 비롯된다고 추정하는 사람도 있다. 더 흥미로운 사실은 DNA의 1 내지 1.5% 만이 단백질을 생산하는 암호를 가졌을 뿐인데 이것은 과학계가 예상했던 3 ~ 5%보다 낮은 수치이며, 게놈 전체는 후에 기능이 밝혀질지는 모르지만 현재는 ‘정크 DNA’로 가득 차 있다고 한다. 지난번 미 국립보건원(NIH)에서 열린 인간게놈 완성을 기념하는 심포지엄에 참석했을 때 화이트헤드 연구소의 에릭 랜더는 이를 “인간게놈 안에는 유전자가 없다”라며 말로 요약했다. 셀레라의 회장인 크레그 벤터는 인간 게놈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복잡하며, 유전자를 게놈 속에서 찾아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고 고백했다. 과학자들은 3만 정도 밖에 안 되는 유전자라는 문장(sentences)으로 인간의 기능을 충분히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고 믿는다. 다만 인간의 기능을 발휘하는 데 필요한 모든 단백질을 생산할 수 있는 방법은 이들 조각이 여러 조각으로 나뉘어져 재배열되는 방법으로 한 유전자가 10개 이상의 다른 단백질을 생산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인간 게놈의 분석은 유전성질환을 일으키는 기형유전자를 찾아내고 그 치료법을 찾을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뿐만 아니라 각종 중독성 질환의 원인 규명에 획기적인 진전을 기대할 수도 있으며 심리학과 정신병 치료에도 혁신적인 변화를 몰고 오며 인간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유전자를 발견하게 되면 반사회적인 행동을 예방하거나 치료할 수 있는 약품을 개발할 수 있다고 전망한다.
포스트 게놈시대
이제는 포스트 게놈시대이다. 남아있는 과제 중 가장 시급한 것은 유전자의 기능과 역할을 밝히는 것이다. 인간게놈지도가 대기업의 수많은 직원의 이름과 부서를 기록한 전화번호부라면 각 직원이 맡은 업무, 부서간 협조관계, 업무가 잘못됐을 때 책임자 규정 등을 밝히는 것이 앞으로 활발히 연구될 것이라고 AP 통신은 설명한다. 현재는 각 직원의 이름과 얼굴을 맞추는 일이 시급하다. 많은 유전자중 가장 관심을 보이는 분야는 인간게놈 정보를 이용해 유전질병의 원인이 되는 유전자를 규명해 내는 것으로 개인간 DNA 차이를 구별하면 유전자 구조의 변화를 가져오는 유전패턴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러한 작업을 기능 게놈(functional genome) 사업이라고 하는데 한국인의 경우 가장 관심거리인 간암, 위암 등의 원인이 되는 유전자의 발굴을 위해 정부 주도의 연구가 진행 중에 있다. 만약 질병유전자가 밝혀지고 그 유전자의 결함을 밝히기만 하면 ‘유전자 치료’라는 방법을 통해 고장난 유전자를 고칠 수 있게된다. 유전자 치료란 결함이 있는 부위의 유전자를 새로 고쳐 정상 유전자로 만든 다음 이를 세포 내로 전달하는 매개체를 통해 주입하여 고장난 유전자와 치환하는 치료법으로 아직도 남아 있는 문제점이 많다.
포스트 게놈시대에 우리의 생활은 어떻게 바뀌게 될까. 우선은 DNA 칩을 이용한 진정한 예방의학이 가능해질 수 있다. DNA 칩은 수 천 개의 유전자를 손가락 마디 만한 칩에 모아 놓은 것으로 환자의 혈액이나 피부로부터 RNA를 분리해 반응시켜보면 어떤 질병에 걸릴 가능성이 높은지를 알 수 있다. 또한 개개인의 특성에 맞는 맞춤 치료법이 등장할 수도 있다. 지금까지는 어떤 약이든 개인에 따라 10 내지 40% 정도에게서는 효과가 없지만 개인별 유전자의 차이에 맞는 약이나 치료법을 골라 처방하면 치료효과를 극대화 할 수 있다. 이처럼 종족간 또는 개인간 유전자의 차이를 비교 분석하여 특정 종족 또는 개인의 유전질병 치료를 목표로 연구가 한창 진행 중인데, 이를 비교유전체 (comparative genomics) 사업이라고 한다.
그러나 항상 희망 뒤엔 그림자도 있다. 유전자 차별이 그 한 예로 고객의 유전정보를 보험회사가 입수하면 앞으로 질병이 걸릴 확률이 높은 고객은 보험회사가 기피하게 되거나 차별할 수 있다. 사실 지난해 미국경영협회의 조사에 따르면 미국 중대형 기업의 30% 직원들의 유전정보가 입수되고 있고 7%는 그 정보를 고용과 승진의 자료로 이용하고 있다고 한다. 즉, ‘유전자 불량자’는 취업이나 승진, 보험에 드는 것조차 힘들게 된다. 머리 좋은 배우자, 건강하고 좋은 유전자를 가진 아기의 맞춤도 등장할 수 있다. 최근 핵치환 기술에 의한 체세포 복제 기술은 이미 인간 복제의 가능성을 제시하였고 더군다나 좋은 유전자를 가진 우수한 아기를 갖고자 하는 부모의 마음이 영합되면 맞춤아기의 등장이 공상만은 아닌 듯 싶다.
또 한가지 문제점은 특허 경쟁이다. 특별히 질병 관련 유전자가 발견되어 특허를 받게 된다면 그 유전자를 이용해 질병을 진단하거나 치료하게 되면 특허비용을 내야 한다. 특히 DNA의 이중나선구조를 처음 밝힌 왓슨은 유전자에 특허가 매겨 진다는 것은 ‘완전히 미친 짓이다’라고 했는데 유전자 정보와 연구 결과는 공중에게 공개되고 이용되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상업주의에 이용되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바라기는 인간을 포함한 모든 게놈정보가 밝혀짐으로 인해 인간의 건강과 복지를 위해 쓰일 뿐 아니라 하나님의 지혜의 설계를 밝히는 좋은 과학적 도구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한다.
엿새 동안에…(최인식. 창조과학선교회)
마음으로 죄지을 수 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란 후 죄의 삯은 사망이요, 생명은 피에 있나니, 피흘림이 없이는 죄 사함이 없나니, 내대신 죄없으신 분이 피 흘려 자기의 생명을 나의 죄 값으로 희생 함으로 내가 율법의 저주를 피하게 되는 복음을 듣고 너무나 기뻤습니다. 우선 이해가 되고 믿어지는 말씀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나의 구원주로 믿었습니다. 얼마 동안은 옹졸한 자신에 대한 뉘우침과 지금까지 속고 살아온 억울함과 진리를 알게 된 넘치는 감격으로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경건한 마음으로 창세기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첫 장부터 문제에 봉착했습니다. 하나님이 24시간이 하루인 6일만에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모든 것을 창조 하셨다고 합니다. 학교에서 배운 상식과는 거리가 멉니다. 그런 후 얼마되지 않아서 창조과학에 관한 문헌을 접수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의심이 안개 사라지듯이 사라지고 그날부터 오늘까지 한번도 창세기 1장의 하루가 24시간의 하루인 것에 대해 의심 해본적이 없게 되었습니다. 그 때 이것에 관해서 하나님께 남은 생애를 다해 헌신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창세기1장의 하루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내용을 믿지 못하는 분과 늘 나누어 보고싶습니다.
(1) 창조주간의 하루가 진정 24시간의 하루였다면 하나님께서 그 이상 더 분명히 기록할 수가 없습니
다. 저녁과 아침을 얘기한 것은 첫날부터 지구의 자전을 명시한 것입니다.
(2) 창세기 1장외에 저녁과 아침이란 말이 욤(day)과 함께 쓰인 적이 23번, 욤없이 쓰인 적이 38번
도합 61번이나 모두 보통 하루를 의미합니다. 왜 창세기 1장의 내용만 문제가 됩니까?
(3) 저녁과 아침이란 말이 히브리어로 각각 100번 이상 쓰여졌으나 한번도 보통하루의 저녁과 아침을
말하지 않은 때가 없습니다.
(4) 날 앞에 첫째 둘째 셋째라는 숫자적인 형용사를 쓸 때는 반드시 24시간의 하루입니다. 창세기 1
장 외에 410번이나 욤이 숫자와 함께 쓰여졌습니다. 모두 보통 하루를 말합니다. 혹시 그렇지 않은구절이 있어도 문맥을 따르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5) 창세기 1장 외에 밤이란 말이 욤과 53번 쓰여졌으나 모두 보통 하루를 의미합니다.
(6) 욤(day)은 거의 1200번, 야밈(days)은 거의 700번이나 보통의 날로 쓰여졌습니다.
(7) 흠정역에 65번이나 보통의 날 보다는 시간이란 표현으로 쓰여 졌지만 예외 없이 문맥을 따라 읽
으면 충분히 이해를 할 수 가있게 되어있습니다. 보통 하루 이상의 긴 시간을 나타내는 표현들이 얼마든지 있었습니다.
(8) 창세기 1장에 처음으로 하루에 대한 정의가 아침과 저녁, 낮과 밤이란 표현과 더불어 역사적으로 정의가 됩니다. 이처럼 창세기 1장외에서는 욤이 아무런 문제의 대상이 되지않습니다.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3일 있고, 이스라엘민족이 여리고 성을 7일 돌았던 일에 대해서는 아무 질문이 없습니다.
(9) 창세기 1장의 하루가 보통하루가 아니면 오히려 많은 문제가 있습니다. 창세기 1장 14절에 보면 넷째 날에 일월성신이 창조되는 여러 이유 중에 사시와 일자와 연한이 정의되는 말씀이 나옵니다. 여기의 세 단어는 분명히 길이가 다른 시간을 의미하고 그리하여 일자라는 표현이 보통하루라는 것은 더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10) 창조주간 셋째 날 풀과 채소와 열매 맺는 나무를 만드시고 식물의 영양분을 광합성하는데 필요불가결의 태양이 넷째 날 만들어지는데 이때 하루가 보통의 하루가 아니고 수백만년이면 이것들이 살아남을 수가 없게 됨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물론 첫째 날 만드신 빛이 자전하는 지구에 필요한 빛과 열에너지를 공급한다 할지라도 꽃이나 씨 가진 열매 맺는 과목은 곤충이 없이는 안 되는데 곤충은 여섯째 날 만들어졌다는 것을 생각하면 하루가 반드시 보통 하루일 수밖에 없습니다.
(11) 흔히들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이 한가지를 잊지 말라.” 하는 베드로후서 3장 8절의 말씀이 창세기 1장의 하루가 긴 세월이라는 것을 뒤 바침 한다고 주장하는데 이것은 그 다음 9절을 보면 분명히 그렇지 않은 것이 나타납니다.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여기에는 분명히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한 사람들의 회개에 대한 인내와 초조하심을 나타내는 표현이지 하나님이 하루와 천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말은 아닙니다. 사실 하루에 대한 분명한 정의가 첫날 정립되어 있지않으면 이런 표현을 나중에 쓸 수가 없습니다. 흠정역에는 더 분명히 되어 있습니다. “-one day is with the Lord as a thousand years, and a thousand years as one day.” 여기에서 IS 만 있으면 동격이 되는데 AS가 첨가되어 있어서 비교하는 표현으로 쓰인 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12) 출애급기 20장 11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6일 동안 창조하시고 제7일에는 쉬었다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에서 인류문화의 7일주간의 유래가 시작한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여기에서 하나님이 안식한다는 표현을 지금도 계속 안식한다는 주장을 하는데 영어표현을 보면 그렇지 않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RESTING이 아니고 RESTED인 것입니다. 흠정역을 보면 안식일에 관해 말씀하실 때 출애급기 31장 17절에서 “이는 나와 이스라엘 자손 사이에 영원한 표징이며 나 여호와가 엿새 동안에 천지를 창조하고 제 칠일에 쉬어 평안하였음 이니라 하라.”고 말씀하실 때 RESTED AND REFRESHED라고 말씀하신 것은 창세기 2장3절의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 날에 안식하셨음 이더라.”와 같은 말씀이고 일곱째 날 하루만 말씀하신 것이 분명 합니다. 히브리서 4장 1절에서 11절까지의 안식은 죄와 사망이 없는 창조 칠일째의 안식과 동일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미래의 안식입니다. 창조후 얼마되지않아 아담과 이브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는 계속 쉬지 않으셨습니다. 이것은 요한복음 5장 17절에 분명히 말씀 되어 있습니다.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라고 하셨습니다. 아담과 이브의 후손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일하심 없이 중생하고 성결의 삶을 영위 할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창조주간의 하루가 24시간이 아니라고 하는 주장을 자세히 고찰해보면 공통점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철저한 진화론에 바탕을 둔 현대지질학의 지층연대를 수용해야겠다는 고집에서 나온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창세기 1장의 1절과 2절 중간에 긴 시간을 허용하기를 원하는 간격이론(gap theory)의 모든 문제점을 그대로 안고있습니다. 또 이들은 주로 우주기원의 이론으로 대폭발(big bang)을 받아드립니다. 아담의 죄 이전에 이땅에 죽음이 오랜 세월 계속했다는 주장을 합니다. 그러면 둘째 아담인 예수님의 죽음이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됩니다. 또 대다수가 국부적인 홍수를 주장합니다. 그러므로 무수한 화석을 설명하기 위해서 수십억 년의 긴 세월을 요구하는 동일과정설을 지지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들은 유인원이 사람의 조상이라는 현대 인류학도 받아 드립니다. 하나님이 진화론의 주인공으로 믿는 유신진화론(theistic evolutionism)자나 아니면 한 거름 나아가서 진화론으로 전혀 설명이 되지않는 부분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초자연적으로 간섭하셨다는 어떻게 보면 믿음이 대단한 척하는 진행적창조론(progressive creationism)을 주장하는 자들입니다. 후자에 속하는 대표적인 사람이 휴 로쓰라는 사람입니다. 창조과학을 한다는 사람들 가운데도 그들의 이론에 추파를 던지는 고집은 마음 아픈 사실입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그들이 옳을 수도 있으니 단정적인 경직을 버리라는 이들의 태도는 관용과 지식을 자랑하는 세속학자로서나 자유주의신학자들의 태도와 다를 바 없어서 위험 천만입니다. 창조주간 6일의 하루가 24시간의 하루입니다. 지구와 우주의 창조가 6천년 전에 있었다는 사실이 하나도 의심이 없는 것은 우리의 하나님은 전능하신 엘샤다이시고 그분의 장중에 있는 6천년이 창조주와 관계없는 한 점 밖에 되지 않는 46억년이나 160억년 보다 훨씬 더 길다는 사실이 마음속에 믿음으로 받아드려 질 수 있기를 하나님께 오늘도 간구합니다.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있는 모든 것을 만들고 제 칠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출애급기 20장 11절)
참고문헌: Holy Bible, New Scofield study system
The Modern Creation Trilogy by Henry Morris
The Answers Book by Don Batten
How long was the seventh day? James Stambaugh(Impact article,No.197)
내가 6일 창조를 믿는 이유 (김무현2003/6/6) 텍사스 A&M 대학 교수
하늘을 창조하여 펴시고 땅과 그 소산을 베푸시며 땅 위의 백성에게 호흡을 주시며 (이사야 42:5)
나는 박사학위를 받은 후까지도 성경 말씀이 창조주 하나님의 계시라는 것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다
른 종교의 경전들도 깊이 있고 윤리적인 내용들이 많이 담겨 있으며 그 중에는 성경의 가르침과 유사
한 내용도 있다.
성경이 그런 경전들과 근본적으로 다른 것은 무엇일까? 물론 성경은 “모든 성경이 하나님의 감동
으로 기록되었다”(디모데후서 3:16)고 증거한다. 하지만 성경이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되었다는 것을
성경구절로 증명한다는 것은 순환논리이므로 설득력이 없었다.
미국 대학에 교수로 부임하면서부터 나는 항상 짐이 되었던 위와 같은 질문에 스스로 도전해 보
기 위해 매일 아침 출근하자마자 한시간씩 성경을 연구하고 묵상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묵상이 몇
년 동안 계속되는 가운데 참으로 많은 성령님의 인도하심과 깨달음이 있었다. 이 기간동안 그때까지
막연히 품고 있었던 성경에 관한 많은 의심과 회의가 걷히고 성경이야말로 결코 사람이 만들어낸 종
교적 경전이 아니라는 확신이 들게 되었다. 그리고 그전까지는 평범하고 필요없는 것같이 생각되던
내용 가운데도 심오한 진리가 숨겨져 있음도 깨닫게 되었다. 성경이 하나님의 계시로 기록되었다는
가장 큰 증거는 역시 예언의 성취와 처음부터 끝까지 너무나 완벽한 일관성에 있다.
이렇게 성경에 대해 확신을 갖게 된 후에도 한가지가 찜찜했는데 그것은 창세기 1-11장의 내용
이었다. 학교에서 과학적 사실이라고 배운 내용들과 너무도 상반되기 때문이었다. 그 중에서도 6일 창
조와 노아 홍수가 특히 그러했다.
나 자신에게 확신이 없었기 때문에 창세기 성경공부를 인도할 때에도 과학을 전공한 교우들이 말도 안 된다고 우길 때에는, 믿기 힘들면 그냥 상징적인 의미만으로 해석하라며 어물쩍 넘어가곤 하였다.
그러던 중에 창조과학에 관한 여러 서적들을 접할 기회가 생겼다. 특히 헨리 모리스 박사님의 책들과 ICR(Institute for Creation Research)과 AIG(Answers In Genesis)의 여러 자료들이 정말로 많은 도움을 주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인본주의적 진화론으로 너무도 철저히 세뇌되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진화론이란 것이 증명할 수 있는 참과학이 아니라 추론에 불과한 유사과학임을, 실제로 진화론을 뒷받침해 주는 자료들도 별로 없음을 알게 되었다.
심지어 화석마저도 진화론의 가장 큰 장애라는 사실이 충격적이었다. 조나단 웰스 박사가 에서 밝혔듯이 진화론에 관한 한, 과학 교과서들이 얼마나 허구적이고 철학적(자연주의에 관한 맹신)인 내용들로 가득 찼는지도 알게 되었다.
더욱이 최근 들어 DNA연구와 정보이론, 지적설계 이론들을 접하며 창조와 지적설계에 대한 확신이 더욱 굳어지게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성경에 관해 찜찜했던 마지막 짐이 벗어진 것이다.
이후에야 모든 성경이 성령님의 감동으로 기록되었다는 사실을 확신을 가지고 전할 수 있었다. 예수님께서도 창세기가 모세에 의해 기록되었다고 하시며 “모세를 믿지 못한다면 나 또한 확신으로 믿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신 바 있다(요한복음 5:46-47). 모세오경을 하나님의 계시가 아닌 신화라고 믿는 사람들은 그만큼 예수님을 진실로 믿는 것도 힘들다는 말이다.
이후로 나는 확신을 갖고 한국창조과학회(KACR)와 미주창조선교회(ACTS)의 남부 지부장으로 사역하고 있다. 이와 같이 귀하고 보람된 일을 맡겨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기쁨으로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창세기 중 진화론자들로부터 가장 많이 공격받는 부분은 창세기 1장에 나오는 6일간의 천지창조 내용일 것이다. 전능자를 철저히 배제하고 모든 기원과정을 수십 억 년에 걸친 자연과정(Natural Process)이라 주장하는 무신론적 자연주의자들이 절대 양보할 수 없는 최후의 아성이 바로 지질학적/우주적 오랜 연대이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오랜 연대는 우주/지구/생명의 진화를 부분적으로나마 정당화하기 위해서 무엇보다도 꼭 필요한 전제이다.
그들은 지난 200여 년에 걸쳐 과학이라는 학문분야에서 전능하고 초월적인 창조주의 존재나 지적설계 개념을 철저히 배제해 왔다. 모든 기원이론은 자연주의 관점에서만 설명해야 한다는 규정을 만들고, 그 체계 안에서만 학문의 탑들을 쌓아 나갔다.
그 결과 현대과학은 모든 자연의 현상 및 기록들을 객관적인 입장에서 바라보고 논리적으로 해석하는 대신, 전능자의 지적설계 및 초월적 창조를 철저히 배제한 학문체계로 자리잡게 되었다.
그들은 오랜 우주/지구를 보여주는 자료들이 많이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것들은 격변의 상황은 없었고, 모든 것이 지금과 같은 속도로 진행되어 왔다는 균일론의 가정 하에서 성립된 추론일 뿐이다.
실제로는 젊은 우주/지구를 보여주는 자료들이 많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진화론이라는 배경신념과 모순이 된다는 이유 때문에 철저히 배제되고, 무시되고 있다. 그런 와중에 성경적 창조를 믿는 과학자들은 철저히 소외를 당하며 지적인 조롱과 핍박 속에 놓이게 되었다.
주를 비방하는 자들의 비방이 내게 미쳤나이다. (로마서 15:3)
이러한 과학의 진화론을 중심으로 한 도그마(dogma) 때문에 많은 신학교와 교회에서 창세기의 해석을 애써 현 과학의 패러다임(paradigm)에 끼워 맞추려는 시도와 노력들이 많이 있어 왔다. 유신론적 진화론(theistic evolution), 간격이론(gap theory), 날-시대 이론(day-age theory), 그리고 점진적 창조이론(progressive creation) 등이 그러한 것들이다.
주께서 가라사대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하며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나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 (이사야 29:13)
그 중 유신론적 진화론은 그 자체가 초월적 창조주가 없다는 것과 유사하기 때문에 복음적 신앙과 병행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성경 어디에도 그러한 암시나 힌트조차 없기 때문이다.
간격이론 및 날-시대 이론은 창세기 1장을 현 과학의 오랜 우주/지구 패러다임에 맞추어보려는 노력인데, 성경적 해석에도 문제가 있을 뿐 아니라 현 과학의 패러다임인 진화론과도 병행하기 쉽지 않은 많은 문제점들이 있다.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말을 너희는 가감하지 말고 (신명기 4:2)
나도 한때 날/시대이론이 더 그럴 듯하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전능하신 창조주께서 그 모든 창조를 수십억 년에 걸쳐 철저히 자연적 과정(Natural Process)에 의존해야만 할 특별한 이유도 없을 뿐더러 그에 대한 확실한 과학적 증거도 없다는 사실을 알았고, 그 후에는 다시 한번 그 문제에 대해 깊이 성찰해 보게 되었다.
특히 재림 후에 이루어질 전 우주적 재창조는 수십억 년이 아닌 단시간에 이루어질 것임을 성경은 증거하고 있다. 주님 재림 후의 재창조가 단시간에 이루어질 것이라면 태초의 창조도 수십억 년이 걸려야 할 이유가 없다.
이러한 전능적/초월적 창조는 이미 과거에 이루어진 일이고 과학의 범주를 초월하기 때문에 과학으로는 그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없다. 단지 하나님께서는 전능한 창조의 흔적들을 이 자연세계에 남겨 놓으시며 크리스천 과학자들이 그것을 탐구할 기회를 주셨다. 또한 과학자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그 창조과정을 이해할 수 있도록 쉽고도 간략하게 그 대략을 성경을 통해서 계시하여 주셨다.
진화론적 세계관과 과학주의로 철저히 세뇌된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6일 창조가 오히려 불편하게 느껴질지 모른다. 주위사람들이 지성인이 아닌 맹신자라고 놀릴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생길 수도 있다.
그러나 앞에서도 밝힌 바와 같이 오히려 젊은 우주/지구를 보여주는 자료와 현상들도 많이 존재한다. 나 자신이 그랬듯이 그것들을 자세히 공부해 보면 성경적 창조가 더 이상 불편하게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또한 실제로 인류의 모든 역사적 기록이나 유물들은 진화론에서 주장하고 있는 것처럼 지질학적 세월에 걸쳐 존재한 것이 아니라 노아 홍수를 전후하여 갑자기 나타난다. 세계 모든 종족과 언어의 기원도 성경에 기록된 노아 홍수와 바벨탑 사건으로 더 잘 설명된다.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요한복음 17:17)
여호와의 말씀으로 하늘이 지음이 되었으며 그 만상이 그 입기운으로 이루었도다 (시편 33:6)
창조란 인간의 두뇌로 이해하기에는 너무도 엄청난 일이기 때문에 그것을 아는 데에 있어 한계를 인정해야 하며, 그렇기 때문에 어느 한가지 관점만 절대로 옳다고 주장하며 법칙(Doctrine)화 하는 것은 문제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절대적으로 계시하여 주신 성경을 가장 자연스럽게 해석하며, 그 기원을 이해하는 것은 성경전체를 바르게 이해하는 데 참으로 중요하다. 고린도전서 13:12 말씀 “이제는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처럼 창조의 자세한 내용은새 하늘과 새 땅에서 주님께서 친히 가르쳐줄 것이다. 그때 우리는 그곳에서 계시록의 24장로들과 같이 전능하신 창조주를 다음과 같이 찬양할 것이다.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요한 계시록 4:11)
한편, 창조와 타락의 중요한 신학적 기초가 창세기 1-3장에 있기 때문에 그 내용 자체가 하나님이 계시하여 주신 절대적 진리임을 믿는 것은 신앙인으로서 반드시 갖추어야 할 자세이다. 모세오경을 신화로 보려는 자유주의적 입장은 근거도 희박하며, 오히려 우리 믿음의 기초를 무너뜨리려는 사단의 가장 좋은 무기로 사용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하기 바란다.
누구든지 이 계명(구약 특히 모세오경)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마태복음 5:19)
인간의 머리에서 추론해낸 진화론이란 가설에 창조주 하나님의 계시를 애써 끼워 맞출 필요가 없다.
다음에는 6일 창조 외의 타협적 성경해석을 도입하는 것이 더 큰 문제를 야기하게 된다는 예를 날/시대 이론을 통해서 살펴보려 한다. 날/시대 이론은 진화론이 거세게 과학세계를 휩쓸기 시작했던 19세기에 휴 밀러(Hugh Miller) 등에 의해 제안되기 시작했다.(1869) 지금은 휴 로스(Hugh Ross)등의 Reasons To Believe라는 단체를 통하여 전해지고 있다.
이 이론은 날에 해당하는 히브리 원어 “욤”(yom)이 성경에서 ‘문자적인 24시간의 날’로도 쓰이지만 때에 따라서는 ‘어느 불특정한 기간’으로도 쓰일 수 있음에 주목하였다(창세기 2:4(창조하신 때), 시편 20:1(환난날), 욥기 20:28(진노하시는 날), 전도서 7:14(형통한 날)). 그리고 창세기에 나오는 창조 순서와 진화론에서 말하는 진화 순서가 어느 정도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에 착안하였다.
한마디로 하나님께서 오랜 세월에 걸쳐 진화론이 말하는 것과 비슷한 순서대로 점진적 창조(Progressive Creation)를 하였다는 것이다. 즉 창세기에 나오는 창조의 한 날은 역사지질학의 한 시대 만큼에 해당한다고 말한다.
이 이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지층이 이미 오랜 세월에 걸쳐 균일적으로 다 만들어졌으므로, 노아의 홍수를 지역적 홍수(local flood)로 본다(이는 예수님께서 노아 홍수가 결코 지역적 홍수가 아니라고 하신 것에 위배된다).
하지만 이와 같은 해석에는 여러 가지 성경적 문제점들이 있다. 히브리 원어 상으로도 욤(yom)이 숫자를 나타내는 제한적 형용사(either numeral or ordinal) 뒤에 쓰인 경우에는 전체 성경을 통하여 한번의 예외도 없이 문자 그대로의 날을 의미한다(이를 더 확실히 하기 위해 성경에는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라는 부연설명까지 있음).
또한 출애굽기 20:8∼11에 보면 창조의 6일(six days)에 해당하는 욤(yom)의 복수형 야민(yamin)이 쓰였는데 이처럼 복수형이 쓰인 경우에는 한번도 예외 없이 문자적인 날을 의미한다.
이는 엿새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 칠일에 쉬었음이라. (출애굽기 20:11)
특히 사람을 창조하여 이 모든 피조세계를 다스리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었다면, 왜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특별한 이유 없이 오랜 지질학적 연대에 걸쳐, 고생대 생물을 만들고 다 죽이고, 공룡을 만들고 다 죽이고 하는 과정을 밟으셨냐 말이다. 이것은 바로 주일학교에서 설교를 하던 나를 당혹하게 만들었던 아들의 질문이기도 하다.
날-시대 이론의 가장 심각한 문제점은 병과 고통과 살생과 싸움과 죽음이 아담의 첫 범죄 이전부터 있었다고 보는 것이다. 또한 전능하시고 의로우신 하나님께서 그 오랜 세월을 낭비해 가며, 이유 없이 수많은 생물들을 약육강식이나 적자생존 등 가장 비효율적이고 잔인한 방법으로 이끄시며 아담까지 오게 하셨겠느냐 하는 것이다.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보기에 심히 좋았다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과 성품에 조화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 듯하다. 또한 인간이 불순종의 죄를 짓기 이전에 이미 피조세계에 질병과 고통, 죽음과 파괴 등이 진행되었으므로 그러한 것들을 인간의 죄 때문이 아닌 창조주 하나님의 책임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성경은 분명하게 다음과 같이 증거하고 있다.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너의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창세기 3:17-19)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로마서 5:12)
피조물의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이니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케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 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 (로마서 8:19-23)
사망이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고린도전서 15:21-22)
인간의 머리에서 만들어낸 진화론이나 역사지질학이란 유사과학에 성경 해석을 애써 끼워 맞추려다 보니 오히려 창조-타락-구속-심판 및 완성으로 요약되는 성경의 큰 물줄기에 큰 흠집을 내게 된다.
그 엄청난 창조가 과학적으로 증명될 수 없듯 진화도 단지 추론이며 과학적으로 증명될 수 없다. 우리 피조물이 초월자가 하신 일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개미들이 사람이 컴퓨터를 만들고 달나라에 가는 것을 이해할 수 없는 것과 같다.
과학의 패러다임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 버리기 바란다. 진화는 종교이지 과학적 사실이 아니다. 6일 창조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성경 전체를 바라보기 바란다.
창세기 1장 원어 읽기
창세기 1장 [개역한글]
1 태초에 하나님(1)이 천(5)지(20)를 창조(2)하시니라
2 땅(20)이 혼돈하고 공허(7)하며 흑암이 깊음(8) 위에 있고 하나님(1)의 신(9)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21)
3 하나님(1)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3) 하시매 빛이 있었고
4 그 빛이 하나님(1)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
5 빛을 낮(19)이라 칭하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시니라 저녁(22)이 되며 아침(23)이 되니 이는 첫째 날(19)이니라
6 하나님(1)이 가라사대 물 가운데 궁창(10)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게 하리라(3) 하시고
7 하나님(1)이 궁창을 만드사(4) 궁창(10)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매 그대로 되니라
8 하나님이 궁창을 하늘(5)이라 칭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둘째 날(19)이니라
9 하나님이 가라사대 천하의 물이 한곳으로 모이고 뭍(24)이 드러나라 하시매 그대로 되니라
10 하나님이 뭍을 땅이라 칭하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 칭하시니라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11 하나님이 가라사대 땅은 풀(26)과 씨(11) 맺는 채소(29)와 각기 종류(27)대로 씨(11) 가진 열매 맺는 과목(12, 13)을 내라(25) 하시매 그대로 되어
12 땅이 풀(26)과 각기 종류(27)대로 씨 맺는 채소(29)와 각기 종류대로 씨(11) 가진 열매 맺는 나무(12)를 내니(28)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13 저녁(22)이 되며 아침(23)이 되니 이는 세째 날(19)이니라
그 종류대로 만드시니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14 하나님이 가라사대 하늘(5)의 궁창(10)에 광명(30)이 있어(3) 주(19)야를 나뉘게 하라또 그 광명으로 하여 징조(31)와 사시와 일자(19)와 연한이 이루라
15 또 그 광명이 하늘의 궁창에 있어 땅에 비취라 하시고 (그대로 되니라)
16 하나님이 두 큰 광명을 만드사(4) 큰 광명(30)으로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작은 광명으로 밤을 주관하게 하시며 또 별들을 만드시고(4)
17 하나님이 그것들을 하늘의 궁창에 두어(14) 땅에 비취게 하시며
18 주야를 주관하게 하시며 빛과 어두움을 나뉘게 하시니라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19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네째 날이니라
20 하나님이 가라사대 물들은 생물(15)로 번성케 하라 땅위 하늘의 궁창에는 새가 날으라 하시고 21 하나님이 큰 물고기(16)와 물에서 번성하여 움직이는 모든 생물(17)을 그 종류대로, 날개 있는 모든 새를 그 종류대로 창조(2)하시니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22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어 가라사대 생육하고 번성하여 여러 바다 물에 충만하라 새들도 땅에 번성하라 하시니라
23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다섯째 날이니라
24 하나님이 가라사대 땅은 생물(17)을 그 종류(27)대로 내되(28) 육축(32)과 기는 것(33)과 땅의 짐승(34)을 종류대로 내라 하시고 (그대로 되니라)
25 하나님이 땅의 짐승(34)을 그 종류대로, 육축(32)을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33)을
26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18)을 만들고(2)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35),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34)을 다스리라하시니라
29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11)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 식물이 되리라
30 또 땅(20)의 모든 짐승(34)과 공중의 모든 새와 생명이 있어 땅에 기는 모든 것(33)에게는 내가 모든 푸른(29) 풀을 식물로 주노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31 하나님이 그 지으신(4)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19)이니라
Definitions
1. ELOHIYM (plural of Eloahh): the deity; the supreme Being; the true God
-a compound word composed of El (the strong one), and Alah (to bind oneself by an oath); hence, Elohim = the mighty and faithful one
-a uni-plural noun; thus, Elohiym latently implies the Trinity
-the only name used for God in Genesis One; this name is used about 2,500 times in the Old Testament
2. BARA: bring forth something that is radically new; produce that which is new, extraordinary, and/or epochal; produce through supernatural activity
3. HAYAH: become; cause to appear or arise; cause to be made or done; come into existence;
come to pass; make into something
4. ASAH: produce; manufacture; fabricate
5. SHAMAYIM (p1.), shameh (sing.): visible dome of the sky above and in which the clouds move; the realm in which the celestial bodies move; the spiritual realm in which God and the angels dwell and operate
-with respect to the above definitions, the Hebrews referred to the three heavens (cf. 2 Cor. 12:2); whenever shamayim is used with the erets(earth), as in 1:1, the combination refers to the entire physical universe
6. TOHUW: desolated; worthless; wasteness; useless; incapable of being utilized
7. BOHUW: empty; void; devoid of existence
8. TEHOM: a great mass of water; the oceans and the seas
9. RUWACH: spirit; breath; wind.
- in conjunction with Elohiym refers to the Holy Spirit
10. RAQIYA: (apparently) visible dome of the sky; (technically, the atmosphere immediately above the surface of the earth)
11. ZERA: embryos of plants, trees, grasses, etc., i.e., the embryos of any plant species
12. ETS: any large plant containing woody fiber
13. PERIY: fod and/or embryos produced by any living thing
14. NATHAN: set; put; place; appoint; bring forth; apply; ascribe; set forth; send out; show; trust; bestow; cause to appear; charge; commit; deliver
15. SHERETS: swarm of small or minute animals
16. TANNIYM: great or large sea animal; monster
17. NEPHESH: vital animals, i.e., animals that clearly manifest the soulish attributes of mind, will, and emotion
18. ADAM: human being; the human race; i.e., animals that clearly manifest spirit attributes. NOTE: there is no evidence for a spirit dimension for the pre-Adamic hominids
19. YOWM: sunrise to sunset; sunset to sunset; a space of time (defined by an associated term); an age; time or period (without any reference to solar days)
20. ERETS: the planet Earth; a land, a country, or a continent; lands, countries, kingdoms or regions
21. RACHAPH: to brood over, cherishing and vivifying; to be tenderly affected; to be moved
22. EREB: the beginning of darkness; dusk, twilight, or nightfall; closing, ending or completion
23. BOCER: the breaking forth of light; dawn, daybreak or morning; dawning, beginning, or origin
24. RAAH: be seen; appear; show forth, cause one to see; to be perceived or beheld; to be considered
25. DASHA: to bring forth herbage; to sprout; to bring forth
26. DESHE: new vegetation; young plants
27. MIYN: species; life4orm
28. YATSA: germinate, bring forth; produce; spring forth; promulgate; to cause to come forth; issue out; proceed
29. ESEB: green plant(s)
30. MAOWR: a luminous body; brightness; light
31. OWTH: signal; sign, measuring mark; token, omen; evidence
32. BEHEMOWTH: large land quadrupeds
33. REMES: rapidly moving vertebrates; rodents and reptiles
34. CHAY: wild mammals; a multitude or mob; that which is lively or fresh
35. KABASH: subject; subdue; subjugate
창조설화들 알란 밀라드(ALAN MILLARD)
고대의 다른 민족들에 속하는 창조설화들은 창세기가 단순히 히브리 신앙에 적합하게 각색한 또 다른 창조기사를 포함하고 있다는 견해가 나돌게 하였다.
세계에 퍼져 있는 민간설화들
창세기 1장과 2장은 하늘과 땅의 전반적인 창조기사로 이루어져 있고 그 뒤에 인간의 창조에 관한 보다 상세한 서술이 나온다. 우주와 인간의 창조에 관한 이야기들은 그것이 별개의 것으로 되어 있든지 아니면 하나로 묶여져 있든지간에 수없이 많이 있고 또 많은 것들이 서로 여러 가지 공통점들을 갖고 있다. 그 공통점들이란 대개 신존재의 先在.신의 명령에 의한 창조 토기와 같이 흙으로 지음 받은 인간 어떤 점에서 신존재를 반영하고 있는 인간 등이 그것이다. 거의 모든 다신교적 신앙들은 창조설화들에서 추정해낼 수 있는 신들의 계보를 갖고 있다. 최초의 부부 신이나 혹은 독신 신까지도 자손 신 곧 신 가족을 창조하거나 번식한다. 그리고 그 모든 신 가족이 자연의 요소들과 세력들을 대표하거나 지배한다.
어떤 민족들은 물리적인 우주 혹은 물이나 흙같은 하나의 기본적인 요소는 항상 존재하며 신들이 그것에서부터 생성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또 어떤 민족들은 그것이 한 신 혹은 여러 신들의 솜씨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것들은 관찰과 초보적인 논리에 기초된 단순한 개념들이다. 예를 들어 인간이 “흙” 으로 지음을 받았다는 것은 죽음과 부패의 순환에서 쉽게 연역해 낼 수 있다.
그러나 공통적인 개념들이라고 해서 반드시 공통의 기원을 갖고 있다고 볼 필요는 없다. 전세계에서 수집한 서로 다른 설화들에서 그것들이 가진 공통요인들을 찾아내어 다 한 기원을 갖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그릇된 일이다. 서로 다른 설화들이 전부 혹은 대부분 단 하나의 기원을 가졌을 것으로 보기는 힘들다.
고대 근동의 설화들
하지만 창세기를 구약 세계의 다른 이야기들과 비교하여 보는 것이 적절한 일이라 하겠다. 그리할 때 우리는 고대 창조설화 중 불과 몇몇만 한두 가지 기본적인-하늘과 땅의 분리, 그리고 흙으로부터의 인간 창조와 같은-개념을 같이 나누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바벨론의 문헌은 몇 가지 현저히 비슷한 점들을 갖고 있다. 그중 하나를 처음 영어로 번역한 세기에는 바벨론 창조설화가 줄곧 히브리 신앙의 궁극적 근원으로 인용되었다. 최근에 들어와서는 더 많은 본문들이 발견되고 또 오래 동안 알려져 왔던 그 최초의 본문이 재평가를 받기에 이르렀고 그 결과 이미 받아들여졌던 많은 유사점들은 사실 착각이 었다는 사실이 드러나게 되었다.
대개 히브리 창조기사에 연결시켜 온 그 유명한 바벨론 창세기는 여러 창조설화 중 하나에 불과하고 또 그것이 가장 오래된 것도 아니었을 뿐 아니라 가장 일반적인 것도 아니었다. 그 나라의 영웅 바벨론 의 신 말둑(Marduk)의 명예를 위해서 B.C. 2천년대 후반에 기록된 그 설화는 물 속의 한 근원인 母神티 아맛(Tiamat)으로 더불어 시작하는데 그 모신으로부터 신들이 태어난다. (그 이름은 바벨론 사람과 히 브리어 “깊음”에 결부되어 있다). 티아맛은 시끄러운 소리를 내서 골이 나게 한 자기 자녀 신들과의 싸움에서 말둑에게 죽는데 그 시체는 세계를 형성하게 된다. 인간은 땅의 질서를 유지하는 신들의 수고를 덜어서 그 신들로 편히 쉬도록 하기 위하여 창조된다.
이 이야기가 그 이전의 설화들에서 유래되었다는 분명한 암시들이 있는데 이러한 특징들 중 몇몇을 포함하고 있는 그 이전의 설화들이 발견되었다. 자주 나오는 유일한 주제는 한 신의 요소로 인간을 창조 함으로써 신들의 수고를 덜어 주게 되었다는 것이다. 바벨론 창세기에 나오는 신들의 싸움은 수 많은 자유주의 학자들이 창세기 1:2에서와 물들에 대한 하나님의 권능을 언급하고 있는 그 밖의 구절들에서 그 점에 대한 기초적인 언급들을 찾아내려고 혈안이 그어 있음에 도 불구하고 구약성경에 대응부분을 전혀 갖고 있지 않다.
초기 인간에 관한 한 서사시
바벨론의 아트라카시스 서사시(Atrakhasis Epic)는 보다 더 창세기에 가깝다. 이것은 인간의 시초와 사회의 발단에 관한 시인데 그 창조에 대한 서술은 없으나 세계의 질서에 대한 암시가 나온다. 그것은 땅에 물을 대기 위해서 일하는 小神들로 더불어 시작한다. 그 신들은 중도에서 그들의 운명을 거역하는데 그들의 일을 대신할 인간을 창조함으로써 비로소 일에서 벗어난다. 인간은 그의 시끄러운 소리가 혼란을 초래하여 홍수에 멸망당할 때까지 하나의 속죄양이 된다(“홍수 이야기들”을 보라)
개요를 놓고 볼 때 이 시(B.C. 1600년경에 만든 사본들에서 알려졌다)는 창세기 2-8장과 부분적으로 (창세기에서는 “생기) 아트라카시스 시에서는 “한신을 유지하는 것이다(아트라카시스)시에서는 “한 신의 살과 피”)로 창조된다. 인간의 직무는 땅의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다(아트라카시스 시에서는 수고로운 노동,창세기에서는 낙원의 지배).인간은 결국 단 한 가족만 남고 홍수로 다 멸망당한다. 한편 아트라카시스 시에는 처음부터 수고하는 인간들이 나올 뿐 한 사람”아담”도 여자의 별도 창조도 에덴 동산도 인간의 타락도 나오지 않는다. 사실 도덕적인 가르침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그 의미는 단순히 인간의 운명이 이렇게 해서 결정되었으니 인간은 그 운명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수메르(Sumer)의 한 설화는 홍수 이전 시대의 중요한 성읍 다섯의 이름들을 갖고 있는데 그 이름들은 족장들의 시대보다도 훨씬 더 앞서는 시대에 살았던 홍수 이전 왕들의 명단 곧 별도로 보존되어 왔던 창세기 5장의 명단과 연결된다. 바벨론 저작자들은 홍수를 그들 땅 역사의 주된 방해요인으로 보았다. 그러므로 홍수가 온 땅을 다 뒤덮었었다는 기록에 있어서 창세기와 아트 라카스시 시로 대표되는 전승은 동일한 사건들을 회고하고 있다. 바벨론 설화에 나오는 어떤 주제들-특히 대신 일하는 자로서의 인간의 시엔키와 닌마크(Enki and Ninmakh)에서도 그 자취를 더듬어볼 수 있다.
민간의 기억과 계시
이 실제적인 유사점들은 다만 히브리 창세기와 그것과 가장 가까운 다른 설화들의 대응 부분들 사이의 도덕적이며 영적인 사고방식상의 광범한 차이점을 강조해줄 뿐이다. 성경 비평학자들이 서둘러 결론을 내렸던 것처럼 창세기가 다른 설화들에서 유래되었다고 주장할 필요는 전혀 없다. 입장과 내용의 차이가 실제로 현저하므로 그 차이점들은 창세기의 토대를 무너뜨린다기 보다는 오히려 그 책에 대한 하나님의 영감을 강조해주고 있다.
<출처 : 한국컴퓨터선교회>
창세기 1장은 ‘먹을 것’으로 초대한다 이세령
“땅은 풀과 채소와 과목을 내었고 동물과 사람의 식물로 주어졌다”
창세기 1장의 본문과 그 형식구조는 먹을 것의 문제로 초대한다. 그리고 창세기 1장은 향후에 전개되는 하나님 계획의 청사진과 같다. 이러한 먹을 것의 현실을 인류의 죄의 문제와 의의 문제와 어떻게 연관시켜 복음을 이해하는 방편이 되는가.
창조 6일은 이중구조로 나뉘어
창세기 1장에 등장하는 창조 6일은 구조적인 이해를 요구한다. 이미 제6일과 안식의 제7일이 창조를 구조적으로 설명한다. 이것은 창세기 2장 4절 이하의 창조 기사와는 다른 관점이다. 창조의 6일간을 크게 이중적인 구조로 분류한다. 1~3일과 4~6일의 관계다. 1~3일이 거주 공간의 형성과 배치라고 본다면 4~6일을 형성된 거주 공간에 거주인들의 배치다.
첫째 날은 빛을 통한 낮과 어둠의 분리다. 둘째 날은 궁창을 통한 궁창 위와 아래의 물의 분리다. 셋째 날은 궁창 아래의 물을 뭍으로 분리하고 뭍에 식물을 자라게 하는 이중 창조다. 네째 날은 낮과 어둠을 주관하는 두 광명이다. 다섯째 날은 궁창의 새와 물에 있는 물고기다. 여섯째 날은 뭍을 구성하는 짐승과 사람을 지음과 동시에 식물을 먹을거리로 주신다. 역시 이중 창조행위다.
이상의 내용을 볼 때 첫째와 넷째 날은 낮과 어둠의 생성과 그 주관자로 어울린다. 둘째와 다섯째 날은 궁창과 물의 주인으로서 새와 물고기로 어울린다. 그리고 셋째와 여섯째 날은 물과 분리된 뭍에 짐승과 사람이 주인 되고, 또한 뭍에서 나는 풀과 채소와 과목이 그들의 식물로 주어진다.
이러한 창조 일정의 구조는 삶의 거주 기반을 조성하는 일과 이에 상응하는 거주자들의 생성이다. 이러한 창세기 1장의 구조를 살펴본 결론과 맥이 통하는 성경 자체의 언급을 소개한다. 이사야 45장 8절 말씀이다. “여호와는 하늘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시며 땅도 조성하시고 견고케 하시되 헛되이 창조치 아니하시고 사람으로 거하게 지으신 자시니라”
본문은 우상과 비교된 이스라엘이 섬기는 창조자 하나님을 소개한다. 여기서 한 가지만 분명하게 언급해야 한다. ‘사람으로 거하게 지으신 자시니라’에서 ‘사람으로’라는 표현은 원래의 본문에는 없다. 단지 문맥상 거주하는 주체를 사람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기에 첨가하여 번역한 것이다. 이 본문은 결국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누군가 거주할 수 있도록 조성해 가셨음을 말한다. 여기서 거주를 목적하는 조성과 거주자라는 두 핵심 단어를 포괄한다.
이사야를 통해서 이해된 창조는 거주자를 위한 거주 여건의 조성이다. 이것은 창세기 1장이 표현하는 창조와 다르지 않다. 이런 양자의 연관성을 더욱 분명히 하는 것이 창세가 1장 2절과 이사야 45장 18절의 ‘헛되이 창조치 아니하시고’라는 표현이다.
창세기 1장 2절, 거주자들을 위한 공간 조성
이사야 45장 18절의 ‘헛되다’는 단어는 거주자가 거주할 수 없는 상태임을 본문 스스로 증거한다. 헛되이 창조치 아니하시고 (사람으로) 거하게 지으신 자시리라. 헛되이는 창조를 부정적인 표현으로 말한다면 거하게 지었다는 것은 긍정적인 표현이다. 거할 수 있는 창조를 의미한다. 이러한 단어가 동일하게 창세가 1장 2절에 등장한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다.
창세기 1장 2절은 창조 이해에 있어 논란이 많은 구절이다. 특히 무에서 유로의 창조인가 아니면 무질서의 존재에서 질서의 창조인가를 가늠한다. 내가 속한 교회 전통은 1장 1절의 창조 선언이 1장 2절의 상태를 만들었음을 믿는다. 그러나 현재의 목적을 위해서 우리는 단지 6일간의 창조가 1장 2절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말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따라서 육일간의 창조를 순서대로 말하는 것으로 창세기 1장은 만족하지 않고 1장 2절의 상태를 왜 언급하는가를 질문해야 한다. 이것은 육일간의 창조의 방향이 무엇임을 알려준다.
먼저 육일 간의 창조가 시작되기 전의 상태는 혼돈하고 공허하다. 혼돈이라는 단어는 섞여있는 상태로 잘 정비되어 있지 않은 상태를 의미한다. 공허하다는 단어는 비어있다는 의미다. 당연히 잘 정비되어 있지 않은 조성되지 않은 상태에 하나님을 제외한 누구도 살지 않는 환경을 두 단어는 종합적으로 제시한다.
이것은 택지가 조성되지 않은 땅에 아무도 거주하지 않는 상태와 마찬가지다. 창세기 1장 2절은 육일간의 창조는 누군가 살 수 있도록 공간을 거주처로 조성할 필요가 있음을 알리고 있다. 마찬가지로 뒤에 나오는 흑암이 깊음 위에 있다는 표현도 그렇다. 깊은 흑암은 전혀 손길이 미치지 않은 태고의 시대를 말한다. 오직 하나님의 신만이, 그의 숨소리만이 있을 뿐이다.
이제 창세가 1장 2절은 분명히 육일간의 창조의 진행과 어울리는 원래의 상태를 말함이 분명하다. 1~3일간이 조성하는 작업이라면 4~6일은 그 조성된 공간에서 거주자를 만드신 것이다. 그래서 혼돈하지 않은 공간과 공허하지 않도록 거주자를 두신 것이다.
창조 구조의 파격으로 제3일과 6일의 이중창조
창조의 6일 간이 거주 공간 조성과 거주자를 만드는 과정의 구도라고 했다. 그런데 이러한 6일 간의 구조를 살펴 볼 때 눈에 띄는 대조점이 제3일과 6일의 관계다.
제3일과 6일은 모두 이중 창조로 구성됐다. 다른 모든 날은 단일한 창조다. 빛이 있었고, 궁창이 있었고, 큰 광명들이 있었고, 그리고 새와 물고기가 있었다. 그런데 삼일과 육일에는 이러한 창조의 과정이 두 번에 걸쳐서 반복된다. 이는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표현이 두 번씩 반복된다.
제3일에는 물과 뭍을 나누시고 그대로 되었기에 보시기에 좋았더라(9~10)는 것이 일차이다. 그리고 11~13절은 나누어진 뭍에서 풀과 채소와 과목이 나는 것이 그대로 되어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이차적인 창조를 언급한다. 그래서 이중의 창조가 제3일에 이루어진다.
앞서 살핀 대로 제3일은 거주 기반의 조성이기에 이렇게 조성된 거주지에 거주자를 제6일에 만드셨다. 여기서 역시 이중적인 창조가 등장한다. 동물을 창조하시고 그대로 되니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24~5절은 진술한다. 또한 26~30절에서는 사람을 창조하신다. 그리고 30~31절은 그래도 되었고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는 평가를 내린다. 그런데 이러한 이중의 창조의 두 번째 내용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29~30절에는 특별한 말씀이 덧붙여진다. 제3일에 두 번째로 창조된 풀과 채소와 과목의 용도를 지정하시는 말씀이다. 채소와 과목은 사람의 식물이 되고(29), 그리고 풀은 동물의 식물이 된다(30). 이것까지가 그대로 되었다고 선언하고 하나님의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로 제육일이 마감한다.
제3일의 땅에서 나는 것들은 결국 제6일에 만들 동물과 사람을 위한 식물이었음을 알 수 있다. 땅은 식물을 내기 위한 것임을 제3일이 말하고, 제6일은 그 식물이 동물과 사람에게 주었다는 사실을 말한다. 이를 위해서 창조의 육일 간의 구조가 3, 6일에 이중 창조라는 변형적인 구조를 채택하게 되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시대의 ‘난제’인 창조 기사
공교회는 사도신경을 믿고 고백한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을 믿는다. 이것의 근거는 성경 전반에 있지만 창세기 1장도 중요한 근거 본문이다. 그런데 창조의 사실을 기록하는 창세기 1장의 관점은 단지 사실만을 전달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물론 예레미야 선지자가 렘10장 11에 말한 대로 천지를 짓지 아니한 신들은 땅 위에서 하늘 아래서 망할 것이다.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시다. 그런데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어떤 목적으로 천지를 창조했는가까지 말하고 싶어 하는 것이 창조의 기록이다. 기록은 기록의 시점의 언어를 반영한다. 기록은 사실을 근거로 해서 기록자의 시대를 담아낸다.
현대의 성경해석학은 창세기 1장의 창조 기사 뒤에 있는 고대 근동의 신화들이 가진 언어적인 영향들을 많이 발견해 냈다. 마르둑이 원시 바다의 신인 티아맛을 물리치고 천지를 창조했다는 이야기가 창세기 1장 2절의 언어에 반영되었다고 본다. 언어가 반영되었다고 하지만 그러나 근동 창조신화의 아류로써 창조 기사는 아니다.
그 증거로써 넷째 날에 만든 해와 달에 대한 해석이다. 왜 해와 달을 언급하지 않는가? 실제적으로 낮을 주관하는 것은 해고 밤을 주관하는 것은 달이다. 그런데 해와 달이라고 언급하지 않고 왜 두 큰 광명이라고 하는가? 큰 광명 작은 광명으로 표현하는 이유는 당시의 고대 근동에는 해와 달을 신으로 섬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해와 달을 비신화화 하는 작업을 창세기 1장의 기자가 수행하고 있다. 해와 달은 시간과 계절을 구별하는 피조물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우상을 숭배하는 고대 근동세계 신화에 대한 정면 도전이다. 이러한 해석은 오늘날 물신을 비롯한 모든 헛된 신에 대한 메시지로서 역할 한다.
창세기 1장의 언어 선택 뒤에는 이러한 역사 현실을 반영한다. 창조 자체가 타락 이전의 사건이지만 창조를 기록하는 목적은 타락한 이후 시대를 위한 것이고, 타락한 세상의 문제를 역으로 투영하는 것이다. 해와 달을 우상을 섬기는 세상을 역으로 투사하여 기록한 것과 같다.
마찬가지로 창세기 1장의 기록은 그 기록의 구조에서 제3일과 6일의 이중 창조를 쉽게 인식하도록 장치를 두었다. 그리고 그 이중 창조는 동물과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신 하나님을 기억하게 한다. 거주 공간의 조성과 거주자의 창조만을 말하지 않고 이에 넘어서는 의도를 3일과 6일의 구조가 보인다. 1-3일간의 거주 공간의 조성은 궁극적으로 땅에서 먹을거리를 내었다는 진술을 확보한다. 그리고 그 먹을거리를 제6일에서 사람과 동물에게 식물로 주었다는 사실이다.
이는 먹는 문제가 인류의 역사에서 그만큼 중요함을 반영한다. 과학과 기술이 발전한 오늘날도 60억 인구의 칠 분의 일이 굶주린다면 홍수와 가뭄 앞에 하늘만 바라보는 속수무책이었던 시대는 얼마나 심했을까? 그때에 굶주림에 시달리던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도록 창조한 세상이 왜 이렇게 되었을까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무엇이 죄일까? 무엇이 하나님의 구원을 통해서 회복되어야 할 것인가? 이런 것이 오히려 창조의 기사 속에 역 투영되는 과정을 밟고 있다. 어떤 신이 과연 이 빈곤과 굶주림의 문제를 해결할 것인가?
